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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권하는 사람들 / 전북지방회 독서클럽‘아침 그리고 저녁’
  • 기독교헤럴드
  • 승인 2024.03.29 15:15
  • 호수 6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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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원준 목사(모현교회)

소설, ‘아침 그리고 저녁’은 욘 포세의 단편 같은 장편소설로서 문학동네에서 2019년에 펴냈다. 욘 포세는 노르웨이 출신의 작가로서 하르당게르표라는 작은 마을에서 어린 시절을 보내었다. 그는 2023년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이력을 지니고 있다.

이 소설은 요한네스라는 한 인물의 출생으로 시작해서 그의 죽음으로 맺어진다. 더 분명하게는 죽음 이후의 모습을 통해 죽기 전의 삶을 그리고 있다. 1장은 짧은 분량으로 요한네스의 출생의 모습을 그의 아버지 올라이의 관점에서 그려낸다. 아버지 올라이는 문 너머에서 자신의 아내가 아들을 출산하고 있을 모습을 상상하며 그의 아들에 대한 기대와 사랑을 풍부한 표현으로 풀어낸다. 때로는 눈이 아닌 마음이 더 많은 것을 볼 수 있음을 깨닫게 된다. 특별히 1장은 많은 비문들을 포함하고 있다. 완벽함을 추구하는 이들에게는 다소 읽기 거북할 정도의 비문의 범람이다. 하지만 인간이 참으로 경이롭고 황홀한 장면과 상황을 표현할 때 어찌 완벽한 문장만을 사용할 수 있겠는가. 실은 대부분 비문으로 표현하지 않던가. 어부인 아버지 올라이는 그렇게 자신의 아들이 태어나고 그와 함께 그려나갈 자신의 삶의 경이와 황홀 그리고 기대를 비문으로 표현하고 있으니 이것은 비문의 범람이라 말하기 보다는 비문의 향연이라 부르는 것이 적절할 것이다. 아마도 이 또한 저자의 의도가 아니었겠는가 조심스레 유추해본다.

2장은 한 노인의 모습으로 시작한다. 독자는 1장을 통해 이 소설이 아마도 요한네스의 아버지 올라이가 주인공의 입장에서 아들을 키워나가는 과정에서 겪는 사건을 말하거나 혹은 요한네스의 성장기에서 일어날 사건을 말할 것이라 유추하게 될 것이다. 그러나 틀렸다. 독자들은 곧 그가 아버지 올라이가 아닌 이제는 인생의 황혼기에 접어든 노인 요한네스의 모습임을 깨닫게 되고, 그가 지난 인생들을 회상하며, 인생의 의미를 찾아가는 이야기일 것이라 재차 유추하게 될 것이다. 그러나 그 또한 틀렸다. 독자들은 주인공 요한네스의 모습에서 머지않아 무언가 미묘한 이질감을 느끼게 된다. 이윽고 그가 생전의 요한네스가 아닌 사후의 요한네스임을 결국 알게 될 것이다.

저자는 2장을 통해 주인공 요한네스가 맞이한 사후의 아침부터 저녁까지의 시간을 매우 담담하고 간략하게 그려낸다. 흥미로운 것은 그 담담하고 간략함이 전혀 가볍지 않다는 것이다. 한 인물의 사후의 하루가 물리적으로는 제한이 있으나 그 안에 담겨진 추억과 기억, 감정들은 그 제한을 넘어서는 풍부함을 가지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주인공 요한네스의 사후의 모습은 오히려 넓은 바다의 일렁임과도 같은 무게감과 그 바다를 둘러싼 풍광과 같은 넓은 느낌을 준다. 어쩌면 그의 내면을 채웠을 노르웨이 해안의 자연이 그의 문체와 작품을 통해 드러났을지 모른다고 개인적으로 추측해본다.

출생의 모습을 맞이한지 얼마되지 않은 요한네스는 과정으로서의 삶을 금새 건너뛰어 곧바로 죽음 이후의 순간을 맞이한다. 그리고 마치 누구나 그러할 것 같은, 누구나 그랬으면 좋을 것 같은 죽음 이후의 하루의 시간을 살아간다. 작가는 요한네스의 죽음 이후에 주어진 하루의 시간을 통해 우리에게 사후에 일어날 일에 대하여 설명하는 것이 아니다. 시점은 분명 사후의 하루이지만, 오히려 아침으로서의 출생과 죽음으로서의 저녁 사이의 ‘생애’를 그려낸다. 그리고 독자들로 하여금 주인공 요한네스가 맞이한 그 짧은 아침과 저녁, 그리고 그 사이의 ‘생애’에 어느덧 동화되고 동감하며 그들에게도 곧 다가올 저녁의 시간을 준비하게 만든다.

소설 속에는 많은 등장인물이 나오지 않는다. 그리고 주인공인 요한네스에게 있는 주변인들도 그리 많지 않다. 어찌 보면 매우 초라하고 단촐한 인생인 듯 보인다. 하지만 동시에 모든 사람들이 갖는 매우 일반적이고 정상적인 모습이기도 하다. 그의 출생의 순간에는 아버지와 어머니, 그리고 산파 뿐이다. 그의 죽음 이후 그의 전 생애를 통해 남은 것은 그가 사랑한 아내와 일곱 자식 가운데 가장 아낀 딸 한명, 추억 속의 맺어지지 못한 사랑, 그리고 소중한 친구다. 누군가에게는 빈약하고 초라해 보일 모습이 왜 이 소설을 읽으면 오히려 담백한 여백으로 여겨지게 되는 것일까. 어쩌면 우리에게는 사실 그것만해도 충분한 것이 아닐까. 그를 기억하게 만드는 것, 그가 남긴 것들 또한 그리 크지도 많지도 않다. 그가 즐기던 담배, 커피, 고깃배, 친구와의 일상, 산책, 그리고 집 문 앞의 유행에 뒤쳐진 판서뿐이다. 이 정도가 요한네스라는 한 사람을 기억하게 해줄 것들이다. 작가 욘 포세의 말처럼, ‘사람은 가고 사물은 남는다.’ 하지만 이 책을 읽어보면 앞선 작가의 말은 이렇게 재해석된다. ‘그 사람의 사물이 있는 한, 그 사람도 있다.’

끝으로 131-132쪽에서 등장하는 사후의 세계에 대한 이야기를 굳이 종교적인 관점이나 논쟁거리로 받아들이고 싶지는 않다. 이 책은 사후의 세계에 대하여 말하려하는 것이 아니다. 이 책은 오히려 그 사후 이전의 인간의 삶과 인간다움에 대하여 고찰하게끔 만드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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