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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 이재정 목사의 하고 싶은 말(25)미소 전쟁
  • 기독교헤럴드
  • 승인 2024.01.18 15:57
  • 호수 6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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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정 목사(기성 복된교회)

어쩌다 나이가 60을 넘더니 70쪽으로 가깝습니다. 그걸 숫자로 세면 끔찍합니다. 법적으로 노인에 해당합니다. 고맙게도 나라에서 여러 혜택들을 베풀어 줍니다. 모두들 그렇지만 마음이야 열일곱인데 말입니다. 숫자로 된 나이를 들키지 말아야겠습니다. 꼰대 되지 말아야겠다는 뜻입니다. 같이 방송을 만들던 PD가 한 2년 외지에 갔다가 돌아와서는 “꼰대 목사와 MZ 세대”라는 코너를 만들잡니다. 넌지시 하는 말이지만 저더러 꼰대 목사 하라는 말이지요?. 그거 해요. 말아요? 젊잖은(젊지 않은) 건 좋은데 노화는 싫으니 말입니다.

머리를 까맣게 염색해서 흰머리를 감춥니다. 이발비가 많이 들지만 지저분하게 자라기 전에 더 자주 자릅니다. 귀찮지만 기름도 바르구요. 기를 써도 지나간 세월의 흔적을 가리는 건 녹녹지 않습니다.

교회에서도 꼰대 되지 않을 도모로 신중합니다. 변화가 중요한 답입니다. 뭐든지 변화를 이끌면 노화를 면하는 법이니까요. 지난가을부터 골몰해서 교회의 변화를 생산해 냅니다. 그중 표시 나는 변화는 “발의(發意)예배”입니다. 헌신예배의 증보판입니다. 지난 수십 년간 헌신예배로만 드렸지요. 새해는 소그룹별로 모여서 말씀으로 교제하고 의견들을 모아서 교회 앞에 발의하자는 제안입니다.

한 사람의 의견은 독선이 되기 쉽지요. 주님도 기도 제목을 정할 때 두 사람이 마음을 합하여 구하라 하셨고 두, 세 사람이 모인 자리에 함께 계신다는 약속을 주셨습니다. 내 생각이나 의견이 남과 만나서 합의하거나 다듬어져서 공감을 이룰 때 효용성 있는 의견이 되거든요. 시중에 떠도는 말로는 ‘집단 지성’ 정도로 새기면 될 말입니다.

긴장도 있습니다. 우리가 쓰는 일상 용어가 합리적 결론을 도모하는 언어이기보다는 감성 언어라는 점입니다. 언어를 넘어서는 언어입니다. 언제, 어디서, 누가, 무엇을, 어떻게, 왜 했느냐 하는 것이 의논하는 말의 기본입니다. 그런데 우리 말은 먼저 감정을 잘 드러냅니다. “에이! 뭘, 몰러, 맘대로 해” 등의 말 한마디는 그 말대로 해석하면 안 됩니다. ‘알았어’라는 같은 말이라도 눈에 힘주고, 어조를 올리면 싸움 돋는 말입니다. 차분히 말끝을 내리고 눈을 마주쳐 미소를 보내면 동의와 격려가 됩니다. 그런 눈빛의 소통이 중요하니 작은 그룹으로 모여서 의논하는 것입니다. 말로 설명되는 나와 다른 의견을 잘 수용하지 못하고, 나와 다른 사람들에게 내 뜻을 합리적으로 설명하는 데 익숙하지 않습니다. 자칫 의견이 상반되어 대립으로, 투쟁으로 비화할 것을 염려합니다. 숙의, 토론을 거쳐 최선이 아니면 차선이라도 합의해 내는 과정에 서툴기 때문입니다. 내 의견이 성립되면 실천 동력을 얻습니다. 반대로 내 뜻과 맞지 않는 결론을 낼 때도 그 의견을 따르는 의식을 가져야겠습니다. 언제나 내가 정답일 수는 없거든요. 성숙한 시민, 성숙한 성도는 나와 다른 의견을 의연히 수용하지만 미숙한 증상은 그렇지 못하여 공동체의 단합에서 소외됩니다. ‘화려한 싱글’은 교회 생활에 유익하지 못합니다.

새해 교회 안에서 이루는 의논의 방법을 정했습니다. 우리의 씨름은 혈과 육, 즉 사람을 상대해서 무력으로 싸우는 게 아니니 십자군 전쟁처럼 무력을 동원하는 게 아닙니다. 어둠의 영들을 대항하는 것이니 밝고 맑은 힘, 미소를 앞세우자는 제안입니다.

의논에는 말만 사용할 게 아닙니다. 말하는 입을 하나님이 지으셨지만 “듣는 귀와 보는 눈은 다 여호와께서 지으신 것이니라”(잠 20:12). 귀와 눈도 용도를 따라 지으셨습니다. 우리는 말 대신 헛기침 한 번만 해도 마음을 아는 민족입니다. 그러니까 남의 말을 잘 듣고 남의 마음을 잘 헤아리는 것이 사람을 사랑하는 일입니다. 그게 의논의 기본이지요.

새로 왕이 된 솔로몬의 마음을 살펴봅시다. “듣는 마음을 종에게 주사 주의 백성을 재판하여 선악을 분별하게 하옵소서”(왕상 3:9). 하나님 백성들을 맡았는데 그들의 마음을 헤아릴 수 없습니다. 그들의 마음을 헤아리도록 듣는 마음을 구했습니다. 그는 후대에 가장 지혜로운 왕으로 이름을 남깁니다.

새해는 밝은 미소 머금은 맑은 마음으로 내 말을 내기보다 상대방 말을 듣는 데 더 집중되기를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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