통탄할 세월 보낸 이 학생을 보라!

처음 본 남한사람 모습… 아름다웠다

정식 교사로 임명 받고 나는 바로 두 세 명의 아이들을 맡을 수 있었다. 연변 조선족 사회에서 부모와 자식 간의 이탈은 심각한 수준이었다. 내가 맡은 아이들도 모두 부모가 해외로 나가고 할머니나 할아버지가 돌봐주고 있었다. 부모의 정이 그리워서인지 아이들은 나의 말도 잘 들었고 숙제도 꼬박꼬박 잘했다.

처음으로 나는 삶의 재미를 느낄 수 있었다. 그 뒤로 몇 달 동안 나는 더 많은 아이들을 맡을 수 있었고 조금씩 생활의 여유가 생겼다.

하지만 나의 신분이 노출될까 여전히 전전긍긍 했다. 자주 집을 옮기고 주위사람들하고 철저히 경계하면서 지냈다.

그러던 중 나는 북한에 있는 나의 집에서 보내온 편지를 받았다. 처음 연변에 왔을 때 북한에 편지를 보낸 때로부터 일 년이 지나서였다. 편지에는 눈에 익은 나의 어머니 필적이 담겨 있었다. 아버지랑 언니 모두 잘 지내고 있다는 것과 네가 살아있다니 정말 꿈만 같다고, 꼭 열심히 살아서 성공하라는 내용이 담겨 있었다. 답장이 과연 올까 하고 근심했었는데 이렇게 받고 보니 그 기쁨은 말할 수도 없었다. 나는 바로 회답을 보내면서 편지봉투에 인민폐 100원을 끼워 넣었다. 받을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살림에 보탰으면 하는 바람에 서였다.

하지만 그런 것은 부질없는 짓이었다. 북한 세관에서는 편지나 소포가 넘을 때 무조건 다 뜯어보았고 의심스러운 것이나 돈이 될 만한 것들은 꺼내어 자신들의 욕심을 채웠다.

물론 그 100원을 어머니는 받지 못했다. 하지만 나는 그 돈을 보내면서 이제부터 여기 중국에서 돈을 벌어 보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그것밖에 없었다. 연길의 생활에 익숙해지면서 차츰 나는 안정을 찾아갔다.

그러던 어느 날, 함께 일하던 김 선생이 요청을 해왔다. 자신이 가르쳐왔던 학생을 좀 맡아달라는 것 이었다.

학생자료를 보던 나는 놀랐다. 한국 학생이었다. 기대해왔던 일이지만 정작 이렇게 부딪치고 보니 당황스러웠다. 하지만 나는 마음을 다잡고 약속한 시간에 학생의 집을 방문했다.

북대 산기슭에 자리한 아담한 분홍색 아파트는 들어서는 순간부터 나를 흥분시켰다. 여기는 모두 한국 사람들만 사는 아파트 같았다. 초인종을 누르니 30대 후반으로 보이는 젊은 여인이 나왔다. (어머나, 이 사람이 한국 사람이네~) 처음 본 한국 사람을 나는 유심히 살펴보았다.

온화해 보이는 인상에 키가 훤칠했다. “재능교육 선생님이시네요. 들어 오세요” 짧은 인사말이었지만 나는 무슨 영화를 보는 듯 했다. 한국 드라마에서 나오는 말투와 똑 같았던 것이다.

북한에서 영화 속에 나오는 배우들의 말투는 실제 사람들이 하는 말투와 다르다. 한국 드라마를 보면서 나는 실제 사람들은 어떻게 말할까 하고 상상을 많이 해보았다. 그런데 이렇게 직접 만나보니 나 자신이 무슨 영화 속이나 소설 속에 들어온 느낌이었다.

“아, 선생님이 바뀌신다더니 젊은 분이 오셨네요.” 하면서 그 학부형은 고향이 어디냐고 물었다.

나는 장춘에서 왔다고 대답했다. 더 물어볼까 두려워 나는 말머리를 돌려 아이들을 만나보고 싶다고 했다. 아이들은 남자애와 여자애 둘 이였는데 해말쑥하고 예쁘장한 모습이 티 하나 없이 맑고 깨끗해보였다. 잠간 만나고 왔지만 그 후로 나는 웬일인지 자꾸 그 집에 마음이 끌렸다. 그래서 그 분홍색 아파트에 갈 때는 일부러 옷차림도 바로잡고 몸가짐도 신경 썼다. 그들이 보여주는 너무도 예의 바르고 깍듯한 모습에 나도 모르게 끌리는 거 같았다. 항상 그 집에 가면 은은한 음악소리가 울려나왔다. 무슨 음악인지는 몰랐지만 마음을 편안하게 해주는 음악이었다. 나는 차츰 그들이 가깝게 느껴졌고 나도 그들처럼 깨끗한 마음을 갖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처음으로 본 한국 사람들, 나에게 그들의 모습은 이렇게 아름답게 다가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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