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PDATE : 2024.4.18 목 13:54
상단여백
HOME 기고/오피니언 특별기고
위 영 사모의 편지(170)노년에 대한 헌사겸 서사
  • 기독교헤럴드
  • 승인 2024.01.24 20:29
  • 호수 604
  • 댓글 0
본지 논설위원, '속삭이는 그림들' 저자

도서관이 나의 서재가 된 지는 오래다. 그 안의 무수한 책에 대한 욕심이 사라진 지도 제법 된다. 젊을 때는 서점을 가건, 도서관을 가건, 내가 좋아하는 방향의 서가 앞에 서면 언제 이 책을 다 읽을까, 탐욕스러움이 솟아났다. 책을 좋아해서 모으는 것이 취미인 시절도 있었지만 지금까지 총 네 번 정도 책꽂이를 비워냈다. 버리고 나면 삼삼하게 떠오르고 누군가의 글에서 버린 책 이야기가 나오면 그 책이 그립기도 했다. 그러나 요즈음 내가 사랑하는 잠언은 ‘죽고 사는 일 아니면 별것 아니다’ (사실은 죽고 사는 일도 별일이 아닐 수 있다고 내겐 자주 속삭인다)

노년에 대한 논문을 한 편 진중하게 읽었다. 노인은 낮은 급의 칭호라는 것, 그래서 노년으로 쓴다는 것, 지배 문화가 젊음을 견고한 자리에 마치 덕목인 듯 배치하니 늙음은 상대적으로 취약해진다는 것, 노년은 젊음과 상대적이지만 관계성이고 일종의 정체성임으로 그것을 인정해야 한다는 것, 그들과의 게임은 기울어진 시소 같다는 것, 즉 젊은 타자들과의 경쟁이 아니라 자기 정체성 확립이 우선한다는 것, 일환으로 노년에 대한 새로운 인식과 서사를 노년들 스스로가 마련해야 한다는 것, 더욱 본질을 생각하고 그 형이상학, 실체론, 존재론을 생각하며 살아가야 한다는 것, 단순히 머릿속 담론이 아니라 행동까지 나아가는, 가령 가난하게 살던 할머니가 전 재산을 기부하는 것은 행동으로 나가는, 행동으로 쓴 자서전이라는 것, 또 하나는 삶의 무상함을 인식하고 승인하라는 것,

막내 이모 허미례 권사님은 조금 특별하시다. 놀라운 신심으로 예배할 때마다 확장된 사고를 경험하시기 때문일까. 아흔의 나이에도 여전히 총명하셔서 같은 또래처럼 여겨질 때가 많다. 이모는 홀로 네 아이를 키우셨다. 원래 부잣집으로 시집을 가셨는데 이모부가 일찍 세상을 떠나셨다. 지금은 잘나가는 국회의원 딸까지 두셨으니 노후가 평화로우시지만, 집안에 전해져 내려오는 이모의 고생스토리는 장엄하다. 언젠가 내게 하신 말씀이 잊히지 않는다. “아야, 늙은 것이 꼭 나쁘지만은 않어야. 우선 아이들이 다 커서 자기 길을 가고 있으니 얼마나 자유롭냐, 그라고 늙응께 아무도 나를 안쳐다봐야. 그랑께 어디 살짝 귀퉁이에서 기도를 해도 되고 찬송을 해도 된다. 젊을 때는 꿈도 꾸지 못할 일이제, 늙음은 책임에서 놓여나고 사람들 시선에서 벗어난 자유여.”노년을 인정하고 승인하며 노년이라는 정체성을 찾으신 거다. 그것도 매우 긍정적으로.

몽테뉴도 수상록을 나이 들어가며 업그레이드를 했다고 한다. 그러면서도 달라지는 생각을 고칠 때 망서렸다고, 지극히 공평한 것은 청년들도 금방 뒤따라 노년의 자리에 들어선다는 것, 그러니 굳이 그들의 모름을 탓할 일도 아니다. 우리도 그랬다. 경험하지 않았다는 이유만으로 관념이 되고 타자의 삶이라고 수없이 판단하며 경홀히 여겼었다. 이즈음 눈(目)이 약해지는 것을 살짝 느낀다. 검은 것들이 갑자기 날아다녀서 오호, 이게 바야흐로 그 비문증이구나. 너무나 확실하게 보이는데 세상에 없는 존재를 바라보는 놀라운 경험이었다. 뿐만 아니라 잠자리에서 막 일어나 습관적으로 책을 펼쳐 들면 한참 눈이 제자리를 잡지 못한다. 혹시 노년이란, 원하지 않는 존재들이 무시로 방문하는 열린 몸으로 확장되는 게 아닐까, 열린 몸은 열린 사고로의 전환이 아닐까?

젊음이 미래의 삶이라면 노년은 현재의 삶이다. 노년은 그래서 그 어느 때보다 자유롭다. 비교나 경쟁에서 벗어나 있고 가능성이나 희망에서 길을 잃지 않게 된다. 하루하루의 시간을, 작은 나무나 풀들, 사소한 모든 것들을, 유심하게 바라볼 수 있는 시간, 시각을 지니고 있다. 그래서 젊음보다 더 충일한 시간을 보낼 수 있다. 그것을 나는 노년의 행복이라 여긴다. 행복은 즐거움 기쁨 환호성이 아니다. 고요함 적막함 스산함 서늘함, 가득한 슬픔 속에도 행복은 있다. 우리는 슬픈 노래를 좋아하며 자꾸 들으며 더욱 슬퍼하며 그럴 때 행복하지 않던가. 행복은 절대로 상황이 아니다. 내 안에 있는 그날 내게 허락된, 내가 마실 수 있는 샘물이다. 이게 나의 <현재> 노년에 대한 헌사 겸 서사다.

기독교헤럴드  chd6235@naver.com

<저작권자 © 기독교헤럴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좋아요 0

기독교헤럴드의 다른기사 보기
icon인기기사
기사 댓글 0
전체보기
첫번째 댓글을 남겨주세요.
여백
여백
여백
Back to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