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탄할 세월 보낸 이 학생을 보라!

길가 여기저기 시체가 널려 있어 공포의 분위기 엄습

당시 내가 살던 함흥 땅에는 길가에 여기저기 시체가 널려 있어 공포의 분위기가 엄습하였고 우리도 정신을 차리지 않으면 언제 죽을지 모른다는 생각에 우리 가족은 무엇이든지 가리지 않고 했다. 아마도 그때가 바로 기아가 극에 달하였던 시기였다고 본다.

내가 다니던 수예작업반은 내가 들어가서 한 번도 배급이나 월급을 타본 적이 없다. 수출작업반이라고 허울이 좋아 많은 처녀들이 들어가고 싶어 하는 직장이었다. 일본 기모노 옷에 수놓는 일이라 일은 깨끗하였지만 정밀의 노력을 요구하는 쉽지 않은 작업이었다. 그럼에도 보수는 없었다. 기약 없는 일을 하면서 굶고만 있을 수는 없었다.

직장을 그만두면 무직이라서 조사가 들어온다. 그럼에도 할 수 없다. 당시에 식량사정이 너무 악화되다보니 수많은 사람들이 직장을 그만두거나 휴직을 하면서 식량구입에 나섰다. 사회는 말할 수 없이 비참해졌다. 사람들은 무리로 쓰러졌고 규찰대가 나와 시내를 돌면서 시체를 한차씩 거두어 실어 가까운 야산에 가져다 묻었다. 묻는 사람들도 힘이 없어 깊게 파지도 않는다.

또 자기에게 직접 보수가 돌아오는 일이 아니니 대충대충 한다. 그렇게 묻힌 시체들은 비가 오면 바로 땅 위에 드러난다. 그러면 까마귀들이 살을 파먹으려고 새까맣게 모여든다.

또 전염병이 급속히 퍼졌다.

이름도 모르는 전염병이 주위 사람들을 여지없이 쓰러뜨렸다. 우리 집에서는 젊었던 언니와 내가 전염병에 걸렸다. 이틀 만에 나도 언니와 함께 전염병동에 실려가게 되었다. 병원의 뒤 구석에 따로 마련해놓은 병동은 사체실과 바로 마주해 있었다. 병실에 사람이 가득 찼는데 하루에 몇 명씩은 사체실로 갔다. 다행히도 아버지와 어머니의 정성어린 노력으로 언니와 나는 거기에서 죽음을 면할 수 있었다. 병을 이기고 나니 회복은 빨랐다. 정말 정신을 차리지 않으면 죽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우리 가족을 불안하게 했다.

그때 이웃집의 형일이 아버지가 찾아왔다. 우리 어머니가 중국태생이라는 것을 알고 있는 그는 중국에 가면 친척에게 도움을 받을 수 있을거라는 얘기를 해주며 함께 갈 것을 권했다. 아버지는 국경을 넘는다고 펄쩍 뛰었지만 중국에 외갓집이 있던 어머니는 흔쾌히 동의를 했다. 아버지의 거듭되는 만류에도 어머니는 나를 데리고 떠나기로 했다. 이 또한 내가 원하던 것이기도 했다.

중국이라는 세상을 보고 싶었던 것이다. 결국 나는 떠났다. 이 세상에서 마지막으로 아버지를 보는 길이었다. 다 허물어져가는 단칸방에 허리를 꼬부리고 누워있던 아버지가 지금도 눈에 자꾸 밟힌다.

아버지 부디 이 딸을 용서해주세요!

            장소연/ 한국외국어대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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