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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 / 서종표 목사-4無의 삶을 산 김용은 목사(40)섬 교회의 아버지
  • 기독교헤럴드
  • 승인 2023.12.27 23:30
  • 호수 6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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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용은 목사


고군산중앙교회는 60년 초에 설립되었다고만 오래 신앙생활을 하고 있는 성도들이 기억하고 있고 목회자가 없어 폐쇄되었다가 1979년 1월 25일에 최인식 전도사에 의해 마을 회관을 빌려 백풍교회로 재건되었고, 1980년에 고군산중앙교회로 개명하였습니다. 장자도교회는 1959년 12월에 군산 개복교회에서 신앙 생활하던 신화순 씨가 장자도로 시집와 살던 집에서 김용은 목사를 모시고 예배를 드리게 된 것이 교회의 시작입니다. 관리도교회의 설립연도는 1959년인데 70년대 초에 교회가 폐쇄되었다가 1982년 이덕원 전도사에 의해 재건되었습니다. 방축도교회도 설립연도가 60년대 초로 기록되어 있고 폐쇄되었다가 최인식 전도사와 십자군전도대의 김희찬 전도사에 의해 1981년에 재건되었습니다. 말도교회는 1959년 10월 31일에 중동 교회와 김용은 목사의 지원을 받아 추명순 전도사에 의해 개척되었습니다. 연도교회는 60년 대 초로 설립연도가 기록되어 있고 김용은 목사께서 직접 교회 간판을 걸고 예배드리다가 감리교단으로 넘겨주어 지금 현재는 감리교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처음 고군산의 교회들은 가정에서 초등학교에서 혹은 빈 소금 창고에서 예배를 드리다가 구호품으로 나온 밀가루로 땅을 사거나 자재를 사서 예배당을 지었습니다. 

그러나 대부분의 섬 교회들이 섬 지역의 열악한 환경과 불편한 교통으로 인해 목회자들이 오기를 기뻐하지 않아 목회자가 없을 때도 많았답니다. 몇 년씩 목회자 없이 성도들끼리 예배를 드리다가 여러 해 동안 문을 닫게 된 교회도 여럿 있었습니다. 지금도 먼 섬에 해당되는 명도는 상주하는 목회자 없이 연안선교회 소속 목사가 주일에 들어가 예배를 인도하고 있고, 여객선이 닿을 수 없는 두리도 교회는 목회자 없이 수 년 씩 예배를 드리지 못하고 있기도 합니다. 그나마 다행이었던 것은 교단의 단독 목회제도가 먼 섬의 교회들, 주님이 오실 때까지 자립 불가능한 교회들의 존립에 큰 기여를 하였습니다. 

필자가 섬기고 있는 선유도교회의 고 김부귀 장로는 우리 교단의 단독 목회제도가 없었다면 섬 교회들의 존립이 불가능했을 것이라고 살아생전 여러 번 말씀하시곤 했습니다. 고군산군의 열한 개 유인도(有人島)에 모두 교회가 세워지게 된 것은 김용은 목사의 섬 사랑의 결과입니다. 그렇게 교회들을 가정집 안방에서, 사랑방에서 빈 소금창고에서 혹은 학교에서 시작하게 하시고 여름마다 섬 교회들을 한 바퀴 돌아보시고 섬을 지키는 젊은 교역자들의 등을 한 번씩 두드려 주시고 무엇이 그리 고마운지 늘 고맙다고 하셨지요. 목사님은 섬사람들을 ‘그들’로 보지 않으시고 ‘내 자식’으로 품으셨습니다. 머리에서 먼 새끼발가락으로, 그러나 내 몸의 일부로 품으셨습니다.

3. 김용은 목사와 교회 안의 여성들

목사님을 개인적으로 가까이서 뵙게 된 것이 1988년 이후 필자가 선유도 교회에 오게 된 이후입니다. 워낙 교단의 큰 어른이신지라 어려웠었는데 섬에서 목회하고 있다는 그 한 가지로 늘 사랑을 받았지요. 목사님은 늘 섬 교회 교역자들에게 ‘빚진 자의 마음’이라는 말씀을 자주 하셨습니다. 은퇴 이후에도 목사님의 섬 지역 교회들을 향한 사랑이 지극하셔서 일 년에 한 차례씩은 꼭 섬 지역의 교회들을 방문하셨습니다. 교회들을 방문하실 때는 결코 빈손으로 오시는 법이 없으셨습니다. 주로 한국 도자기에서 생산하는 컵이나 그릇들을 들고 오시곤 했습니다. 어느 해인가는 도자기로 된 성찬기 한 셋트 씩을 도서지역 여덟 개 교회에 선물하시기도 했습니다. 목사님께서 바지락으로 끓인 국을 참 좋아하셔서 바지락을 가지고 목사님을 뵈러간 적이 있었습니다. 그 당시 목사님은 교회에서 마련해 드린 아파트에서 살고 계셨는데 ‘버들아(목사님은 저를 버들이라 부르셨습니다), 나 죽으면 이 집은 고군산 교역자들의 숙소로 쓰도록 내줄 거야.’ 도서지역 젊은 목회자들이 군산에 나오면 마땅한 거처가 없어 여관을 전전하는 것을 늘 안타까이 여기셔서 하신 말씀입니다. 어쩌다 어떤 자리에서 목사님을 뵈면 목사님은 여성이 남성보다 더 강인하다는 말씀을 늘 하셨습니다. 그래서 그 강인함으로 남편을 잘 보필하라고 당부하시곤 했지요. 세계를 움직였던 하나님의 사람들 뒤에는 언제나 기도하는 어머니, 기도하는 아내가 있었다는 것을 어거스틴의 어머니 모니카의 예를 들어 말씀하시곤 했습니다. 

하나님이 사람을 만드실 때 여자는 도자기와 같은 재질로 만드셔서 흙으로 만든 남자보다 우수하다고 말씀하시며, 수명으로 말하면 7-8년은 더 살고, 깨끗하기로 말하면 교도소에서 여성과 남성의 비율이 1/20이며, 의리로 말하면 남편이 나병이 들면 아내들은 소록도까지 따라가지만 남성들은 아내가 병들면 아내를 버린다고 말씀하시곤 하셨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처형을 끝가지 지킨 사람들이 여성이었고, 여성들이 국가적으로나 사회적, 특히 교육 분야에서 지도자들이 많이 나오도록 해야 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여자도 배워야 한다, 운전할 줄 알아야 한다, 그리고 섬에 살면 반드시 수영은 배워야 한다고 강조하고 또 강조하셨습니다. 교회 안의 여성 인력을 잘 훈련하는 일도 사모가 해야 할 일이라고 말씀하셨지요. 그래서 저도 일찌감치 운전면허 취득을 했습니다. 

여름이면 해수욕장에 가서 열심히 물에 뜨는 연습도 했구요. 섬 교회의 젊은 사모들에게는 손녀딸 대하듯 언제나 너그러우셨습니다. 섬에 다녀가시면서 내 자식은 섬에 안 보내면서 오 목사에게 섬에 오래 있으라 해서 늘 미안타 하셨습니다. 선유도 교회 강단에 서시면 설교 말씀이 늘 우렁차고 힘이 넘쳤습니다. 성경을 펴시지도 않고 열왕기상 2장 1절과 2절의 말씀을 큰 소리로 외워 낭독하시고는 ‘너는 힘써 대장부가 되라’고 사자후를 토하셨지요. 아마도 유약해 보이는 제게 힘을 돋워 주시려고 그러셨나봅니다. 전 교회 성도들에게는 목사는 천사가 아니니 실수하면 용납하고 힘들어하면 이해하라고 편도 들어주셨습니다. 덕분에 저희는 성도들로부터 많은 이해와 사랑을 받게 되었지요. 저희 교회 김월옥 권사님은 김용은 목사님을 친정아버지 뵙듯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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