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탄할 세월 보낸 이 학생을 보라!
내가 갈 길은 과연 어디에…
연길에 도착해서 나는 제일먼저 북한의 어머니에게 편지를 썼다. 꿈만 같았다. 이렇게 내가 살아있다고 편지 쓰는 날이 왔구나! 하고 생각하니 눈물이 앞을 가렸다.
하지만 편지에는 나의 이름이나 내가 북한사람이라는 것을 알 수 있는 내용을 쓰면 안 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래서 나는 중국의 조카가 보내는 거라고 썼다.
이제는 어머니가 보내는 회답편지만 기다리면 되었다. 그렇게 되면 더 이상 바랄 것이 없다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나는 곧 이것이 전부가 아님을 깨달았다. 내가 앞으로 어디에서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 나는 전혀 모르고 있었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죽음과 굶주림이 있는 북한으로는 다시 가지 않겠다는 생각만은 확실했다. 나는 어머니의 외가인 친척집에 가서 도움을 받기로 결심했다. 나에게 삼촌벌이 되는 어머니의 외사촌 동생내외는 나를 반갑게 맞이했다.
그러면서 마침 일손이 필요한 곳이 있었는데 잘됐다며 거기에 가서 일하라고 했다. 나도 친척들이라 믿고 그들이 하라는 대로 따라 나섰다. 그들이 나를 데려간 곳은 어느 깊은 산골의 산막집이였는데 내가 해야 될 일은 거기 일군들에게 밥을 해주는 일이었다.
서넛 되는 인부들이 있었는데 그들은 모두 탈북자들이었다. 양강도, 함경남도, 함경북도 등에서 온 사람들이었는데 그들은 모두 중국공안의 단속을 피하여 산속에 숨어들어온 사람들이었다. 모두가 한 번 이상은 중국에서 붙잡혀 북송되었다가 다시 탈북한 사람들이었다.
한 사람은 철사로 손을 꿰여서 북한으로 끌려갔다고 하면서 상처자국 난 손을 보여줬다. 그들은 중국에서는 산속밖에 안전한 곳이 없다고 생각하면서 여기까지 숨어들어 온 것이었다. 그런데 거기 조선족 사장은 그것을 이용하여 돈 한 푼 안주고 아침부터 저녁까지 그들을 혹독하게 부려먹었다. 하지만 인부들은 대꾸 한 번 안하고 수걱수걱 일만했다.
나에게도 예외가 없었다. 아침 일찍 일어나서 인부들과 사장에게 밥을 해주는데 나의 행동거지가 조금만 거슬려도 무지막지한 욕이 날아왔다. 특히 “조선거지”라고 하는 데는 정말 참을 수 없었다.
내가 너무 분을 못이겨 헛간에서 우는데 한 인부가 와서 위로해주었다. 그렇게 해도 우리는 할 수 없다는 것이다. 어떤 탈북자들은 짐승이 자는 우리에서 생활하면서도 버티는데 우리는 그나마 다행이라고, 어떻게 하든 사장 눈 밖에 나지 않게 조심해야지 안 그러면 모두 북송되니 조심하라고 몇 번이나 당부했다.
조선족들이 탈북자들을 도와준 실례도 있지만 돈에 어두운 어떤 조선족들은 탈북자를 고발해서 상금을 받기도 하고 깊은 산속에서 공안에 고발한다고 위협하면서 일을 마음껏 시켜먹는 악덕 조선족들도 있었다. 불행하게도 나는 좋은 사람을 못 만나고 우리를 이용해서 자기 이속을 채우려는 조선족을 만난 것이다. 그것이 내가 중국 땅에서 처음으로 본 조선족의 모습이었다.
나는 분노가 치밀었다. 어떻게 같은 민족이 이렇게까지 할 수 있단 말인가? 그들의 눈에는 돈밖에 안 보이는가?
여기서 떠나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밤에 가만히 짐을 챙겨 들고 나오면서 나는 이제는 그 어디 가서도 다시는 내가 조선사람이라는 말을 하지 않으리라 결심했다. 중국에서 조선사람이라는 말은 수치와 가난의 대명사였다.
별이 총총한 숲속을 빠져 정처없이 걸으면서 나는 하늘을 우러러 외쳤다. 나는 도대체 어디로 가야 하는 가고… 내가 가서 행복하게 살 나라는 과연 어디에 있는가고..
그렇게 조잘대던 풀벌레도 나의 애절한 외침에는 뚝 울음을 그쳤다. 그들도 뭐라 위로할 말이 없는 듯, 고요해진 숲속에는 나의 흐느낌 소리만 멀리 울려퍼졌다.
글 / 장소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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