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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기고 / 비밀의 왕국 가야 <35>1세기 가야는 기독교 왕국이었다
  • 기독교헤럴드
  • 승인 2024.04.11 17:04
  • 호수 6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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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주중앙교회 원로

도마는 어떤 사람인가?

3. 제자 도마 

1) 에뎃사(Edessa)

아따이의 선교

동방기독교가 학살 아래 놓여 있던 428년에 그리스도의 양성론을 주장한 콘스탄티노플의 대주교인 네스토리우스(375-450)는 431년 에베소 회의에서 단성론자 키릴파에 의해 이단으로 정죄되어 로마 황제로부터 파문당하고 로마제국에서도 축출당하여 페르시아 땅으로 도망해 오자 페르시아 당국은 그들을 환영해 주었다. 같은 그리스도교인으로서 네스토리우스파는 환영받고 그들보다 먼저 있었고 421년 로마교회와 결별을 선언해 왔던 시리아 교회와 다른 많은 교회가 핍박받게 되자 이들과의 연합이 이루어졌고 사산 왕조는 이런 교회들을 묵인해 주었다. 468년에 하나의 교회로 연합된 동양 교회가 페르시아 국가로부터 정식으로 공인을 받게 되면서 박해가 멈추게 되었다.

에뎃사에 신학교가 있어 선교에 나섰으나, 489년 동로마 황제 제노가 에뎃사를 점령하고 신학교를 폐쇄하고 제국 안의 모든 네스토리우스파에 추방령을 내리자, 이들은 더 동쪽으로 옮겨 페르시아 영토 안에 있는 니시비스에 신학교 문을 열었다. 여기서부터 기독교는 사산 왕조 전역으로 전파되었고, 심지어 사산 왕조와 교역하던 트란스옥시아나 즉 시르다리아강과 아무다리아강(옥서스 강) 사이에 위치한 지역으로 현재의 우즈베키스탄, 타지키스탄 대부분, 카자흐스탄 남, 서부를 포함하는 지역에서도 네스토리우스교가 번성했다.

또한, 사산 왕조로 정략적인 결혼을 한 아르메니아인 후궁들은 아르메니아 사도 교회를 믿는 같은 아르메니아인 동족들을 후원하였다. 당시 교회 직제는 감독, 목사, 설교자, 교사, 장로, 집사 등이 있어 주일을 엄격히 지켰으며 예배당 앞 좌석에는 남자, 뒷좌석에는 여자가 구분되어 앉아 예배를 드렸고. 2세기경에는 순회전도자가 이란에서 전도하였다는 기록이 있다. 3세기경에는 금욕주의와 선교 정신을 계승한 페르시아교회가 중국, 터키, 인도, 아라비아에 선교사를 파송하여 복음을 전하였으나 6세기부터 이슬람이 이란에 정착하면서 기독교는 급격한 쇠퇴의 길을 걸었다. 그로 인해 동방교회를 네스토리우스교회라고 명명하게 된 동기이기도 하지만 대부분 아시아에 흩어진 교회들은 네스토리우스파에 속하지 않았으며 그들의 전통을 그대로 이어가고 있었기에 이들 모두를 네스토리우스파라고 부르는 것은 문제가 있다고 할 수 있다.

또 다른 하나는 중국의 경교비에 얽힌 이야기로 인해서 네스토리우스교회라는 말이 퍼지게 되었다. 경교비가 발견된 것은 1623년이다. 당시 청나라에 가 있던 천주교 선교사 양마낙(陽瑪諾 Emmannuel Diaz)은 1625년 8월23일 바티칸 교황청에 보고하였고 1644(정종 17년)년 그의 책 당경교비석송정주(唐景敎碑石頌正註)라는 이름으로 출간하여 명나라 조정에 올리고 그것을 바티칸 교황청에도 보냈는데 여기에는 경교비(景敎碑)라는 이름으로 기록하였다. 그런데 그 후 200년이 지난 1860년 영국과 청나라 간에 북경조약(北京條約)이 체결되어 중국에 선교사의 활동이 자유로워지게 되자 개신교 선교사들이 중국에 들어가기 시작하였다. 1888년 James Leffe가 이 경교비를 보고 “이 경교 비문에는 그리스도의 기적이나 십자가의 죽음과 부활에 대한 기록이 없으며 기독교적인 양식과 복음의 색깔이 전혀 없다”고 하면서 책을 출판했는데 그 책 이름이 바로 “The Nestorian Monument of Hse-anfu”이다. 그리고 1911년 덴마크 출신 개신교 선교사 겸 기자였던 하락모는 “The Nestorian Monument”라는 책을 내었고 두 번째 책은 “My Nestorian Adventure)이었다. 이로 보면 경교비를 네스토리안비라고 한 것은 가톨릭 선교사가 아니라 오히려 개신교 선교사들이었다는 사실이다. 왜 이들은 이렇게 경교비를 네스토리안비라고 명명했던 것일까? 가톨릭 선교사들은 경교비를 보고 귀중히 여겼다. <다음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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