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탄할 세월 보낸 이 학생을 보라!

‘남한’그리고 ‘남조선’

조그마한 광고를 보고 찾아간 회사가 생각보다 큰데 놀랐지만 더욱 놀랐던 것은 그 회사가 한국기업이라는 것이었다. ‘대한민국’이라는 이름을 처음으로 듣게 된 것은 1989년에 평양에서 열린 제13차 ‘세계청년학생축전’때였다. 그때 축전에 참가한 남한의 임수경 학생은   판문점에서 “나는 나의 조국인 대한민국을 사랑합니다”라고 외쳤고 태극기를 몸에 감았다.

생중계된 그 방송은 딱 한번 비추었는데 실수라고 생각했는지 바로 사라졌고 그 장면은 다시는 볼 수 없었다. 하지만 그때 순간처럼 비춰진 영상은 나의 뇌리에 깊이 남았다.

‘대한민국’이라는 말, 그리고 그 ‘태극기’라는 깃발의 뜻은 알 수 없었지만 나에게 뭔가 이상하게만 느껴졌다. 그 때는 ‘조선’이라는 말이 훨씬 정다웠고 ‘공화국기’가 더 자랑스러웠다.

중국에 와서도 중국 사람들이 평상시에 ‘한국’이라고 부르는 것을 처음에는 이해가 되지 않았다.

중국은 북한과 혈맹관계가 있는 나라가 아닌가? 그런데 왜 ‘남조선’이라고 부르지 않고 ‘한국’이라고 부를까? 그 이유는 좀 시간이 흐른 뒤에 어렵지 않게 알 수 있었다.

중국에서도 80년대 이전에는 ‘남조선’이라고 불렀지만 개혁개방이 시작되고 남한과 교류가 활발히 이루어지자 중국은 자연히 ‘한국’이라고 부르기 시작했고 각자 이름에 남북을 붙이지 않고 ‘조선’ ‘한국’이라고 구분해서 부르고 있다고 한다.

나에게는 호기심 절반 두려움 절반이었다. 하지만 그 당시 나에게 한국이니 조선이니 따지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일자리였다. “이 회사에서 받아준다면 무엇이나 열심히 할 것이다” 라고 생각했다.

회사에서는 우선 조선말을 잘 하는지 테스트를 했다. 그리고 학력이 어느 정도 인지 물었고 초등학교와 중학교 학생들의 수학을 가르칠 수 있는지 물었다. 중국에서 수학이 어떤지는 잘 몰랐지만 그래도 고등학교를 우수한 성적으로 마쳤던 나는 자신이 있었다.

일주일 간의 훈련기간을 마치고 나는 바로 재능교육회사 교사가 됐다. 후에 알게 된 일이지만 연길에서도 그 회사는 들어가기가 어려운 한국회사 중의 하나였는데 많은 조선족들이 한국이나 해외로 가면서 조선족 교사가 부족해 졌다.

결국 나는 중국에서 대학졸업생도 들어가기 어렵다는 한국회사에 취직하게 된 것이었다. 물론 나는 내가 북한 사람임을 숨겼다. 길림성 장춘 에서 왔다고 했다. 중국말과 조선말을 다 하는 것을 보더니 별다른 의심을 하지 않았다.

아마 내 생각에는 대다수의 탈북자들은 숨어서 지내는데 이렇게 당당히 회사에 취직하겠다고 오는 경우는 별로 없었기에 따져보지 않았던 것 같다.

회사에서 일하면서 나는 중국에서 차지하는 한국의 위상을 더 많이 느낄 수 있었다. 회사의 직원들은 한국 사람은 아니었지만 여느 중국 사람들하고 달라 보였고 친절했다. 교육용으로 나온 교재들은 내용도 재질도 훌륭했다.

한국회사에서 일한다고 하니까 함께 사는 룸메이트도 나를 보는 눈이 달라졌다. 한국에 일하러 갔다고 하면 누구나 잘 됐다고 부러워하고 있었고 한국에서 온 한국 사람은 무조건 사장님이었다. 나도 모르게 한국에 대한 동경이 생겼고 한국 사람을 만나보고 싶었다. 그러면 나는 한국을  ‘남한’으로 불러야 하나, ‘남조선’으로 불러야 하나?

그 질문은 중국 땅에서 불법으로 살아가는 나에게 의미가 없어 보였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한국 사람은 중국에서 사장으로 대접받고 조선 사람은 중국에서 거지로 대접받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우리는 한민족임이 분명한데 무엇이 이런 차이를 만들어 놓았을까? 단지 경제력만의 차이일까? 한국 사람들은 어떤 사람들일까? 내가 알고 있던 미 제국주의의 하수인들인가? 정말 자기 주장이 없이 미국에 아부해서 잘 사는 사람들일까?

나는 알고 싶었다. 나와 같은 한민족인 한국 사람에 대해서, 한국이라는 나라에 대해서, 그리고 더는‘한국’을‘남조선’이라고부르지않으리라 생각했다.                                          

기독교헤럴드  admin@evanholy.co.kr

<저작권자 © 기독교헤럴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