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PDATE : 2024.4.18 목 13:54
상단여백
HOME 기고/오피니언 특별기고
구약성서의 시문학(4)탄식과 구원의 메타포
  • 기독교헤럴드
  • 승인 2024.01.24 22:11
  • 호수 604
  • 댓글 0
신영춘 목사(시인, 신학박사, 기성 천광교회 담임)

급반전의 타당성을 제시한 후, 그 뒤에 시편 22편의 구조적 특징을 살핀다. 우선 내용에 대한 이해를 살펴본 후 형식 및 구조를 이해하고, 다른 학자들의 내용 및 구조 분석 연구 결과를 살펴본 뒤 시편 22편에 나오는 갈등의 삼각구도와 메타포의 삼각구도와 급반전의 변증법적 삼각도구를 살펴본다. 특히 시편 22편의 메타포를 집중적으로 조명해 보려고 하는데, 시편 22편의 신학적 이해와 관련하여 표제 및 본문의 다양한 메타포 속에 담겨 있는 신학적 문제를 다룰 필요가 있다.

고난받는 메시아론을 다룸에 있어 시편 22편에 메시아 고난의 시가 예언적으로 나와 있지만 그것이 어떻게 신약으로 이어지고 있는지를 다룰 필요가 있다. 시편 22편과 신약 사이에는 포로기 전후의 이스라엘 예언자들의 신학적 발전 과정이 있었다. 그렇기에 신약에서의 고난의 메시아에 대한 구약의 예언 성취라는 근거가 명확해지는 것이다. 즉, 시편 22편과 공관복음 사이에 징검다리처럼 메시아 고난에 관한 예언의 발전적 전개를 다루고자 한다.

또한 시편 22편의 탄식시와 구조 속에 급반전되는 부분에 대한 언약신학적 문제를 제기한다. 이를 위해 의도적으로 고난받는 시적 화자의 입장을 부각시키고, 여기서 그치지 않고 이 시적 화자를 넘어서서 신약적 관점에서 고난받는 메시아론을 조명하고자 한다.

이 책의 목표는 탄식시 전체를 다루는 것이 아니다. 탄식시의 구조와 메타포와 신학적 문제를 일반적으로 개괄한 뒤에 시편 22편을 집중적으로 다루려고 하는 것이다. 특히 이 속에 삼중의 신학적 중첩이 있음을 발견하고 이를 본 연구의 내면적 흐름으로 포진시켰다. 그 하나가 삶의 신학, 즉 고난의 신학이며, 둘째는 고난받는 메시아의 신학이다. 세 번째는 그 고난 속에서 급반전 분위기를 통하여 제시된 언약의 신학이다.

본 주제를 전개함에 전제되어야 할 것이 있다. 바로 메타포에 대한 이해이다. 이 서론 부분에서 메타포에 대한 이해를 폴 리쾨르를 중심으로 이해하는 것이 옳다고 본다. 그리고 현대 시에서의 메타포 사용에 대한 이해를 전제한 뒤에 탄식시 일반을 다루고 시편 22편을 조명하려고 한다.

1) 메타포의 개념

폴 리쾨르는 텍스트와 독자 사이에서의 관계를 검토하면서 텍스트는 독자가 자기를 이해하는 데 중요한 매개체가 된다고 보았다. 독자는 텍스트를 읽으면서 텍스트의 세계를 만난다. 그러면서 독자가 자기 이해를 하게 된다. 그러니까 텍스트를 읽고 그 텍스트의 세계에서 노니는 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그 세계 속에서 자기를 발견하게 되는 것이다. 이것이 독자의 자기 이해라고 말할 수 있다. 독자는 텍스트 앞에서 자기를 노출시켜 좀 더 확대된 자기 이해를 갖게 된다는 것이 리쾨르의 지론이다. 그러다 보면 독자는 자신으로부터 거리를 두게 된다.

문제는 리쾨르가 단순한 논설문이나 신문의 기사 같은 문제를 다루는 것을 텍스트라고 하기보다는 인간의 심층 문제를 다루는 문학작품이나 철학성을 띤 작품들을 텍스트라고 하는데 바로 은유를 담고 있는 글을 텍스트로 말하고 있는 것이다.

특히 리쾨르는 은유이론을 깊이 다루고 있다. 리쾨르는 먼저 비어즐리(Monroe Beardsley)가 “은유는 시의 축소판(a poem in miniature)”이라고 한 말을 인용하면서 은유 안의 문자적 의미와 상징적 의미(figurative meaning) 사이의 관계는 한 문장 내에서 문학작품을 총체로서 성격 지우는 의미들의 복잡한 상호작용의 요약판과 같다고 하였다.

전통수사학에서 은유는 문체로 분류되었다. 은유는 지명하는 것을 지배하는 언어놀이에 속한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시학>에서 은유란 “한 이름을 한 사물에 적용시키는 것”이라고 정의하였다. 은유는 수사적 비유들 중의 한 가지로, 거기에서 닮음에 의하여 결여된 문자적 단어가 비유적 단어로 대체된다. 그러나 이것은 19세기에 사라져 버렸다. 이 전승 속에 여전히 남아 있는 다음 6개의 명제들로 구도화될 수 있다. <다음호에 계속>

기독교헤럴드  chd6235@naver.com

<저작권자 © 기독교헤럴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좋아요 0

기독교헤럴드의 다른기사 보기
icon인기기사
기사 댓글 0
전체보기
첫번째 댓글을 남겨주세요.
여백
여백
여백
Back to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