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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약성서의 시문학(9)탄신과 구원의 메타포
  • 기독교헤럴드
  • 승인 2024.03.20 20:33
  • 호수 6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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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 신학박사, 천광교회 담임

시에서 메타포는 자아와 세계 사이에 가로놓여 있는 불연속성을 극복함으로써 시의 통일과 화해를 성취하게 하는 동일성의 시학, 또는 통일성의 철학을 반영하고 있다는 점에서 매우 중요한 요소이다. 시편에 나타난 많은 메타포를 시론을 따라서 이해하는 것은 시편의 본 의미를 더 깊이, 또 바르게 이해할 수 있는 한 방법이 될 수 있다.

시의 특질상 근대적인 시법이 주로 서정시에 머물러 있다고 보고 현대시를 서사나 과학적 수사법(修辭法)을 동원하여 생의 문제를 다루고 있다고 볼 때, 시편 전체의 시는 단순한 서정시의 관점에서 이해하려고 하면 도저히 그 깊은 시적인 이해를 할 수 없고, 이렇게 현대시가 가진 철학성이나 다양한 시적 장치의 틀에서 본다면 더 깊은 감동과 시의 본 의도를 읽을 수 있다. 현대시에 있어서 앞으로의 수사학의 방향은 작자의 에스프리를 이해하고 이미지를 분석하고 심리 현상을 종합하여 시상의 근원에서부터 그 수법의 개성적인 향기를 찾아내는 광범하고 활발하고 의기로운 작시 연구의 넓은 영역을 지향하여 찬란히 개화될 세계가 올 것이다.

폴 리쾨르는 문장에서 문장론을 강조하고 있다. 단순히 사전적 의미로서의 상징이나 메타포가 아니라 문장 속에서 의미를 찾아내야 한다는 명확한 지적을 하였다. 즉, 문맥의 중요성을 말한 것이다. 문맥을 무시하고 사전적 의미만 강조하면 더 이상 시는 힘을 갖지 못한다. 문맥을 따라 해석해야 한다. 예컨대 물의 의미가 구약에서는 두려움과 공포를 그려주고 있지만 동시에 생명과 쉼을 말하기도 한다. 그것은 사전적 의미를 찾는 것이 아니라 주어진 사건의 틀 안에서 문맥을 따라 읽어야 그 속에 담긴 의미를 찾을 수 있다.

신약에 와서 예수께서 우물가의 여인에게 “이 물을 먹는 자마다 다시 목마르려니와 내가 주는 물을 먹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라”(요 4:13-14)고 말씀하셨을 때, 이 물의 메타포적 의미가 우선적인 중요성을 가지는 한편, 예수께서 물이라는 말을 사용하여 의미하신 메타포 속에서 그것은 이차적 의미, 곧 근원적인 구원의 의미를 가지게 된다.

폴 리쾨르가 말한 문맥 속에서 그 메타포의 의미를 찾아가는 것은 성경의 해석에 있어서도 중요한 요소가 된다. 어떤 작품들은 메타포 자체에 의미를 찾으려다가 많은 에너지를 소진하고, 왜곡된 해석을 가져오기도 한다. 문자의 의미만을 추구하게 되면 그 메타포를 둘러싼 문맥의 감정이나 저자의 의도나 문맥 속에 포진된 함의를 읽어내지 못하게 된다. 메타포는 독자의 집요한 해석을 요구하며, 메타포가 내포한 함축적 의미를 감동으로 느끼고, 해석으로 드러내야 저자의 의도를 바로 보는 것이다.

성경해석도 수많은 메타포의 그림들을 사설이나 논문으로 이해하려고 하면 그 함의를 읽어내지 못하는 우를 범하게 된다. 메타포가 가진 이미지, 그림언어가 가진 느낌과 감동을 읽어낼 때 성경이 말하는 의도를 바로 파악할 수 있다.

다만 메타포에 대한 해석에 있어서 문장 전체 문맥 속에서 이해하여야 주관주의적 오류에 빠지지 않고 저자의 의도를 파악할 수 있다.

시편의 탄식시는 생의 절박한 상황에서 절박을 야기시키는 적대자, 그 상황에 처해 삶의 곡절을 겪는 시인 자신과 이 상황에 적극적으로 개입하여 새로운 생의 반전을 이루는 주체자인 절대자에 대한 간구로 가득 차 있는데, 이 모두가 메타포로 포장되어 있어 긴장감과 시편 저자의 처절한 상황이 독자의 문제로 다가오며, 그 상황에서 절대자의 강력한 손길을 경험하게 한다.

시편 22편에 사용된 메타포는 한 고난자가 받는 생의 무게감과 고통을 이해하는 데 좋은 틀이 되면서, 한 걸음 더 나아가 그리스도의 고난을 더 깊이 이해하는 시적 장치라는 틀을 마련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이러한 현대 시론의 관점으로 접근한다면 깊은 탄식과 고뇌와 처절한 메시아의 심리적. 육체적 아픔을 읽을 수 있을 것이다. 이렇게 볼 때 시편 22편은 동양적 자연관이나 인생관에서 묻어 나는 자연합일이나 허무주의 사상이나 신변잡기적인 글이 아니라 인간이 겪는 고난의 깊은 세계를 체득하게 되고, 더 나아가 인류의 짐을 짊어진 메시아의 고통을 노래한 시임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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