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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서종표 목사-4無의 삶을 산 김용은 목사(46)김용은 목사님과 우리 가정과의 만남
  • 기독교헤럴드
  • 승인 2024.03.14 07:07
  • 호수 6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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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용은 목사

김용은 목사님과 저의 부친 故 권태선 안수집사님과의 만남은 6.25 전쟁이 끝난 후 1954년 당시 현역 대위로 근무할 때 저의 모친(故 육성진 권사)과의 결혼식 주례로 인연이 되었습니다. 김용은 목사님은 저의 부친을 항상 ‘권 대위’로 부르시며 특별한 관심을 보이시고 교회에 출석하기를 권유하셨습니다. 바쁘다는 핑계로 교회에 나가지 않으니 군산시 영동에서 포목점을 경영하시는 어머니 가게에 오셔서 저의 부친을 전도하시려고 많이 애쓰셨습니다.

권영종 장로(군산중동교회)

아버님은 군대에서 전역하시고 자동차 정비업소를 경영하셨는데 사업이 번창하여 항상 바쁘셨고 어머님 역시 포목점이 번창하여 두 분 모두 인생을 즐기며 교회 생활과는 좀 관심이 없이 바쁘게 생활하실 즈음 저의 외갓집에 큰 보증을 서는 일이 생겨 후폭풍으로 갑자기 가세가 기울어지고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어머님까지 뇌경색으로 쓰러져 하루아침에 불행이 닥쳤습니다.

이때 저의 아버님은 세상 생활을 모두 깨끗이 청산하고 중동교회로 출석하게 되었습니다. 교회를 열심히 섬기는 중 1985년 김용은 목사님의 간곡한 부탁으로 사무장으로 시무하시며 3차 교회 건축에 참여하여 목사님의 손과 발이 되어 드디어 1987년 11월 15일 무사히 헌당 예배를 드리는 감격의 시간이었습니다. 아버님이 살아생전에 김용은 목사님을 곁에서 지켜보시면서 늘 목사님에 대한 말씀을 많이 하셨는데 자신의 삶은 뒷전이고 주머니에 돈이 있으면 모두 가난한 자, 불쌍한 자, 과부와 고아들을 돌보신다고 하셨습니다. 저의 부친이 소천하실 때 아버님 이름을 부르시며 “내 동생 태선아! 태선아! 하시며 대성통곡하시던 김용은 목사님의 모습이 지금도 눈에 선합니다. 장지까지 오셔서 기도해 주시고 저의 가족을 위로해 주시던 아버님 같은 김용은 목사님이 지금도 그립습니다.

# 하나님이 원하시니까

문형심 권사(군산중동교회)는 군산중동교회 김용은 원로목사에 대해 다음과 같이 고백했다.

김용은 우리 원로 목사님! 생각만 해도 가슴이 뭉클해집니다. 평생을 위엣 분(하나님)이 좋아하시는 일을 하시느라 얼마나 바쁘게 사셨는지...목사님을 아는 사람들은 다 기억할 것입니다. 교도소 선교, 노인 선교, 장애인 선교, 연안 선교, 직장 신우회 등 예수님을 알리는 일이라면 이곳저곳 몸을 아끼지 않으셨던 우리 원로 목사님! 항상 위엣 분이 원하시는 일을 찾아 동분서주하며 삶으로 그리스도인임을 보여주며 사셨습니다. 원로목사님은 그 바쁘신 와중에도 성도들에게 참 자상하셨습니다.

“아무개야! 그 일 어떻게 됐냐?” “무슨 일이요?” “그때 이러저러한 일 있잖아.” 그 따뜻한 사랑에 감격한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습니다. 교도소에 계시던 분들이 만기 되어 나오든, 모범수로 출소하든 일자리까지 알선하고 다니셨습니다. 며칠씩 목사님 댁에 그분들을 데리고 계시면서 여기저기 일자리를 부탁하시느라 사람들에게 아쉬운 소리도 많이 하셨습니다.

한 번은 목사님의 조카분께서 결혼하고 인사하려 목사님 댁에 오셨는데, 그때 출소하신 분을 댁에 데리고 계셨답니다. 그런데 아침에 일어나 보니 새신랑이 입고 온 양복과 함께 그분도 같이 사라지셨다고 합니다. 결국 조카분에게 목사님의 옷을 입힌 후 데리고 나가셔서 새 양복을 맞춰 주셨답니다. 그런 배신을 당하시고도 그 후로도 김용은 목사님께서는 출소자분들을 위한 사역을 멈추지 않으셨습니다. 왜냐고 물으면 목사님께서는 “위에 분이 좋아하시니까, 김가 것, 이가가 쓰고 박가 것 김가가 쓰는 거지.” 이렇게 말씀하시며 그분들을 이해하려고 노력하셨습니다. 언젠가 우리 제재소에도 출소한 분의 일자리를 부탁하려 오신 적이 있으셨습니다. 특별한 기술이 없으니 우리 제재소에서 일 좀 하게 해달라고 하셨습니다. 교도소에서 출소하셨다는 말에 처음에는 좀 섬뜩한 기분도 들었지만, 목사님의 부탁이라 거절할 수 없었습니다. 그런데 그분은 제재소 일이 힘들다며 하루 일한 뒤 다음 날부터는 나오지 않으셨습니다. 그분을 위해 또 아쉬운 소리를 이곳저곳 다니실 목사님을 생각하니 안타깝기도 했습니다.

김용은 목사님은 고아와 과부를 돌보라는 성경 말씀 또한 몸소 실천하셨던 분이셨습니다. 우리 하나님은 그들의 아버지가 되시고 그들 편에 계신다고 말씀하시곤 하셨습니다. 김용은 목사님께서는 우리 중동교회를 개척하실 때 빛과 천사의 임도 하심을 받던 그 기억을 늘 되새기시면서 “은혜 잊지 말아라, 감사 빼앗기면 다 잃는 것이니, 무슨 일을 만나도 감사 빼앗기지 말아라”라고 말씀하시곤 하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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