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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 / 서종표 목사 – 4無의 삶을 산 김용은 목사(41)섬 교회의 아버지
  • 기독교헤럴드
  • 승인 2024.01.17 22:41
  • 호수 6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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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용은 목사

 

김용은 목사님은 예수님의 십자가 처형을 끝까지 지킨 사람들이 여성이었고, 여성들이 국가적·사회적으로 특히 교육 분야에서 지도자들이 많이 나오도록 해야 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여자도 배워야 한다, 운전할 줄 알아야 한다, 그리고 섬에 살면 반드시 수영은 배워야 한다고 강조하고 또 강조하셨습니다. 교회 안의 여성 인력을 잘 훈련하는 일도 사모가 해야 할 일이라고 말씀하셨지요. 그래서 저도 일찌감치 운전면허를 취득했습니다. 여름이면 해수욕장에 가서 열심히 물에 뜨는 연습도 했구요. 섬 교회의 젊은 사모들에게는 손녀딸 대하듯 언제나 너그러우셨습니다. 섬에 다녀가시면서 내 자식은 섬에 안 보내면서 오 목사에게 섬에 오래 있으라 해서 늘 미안타 하셨습니다. 선유도교회 강단에 서시면 설교 말씀이 늘 우렁차고 힘이 넘쳤습니다. 성경을 펴시지도 않고 열왕기상 2장 1절과 2절의 말씀을 큰 소리로 외워 낭독하시고는 ‘너는 힘써 대장부가 되라’고 사자후를 토하셨지요. 아마도 유약해 보이는 제게 힘을 돋워 주시려고 그러셨나 봅니다. 전 교회 성도들에게는 목사는 천사가 아니니 실수하면 용납하고 힘들어하면 이해하라고 편도 들어주셨습니다. 덕분에 저희는 성도들로부터 많은 이해와 사랑을 받게 되었지요. 저희 교회 김월옥 권사님은 김용은 목사님을 친정아버지 뵙듯 했습니다. 가정적으로 어렵고 힘들 때 부군이신 돌아가신 김부귀 장로님이 가장 어려울 때 힘을 주셨던 분이시기에 김 목사님이 섬에 다녀가실 때마다 선착장에서 눈물을 글썽이며 배웅하시곤 했지요. 머리에서 먼 새끼발가락 같은 섬 교회를 향한 목사님의 사랑이 참 애틋했습니다. 어쩌면 바람 부는 날이면 육지로부터 잊혀진 섬을 그분은 잊지 않고 있다고 삶으로 말씀하신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합니다.

4. 그 분의 삶

많이 알려진 대로 김 목사님은 특히 소외되고 어려운 사람들을 그냥 지나치지 않으셨습니다. 어머니를 회고하며 말씀하실 때는 늘 눈물이 그렁그렁하셨고, 어머니를 생각하며 의지할 데 없는 전신마비 노인을 집으로 모셔다가 8년 4개월 동안 대소변을 받아내셨고, 외롭고 소외된 노인들을 가족처럼 보살피셨다고 많은 분들이 증언합니다. 목사님 댁은 종종 고군산 섬 교회 목회자들의 거처가 되기도 했답니다. 타지에 나갔다가 혹은 군산에 일이 있어서 나갔다가 잠 잘 곳이 마땅치 않은 목회자들은 목사님 댁에 가서 자고 아침에 객선을 타고 섬에 들어오곤 했답니다. 평소에 목사님은 4無(無통장, 無주택, 無패물, 無토지)를 생활의 신조로 삼으셨습니다. 당신 자신을 위해서는 이 땅에 아무것도 쌓으시지 않았지만 어려운 사람들을 위해서는 넓은 품을 벌리시고 많은 이들을 안아 주셨습니다. 그리고 아끼지 않고 퍼주셨습니다.

아버지를 일찍 여의고 배고픈 시절을 보냈기에 해방 직후 정읍고아원을 설립하고 고아들을 먹이고 기르셨고 군산 삼성애육원의 이사장을 45년 동안 하시며 고아들의 아버지가 되시고 고아들에게 개인통장을 만들어 용돈을 넣어 주시는 자상한 아버지가 되어 주셨습니다.

전라북도에 처음으로 맹아학교와 농아학교의 기초를 놓고 세우셨으며 재소자의 후견인으로 교도소를 방문할 때마다 떡을 만들어 가셨고 세족식 때에는 발등에 입을 맞추고 눈물로 기도해 주셨다는 일화는 유명합니다. 교정 자문으로 40년 동안 봉사하시며 사형수 등 많은 재소자들을 변화시켜 대통령 교정 대상을 수상하기도 했습니다. 고아원 사역과 전쟁 피해자인 다비다 선교회, 교도소 선교, 농하학교 맹아학교 설립은 목사님의 마음과 관심이 어디에 있는지를 보여주는 사역이었습니다. 이렇게 다양한 사역들을 열정적으로 하시면서도 성도들 가정의 대소사와 태어나는 아이들 이름도 직접 지어주실 만큼 성도들과 밀접한 목회를 하셨습니다. 중동교회를 출석하고 계신 권사님들의 말씀을 들어보면 목사님은 성도들 가정의 자녀들 이름뿐 아니라 가정의 대소사, 시험 보는 자녀들 심지어 그 집에 숟가락이 몇 개인지도 아신다고 할 만큼 성도들에게 각별하셨다고 합니다.

어느 해부터는 지팡이에 의지해 오셨습니다. 그러시다가 자리에 누우셨고 주님이 계시는 본향으로 가셨습니다. 어둡고 암울했던 섬사람들에게 밝은 빛 전해 주시고, 바닷물이 가득 차오르는 음력 칠월 초하루에 김용은 목사님은 섬 교회의 아버지이십니다. 섬 교역자들의 큰 언덕이셨습니다.  <다음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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