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탄할 세월 보낸 이 학생을 보라!

광야의 바람

밤새 산길을 걸어 시내로 내려오긴 했지만 당장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다. 12월의 중국동북에는 칼바람이 세차게 불었다. 하지만 나는 언 몸을 녹일 따뜻한 방을 찾을 엄두도 못 냈다.

점점 나의 마음에 분명해 오는 것은 수중에 돈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이 세상에 믿을 것은 나 자신밖에 없다는 사실 이었다. 세상은 모두가 서로 속이고 뜯어먹고 뜯기는 짐승의 세상으로 보였다.

마음속에는 눈물과 함께 분노가 서로 어우러져 강팍하게 굳어져 갔다. 이제는 더는 당하고만 살수 없다! 어떻게 하든 돈을 벌어 내 앞길은 내가 개척하리라는 생각이 굳어졌다.

생각 같아서는 엄마와 연락이 수월한 연길에 있고 싶었으나 나는 여기 사정도 잘 몰랐고 아는 사람도 없었다.

다시 하북성의 그 식당이 생각났다. 적긴 했지만 월급은 꼬박꼬박 줬던 것이다. 나는 수중에 남아있던 150원으로 차표를 사가지고 다시 하북성행 기차에 몸을 실었다. 내가 다시 돌아오니 로반냥(여자사장)은 여간 반가워하지 않았다.

역시 이전의 고된 생활이 되돌아왔지만 나는 개의치 않았다. 6개월 동안 월급을 꼬박꼬박 모으니 1200원 정도 쥘 수 있었다. 나는 그 돈을 가지고 다시 연길로 돌아왔다. 그리고 제일 먼저 연길의 중심가에 있는 컴퓨터 학원에 등록했다. 이 세상에서 살아가려면 뭔가 꼭 배워야 한다고 늘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중국에 나와서 컴퓨터가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다음부터 나는 늘 컴퓨터를 너무너무 배우고 싶었다.

다행히 나는 내가 등록한 학원에서 전혀 북한사람이라는 의심을 받지 않으면서 타자치는 법과 워드 등 프로그램을 배울 수 있었다. 하지만 나는 무한정 앉아서 컴퓨터를 배울 수 없었다. 당장 집세를 내야하고 먹을 것을 사야 했기 때문이다.

나는 어떻게 하면 돈도 벌고 컴퓨터를 배울까 생각을 하다가 문득 피시방이 생각났다. 피시방에서 일하면 컴퓨터를 배울 수 있으리라 생각했던 것이다. 일자리는 어렵지 않게 얻을 수 있었으나 컴퓨터를 배울 수 있으리라는 나의 생각은 오산이었다. 카운터를 보는 일을 맡은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돈 세어 받는 것이 전부였다.

그런데다 로반(사장)은 계속 나에게 밤일을 시켰다. 석 달 동안 하니 나는 몸이 말이 아니게 망가졌다. 하지만 그만둘 수도 없었다. 나는 병든 몸을 끌고 계속 일하러 나가야 했다. 하지만 그 일도 끝내 계속 할 수 없었다.

어느 날, 로반이 하루 돈 계산이 맞지 않는다고 하면서 그 잘못을 몽땅 내게 뒤집어 씌웠던 것이다. 결국 그동안 일한 값의 절반도 못 받고 쫓겨나게 되었다.

그런데다 세든 집은 자주 경찰들이 와서 검열을 했다. 중국 길림성의 장춘에서 왔다고 하긴 했으나 나는 불안해서 수시로 집을 옮겨야 했다.

또다시 나는 눈 내리는 연길시내를 헤매면서 일자리와 집을 찾으러 다녔다. 내가 늘 지나다니는 큰 길에는 연길에서 제일 큰 교회가 있었다. 나는 늘 거기에 한번 가보고 싶었으나 건물이 너무 어마어마해 감히 들어갈 엄두를 못냈다.

어느 날 나는 용기를 내어 교회에 들어가 맨 뒷자리에 앉았다. 사람들이 기도하는 모습을 보면서 나도 따라 기도를 했다. 하나님이 만약에 계신다면 나의 앞길을 열어달라고…

누가 반겨주고 오라는 이도 없었지만 나는 웬일인지 교회가 끌렸다. 점점 나는 나의 마음에 그 어떤 면역이 생기는 것을 느꼈다. 이제는 웬만한 일에도 별로 두려움이 생기지 않았다.  죽기를 각오하고 어떻게 하든 견디어 내야겠다는 생각만 가득 찼다. 열심히 벼룩시장 신문을 뒤지던 나는 어느 날 신문의 한 귀퉁이에서 자그마한 광고를 봤다.

조선말을 할 줄 아는 교사를 모집한다는 광고였다. 더 생각할 여유가 없었다. 나는 무작정 그 회사를 찾아 떠났다. 회사는 내가 사는 곳에서 멀지 않은 곳에 있었다. 헐레벌떡 회사에 들어서는 순간 나는 숨이 꽉 막히는 듯 했다. 건물에는 빨간 색깔로 쓴 ‘한국재능교육회사’라는 간판이 큼직하게 붙어있었다. 남조선회사였던 것이다!                             

                                      글 / 장소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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