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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용궁 목사의 이야기 교회사 <11>영지주의
  • 기독교헤럴드
  • 승인 2024.04.11 17:29
  • 호수 6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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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용궁 목사(D.Min., 많은샘교회 담임, 미국 루터신대(LTSP) 졸업)

사람들은 기본적으로 이분적인 사고방식에 익숙합니다. 이에 기초한 설명이 설득력을 가집니다. 물질은 악하고 영은 선합니다. 둘은 전혀 다른 것입니다. 이러한 전제가 종교에서도 적용됩니다. 모든 이원론이 틀린 것이 아니라 종교 혼합주의의 산물로 왜곡된 해석이 문제입니다. 즉, 성경에 없는 말과 설명, 그리고 우리의 신앙고백과 다른 결론이 문제입니다.

헬라의 이원론, 즉 물질과 영(육체와 영)의 구분과 악의 기원 문제에 영향받은 기독교인들은 신약과 구약을 급진적으로 재해석하게 됩니다. 그들은 하나님이 육이 될 수 없기에 성육신을 부정합니다. 그리고 소그룹에 특별한 방법으로 계시된 참된 지식인 그노시스(gnosis)에 호소하게 됩니다. 이를 영지주의(Gnosism)라고 부릅니다.

문제는 다음과 같습니다.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셨습니다. 그러면 완전히 선한 창조여야 합니다. 그러나 죄가 있습니다. 부족한 창조물도 있습니다. 하나님이라면 절대 있을 수 없는 부분입니다. 그렇다고 악한 존재가 창조했다고 해도 문제는 심각해집니다. 따라서 하나님과 비슷하지만 온전한 신의 모습이 아닌 존재가 상정됩니다. 쉽게 설명하자면 하나님의 아들이란 식으로 설명하여 하나님과 같은 능력은 있지만 신은 아닌 다른 존재를 말합니다. 이것은 조로아스터교의 영향을 받은 시리아의 사상에서 기인합니다. 이른바 유출설내지는 에온(Eon)설입니다. 하나님으로 떨어져 나온 에온이 유출되면서 최하층의 에온이 인간 세상과 결합됩니다. 이것을 플라톤의 ‘대화’에 나오는 데미우르고스(Demiurgos)라고 합니다. 데미우르고스는 계속해서 파생된 에온 가운데 물질의 어머니로부터 나와 세상을 창조합니다. 데미우르고스는 구약의 하나님인 야훼와 동격이며, 구약의 하나님은 에온의 다른 지칭이라 합니다. 이 지식을 전한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죽으심으로 물질(육)로부터 해방된 분이라고 합니다.

따라서 구원은 최고신(알려지지 않은 아버지)으로 복귀이며 신약의 예수님이 이를 담당한 에온일 뿐입니다. 예수님의 아버지만이 최고의 신, 참 신이십니다. 예수님은 가현적인 육체를 취하셨고 십자가에서는 육체만 죽었습니다. 일반인들은 물질적 계급이며 기독교인은 영적 계급을 형성하고 최고의 인식을 얻은 자만이 신적 계급에 속합니다. 따라서 낮은 수준에 머무는 교회가 아니라 참되고 높은 수준에 다가선 선택된 자가 되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이를 깨닫는 것이 참된 인식이며 특별한 종교적 실천이 있어야 구원받는다고 합니다.

그렇기에 더 쉽게 이들의 포교 방식을 예를 들어 재현하자면 다음과 같습니다.

“형제님, 당신은 악의 기원을 아십니까? 하나님이 모든 것을 창조하셨다고 하지요? 그러면 사단은 누가 만들었나요? ... ... 하나님은 선하다는데 왜 악이 있나요?”

당연히 존재의 시작에 대한 질문이 성경의 주된 관심이 아니기에 누구라도 대답하기 어렵습니다. 그때 말합니다. “마침, 나보다 더 많이 아는 신령한 목사님이 오시는데 함께 만나보지 않으시겠습니까? 영적인 문제를 잘 설명하시는 분이십니다. 다니는 교회와 목사님은 타락했기 때문에 성경을 설명 못합니다. 나보다도 더 많이 영적으로 깨달으신 높은 목사님이 오십니다. 언제, 어디에서 영적집회를 여십니다. 형제님과 꼭 함께 참석하고 싶습니다. 누구보다 형제님이 꼭 아시고 구원받기 원합니다. 세상의 문제가 거기에 가면 다 해결 받습니다.”

이는 오늘날도 많이 보는 형식이 아닐까요? 기존 교회보다 영적인 모임이 있고 그 안에도 영적 훈련과 헌신에 따라 더 높은 영적 계급이 형성된다고 합니다. 근본적인 문제점은 예수의 신성 부인, 십자가에 달린 것은 육이지 영은 아니라는 식의 다른 견해, 부활의 부정, 혼합주의, 구원론에 결부된 종교의식과 신비한 계시 등입니다. 오늘날에는 예수님이 아닌 다른 구원자를 주장하는 형태로도 나타납니다. 영지주의는 지금도 다양한 형태로 존재합니다. <다음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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