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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 럼 / 이재정 목사의 하고 싶은 말(26)아까워요
  • 기독교헤럴드
  • 승인 2024.01.24 22:03
  • 호수 6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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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정 목사(기성 복된교회)

덩치도 크고, 나이도 듬뿍 먹은 사내가 홀짝 마시고 마는 커피나 차 한잔에 민감하게 집중하는 건 당최 좀스럽습니다. 차나 커피 마시는 일을 취미 정도를 넘어 전문가 준하는 남자들을 보면 정말 궁상스럽게 느껴지지요. 그런데 그게 남 얘기 아니고 내 얘기입니다. 오래 고수해 온 이 미각이 나이 들어 좀 둔감해지기를 바라지만 오히려 더 예민해집니다. 일테면 럭셔리한 카페에 간다 치면 다양한 음료들이 있습니다. 섣부르게 단맛만 나는 게 아니라 다양한 취향에 맞춰 마실 수 있는 것들이 즐비하지요. 커피 종류만 해도 아포카토, 비엔나, 각종 라떼, 카푸치노, 헤이즐넛 등이 단순한 아메리카노 커피를 넘서구요. 민트, 캐머마일, 얼그레이 유자차, 레몬차 등등으로 다양합니다. 거기다 유기농 어쩌고 하면 훨씬 다양하지요. 생과일을 갈아주는 주스, 얼음을 넣는 선택 등 셀 수 없이 다양합니다. 

새로운 음료에 대한 호기심이 더러 발동하여 잠시 머뭇거리기는 하지만 아무리 다양한 음료 선택 기회가 있어도 결국은 ‘에스프레소커피’만 고르게 됩니다. 그렇다고 남을 들볶는 건 아니구요. 설핏 원두 볶은 정도를 살펴 내가 마실 커피 맛을 가늠해 보는 정도이지 남 탓은 안 합니다. 나머지는 스스로 예민한 거니까 흉 될 일은 적지요. 이탈리아를 여행하며 로마의 노상 카페에서 에스프레소를 마셨지요. “야, 이탈리아 커피보다 아빠 커피가 훨 났더라” 아이들더러 일렀더니 “아부지 거 까탈 부리지 마시고 맛있게 좀 드슈, 로마에 가면 로마법을 따라야지 원!” 꼭 이만큼 타박받았습니다.

전에 우리가 삼광교회일 적에 교회에서 카페를 운영하시던 사장님은 세계를 여행하며 커피를 공부하셨더랍니다. 커피를 지나치게 볶지 않아서 내 취향에 꼭 맞았습니다. 오래 차만 마시던 내가 커피로 갈아타게 된 원인이기도 합니다. 지금도 여전히 그 커피를 애용하고 있지요. 커피나 차 애호가인 저의 정체를 아시는 주변 사람들도 자주 차나 커피를 가져다줍니다. 아프리카에서도 오고, 하와이, 남미, 베트남, 태국 등 세계 각국의 커피가 제 방에 집산됩니다. 각기 다른 풍미가 있지요. 최근, 베트남에서 건너온 건 양도 많지만 내 취향에 꼭 맞습니다.

홀로 이른 아침에 차나, 커피를 내리는 일은 수도사 같은 수행입니다. 미상불 이런 음료를 수도사들이 개발했다는 점은 역사적 사실이기도 하지요. 커피의 시작은 유럽으로 오해하는 분들이 많지요. 에티오피아 혹은 예멘에서 이슬람 사제들이 처음 마시기 시작한 거 아셔요?. 고요한 마음이 맑은 영성으로 들어가는 초입이라면 커피 한 잔을 조용히 음미하는 건 필시 도움이 됩니다.

에티오피아를 비롯한 세계 커피 산지들은 대부분 가난합니다. 커피 농장이 기업화되다 보니 커피 농장의 노동자들은 가난의 대명사 되었습니다. 부모의 값싼 노동으로 기른 커피나무에서 취학 연령의 자녀가 학교도 가지 못한 채 커피를 따야 합니다. 커피는 가난한 이들의 상념과 눈물이 젖어 있지요. 그걸 탈피, 건조, 가공해서 배에 실어 한국에 옵니다. 다시 여러 과정을 거쳐 최종 소비자 근처에 오면 볶아서 포장합니다. 최소 몇 개월, 길게는 1년 이상도 소요될 것입니다. 그 지난한 과정을 거쳐 내 방에 닿으면 나는 그 원두를 곱게 갑니다. 맑은 물 담은 기계(포터 필터)에 넣고 압력을 가하여 뽑아내면 드디어 내 취향에 맞는 에스프레소커피 한 잔이 됩니다.

마지막 단계, 곱게 간 커피 분말을 기계에 담을 때, 아무리 조심해도 커피 분말을 좀 흘립니다. 털어서 버리지요. 여기까지 온 긴 과정을 생각하면 마지막 단계에 커피로 거듭나지 못하고 분말로 버려지는 건 아까운 것보다 더 깊은 상념의 단초가 됩니다.

인생 같거든요. 긴 가난의 터널을 빠져나와 탈피, 건조, 로스팅, 분쇄 과정을 거치면서 화려한 문명 세계랑 만납니다. 고압의 기계만 통과하면 드디어 고체에서 액체로 질적 변화를 이룹니다. 그 마지막 과정을 통과하지 못하고 가루로 버려지는 커피의 가치는 한평생 그리스도인으로 지난한 과정을 거치고도 아버지의 용도대로 쓰임 받지 못하는 경우를 산정하는 듯하여 모골이 송연해지는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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