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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 영 사모의 편지(174)릴케와 로댕
  • 기독교헤럴드
  • 승인 2024.03.14 07:50
  • 호수 6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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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 영(본지 논설위원, ‘속삭이는 그림들’ 저자)

<릴케의 로댕>은 요 근래 계속 나의 책 상위에 놓여있다. 책도 곁에 두고 싶은 책이 있다. 집에 있는 책도 처리할 생각을 하면 머리가 아프기에 거의 책을 사지 않는 편이다. 아주 드물게 도서관에서 빌려 읽다가 사서 곁에 둔 책이 좀 있긴 한데 릴케의 로댕론이 그렇다.

제목은 릴케의 로댕이지만 로댕의 릴케라고 해도 무방하겠다. 릴케가 로댕을 적은 글이지만 로댕을 빌미로 릴케 자신을 적는 글이라고 해야 맞다. 단순한 로댕의 작품론이 아니라 ‘로댕의 철학을 발견한 릴케의 시’라고나 할까,

릴케가 로댕을 처음 만났을 당시 62세의 로댕은 명성의 절정에 있었다. 첫 만남 이후 거의 4년 동안 로댕은 릴케의 감정과 사고를 지배했다. 특히 릴케는 로댕이 영감 따위에 구애받지 않고 언제나 ‘작업 중’이었다는 사실에 충격을 받았다. 릴케는 영감에 의해서 무언가가 떠올라야 글을 쓸 수 있었지만 로댕은 작업 자체를 영감으로 삼았다. 릴케는 로댕을 통해 “값싼 감정에서 벗어나 화가나 조각가처럼 자연 앞에서 일하며 대상을 엄격하게 파악하고 묘사하는 것”을 깨닫게 된 것이다. 로댕을 만나는 순간 릴케의 예술과 일생 전체가 바뀌어 버렸던 것!

천재인 이십 대 젊은이의 시선은 천 리 밖도 내다볼 것처럼 투명하고 날카롭다. 그러나 이미 중년이 지나 삶의 온갖 때가 덕지덕지 묻은 로댕은 그런 젊은이의 냉정한 시선 앞에서도 전혀 주눅 들지 않는다. 로댕은 작품만을 위해서 살아온 작품의 농부였으니까. “니콜라스 3세의 발이 울었다는 대목을 읽었을 때 로댕은 벌써 알았다. 우는 발이 있다는 것을, 완전한 한 인간을 넘어서 울음은 어디에나 있다는 것을, 모든 땀구멍에서 솟아나는 엄청난 눈물이 있다는 것을.” 나를 서성이게 하던 릴케가 쓴 로댕론의 한 대목이다. 로댕이 처음으로 만든 인물초상 <코 깨진 사내>는 의미심장하다. 시작과 함께 끝을 아우르는 그의 모든 예술적 관점을 관통하는 접점이 아닐까, 아름다움에 대한 당연한 예측만을 일삼던, 혹은 상식에 경도되었던 사람들에게 <코 깨진 사내>는 충격이었을 것이다. 릴케는 쓰고 있다. “운명이 그어놓은 선에 대한 경외, 망가지는 데서조차 창조해 내는 삶에 대한 그의 신뢰를 느끼게 한다”

모든 작품이 거의 그렇지만 사모트라케의 니케를 루브르에서 알현할 때 이미지로 보던 것과는 너무 달랐다. 비록 한쪽만의 날개지만, 천사의 날개가 저렇겠구나 싶었고 금방이라도 훠이훠이 날아오를 것 같았다. 살짝 바람에 흩날리는 옷의 주름들은 저리 고운 비단이 어디 또 있을까, 이렇게 니케를 겉으로만 읽었는데 릴케는 이렇게 썼다. “이 조각상은 단지 연인을 향해 다가가는 아름다운 소녀의 움직임만을 우리에게 전달한 것이 아니며 동시에 그리스의 바람 그 광대함과 화려함의 영원한 형상인 것이다.”

젊은 시절 릴케는 로댕의 비서였다. 릴케는 프라하에서 전시 중이던 로댕의 제안으로 1905년 9월15일부터 1906년 5월12일까지 로댕의 비서로 일하게 된다. 비록 1년도 안 되는 짧은 기간이었고 사소한 오해로 결별했지만, 릴케는 로댕의 위대한 작품에 경탄을 금치 못했고 강연과 글을 쓰는 등 로댕을 전파하는 사도 역할을 했다. 릴케는 로댕을 만난 것을 일생의 큰 행운으로 생각했다. 그는 이 위대한 조각가를 만났던 일이 어떤 문학작품보다 자신의 시에 훨씬 더 결정적인 영향력을 미쳤다고 회상했다. 릴케의 로댕론을 아껴가며 탐독하다 보면 두 거장의 숨결 모두에 감응하게 된다. 로댕 예술과 릴케 문학의 아름다운 향연이 한자리에 있다.

주인 없이 비어 있던 비롱 저택을 릴케가 로댕에게 추천한다. 비롱 저택이 마음에 든 로댕은 자신의 모든 작품을 국가에 기증할 테니 저택에 자신의 미술관을 지어달라고 했다. 로댕은 죽는 날까지 비롱 저택에서 살 수 있었고 로댕의 작품 500여 점과 그가 평생 수집한 미술품 6000여 점을 모두 국가 소장품으로 등록되어서 로댕미술관이 되었다. 로댕미술관을 한번 가보는 것이 내 버킷 리스트 중의 하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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