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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정 목사의 하고 싶은 말(23)친구
  • 기독교헤럴드
  • 승인 2023.12.13 22:57
  • 호수 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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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정 목사(기성 복된교회)

뭔 말이든 입으로 되뇌면 그 말의 온기가 느껴지는 법이지요. ‘친구’라는 말은 그중 따습습니다. 매우 관용적으로 쓰이는 명사입니다. 연말에 마음에 와닿는 설명 하나는 ‘나이 들수록 근육과 친구가 재산’이라는 말입니다. 몸을 지탱하는 근육은 육신 건강을 담보합니다. 유산소 운동, 근육운동의 중요성을 나름대로 근거를 가지고 강조, 강요합니다. 하루, 이틀이 아니라 꾸준히, 부지런히 운동해서 근육을 단련할 일입니다. 덕분에 제법 탄탄한 근육을 기르는 중입니다. 또 다른 자산, 온기를 부르는 친구는 마음 건강을 위한 보약이지요. 그것도 하루아침에 만들어지는 거 아닙니다. 긴 시간 정을 도탑게 하여 만드는 재산입니다. 나이 들수록 고립됩니다. 오래된 친구랑 더불어 사는 게 중요한 즐거움입니다. 행여 중년 넘어 친구 잃지 않도록 마음 쓸 일입니다. 다행히 고등학교 친구들이나 고향 친구들이 여태 곁에 머물러 주니 다행입니다. 물론 불신 친구들이 많습니다. 교회의 문화와는 이질적이지요. 그래도 오래 목사로만 살아온 친구를 경원시하지 않고 수더분하게 찾아 밥 나눠 먹어주니 즐겁습니다.

다시 연말입니다. 해마다 맞는 계절이지만 해마다 새롭습니다. SNS에는 서울 사는 고등학교 친구들이 모여 골프도 치고, 식당에 모여 송년회도 하는 사진들을 올려놓습니다. 은퇴 후의 한가로운 모습들입니다. 청초하던 소년 모습은 시간에 반납하고 늙수그레한 몰골들입니다. 한 사람 한 사람을 따로 구별하기 쉽지 않지만, 그 게슴츠레한 표정들 사이에 스민 오랜 친구의 도타운 정은 느껴집니다. 멀리서 사진 속의 친구들에게 얼큰한 정감을 보냅니다.

고향 교회 마당에서 같이 자라, 이제는 늙어가는 친구들도 송년회로 모인답니다. 가족 중 누군가 소천하면 장례식장에서 한 번씩 만나는 정도로 소원해졌지요. 그래도 만나면 시간을 훌쩍 뛰어넘어 유소년 시절로 회귀하는 친구들입니다. 해마다 모이지만 가본 적 없이, 소식으로만 듣습니다. 올해는 천안서 모인다니 훌쩍 다녀올까 싶기도 합니다. 쉽지 않은 것은 금요일에 만나 토요일에 헤어지는 모임인 까닭입니다. 그들의 정다운 해후를 지켜보는 것만으로 친구 향한 그리움을 삭여야지요. SNS로 현장을 중계해 주니 그도 즐거움입니다.

뜬금없는 전화들이 더러 옵니다. “해 바뀌니 인사 즌화 허능겨” 대충 그런 내용들입니다. 말은 짧아도 여운은 긴 소통입니다. 그 전화가 정감의 반향을 일으켜 나도 여기저기 오래 소식 없는 친구들을 전화로 추적합니다. 모두 어제 만난 것처럼 친근합니다. 물 건너오는 송년 인사도 있습니다. 원체 통신 수단들이 발달 된 세상이다 보니 국내외 차이가 없습니다. 이맘때면 연중행사처럼 모종의 선물을 보내오는 친구도 있습니다. 크지 않게 보였던 내 간섭이 친구에게는 평생의 고마움이 된 모양입니다. 모두 넉넉하게 좋은 친구들입니다. 들어앉아 두런거리는 정서 속으로 감사한 마음이 스며 납니다. 따순 친구들을 많이 주셨다는 자각이지요. 더 오래 도타운 재산으로 남겨지기를 기대합니다.

60이 넘어서면서 마음공부가 깊었습니다. 이순(耳順)이라던가요. 제법 다양한 정보들과 내 생각과 다른 말들을 새겨듣는 공부가 됩니다. 반문, 반론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수긍, 수용하는 일이 차츰 익숙해집니다. 신기한 것은 그 “들음”이 단순히 정보 습득하는 걸 넘어서 말하는 이의 마음에 닿게 하는 점입니다. 책에서 읽은 말인지 내가 지어낸 건지 기억이 모호한 “입을 열면 적을 만들고 귀를 열면 친구를 얻는다”라는 정의를 명토 박아 새겨둡니다. 인생 교과서 성경도 “진리를 사되 팔지는 말며 지혜와 훈계와 명철도 그리할지니라”(잠23:23) 가르쳐 줍니다. 진리는 사는 건 남의 말을 듣는 것으로 이해합니다. 지혜와 훈계와 명철도 인생의 중요한 가치인데 남의 말을 들을 때 내게 자산으로 남습니다. 반대로 판다는 말은 쏟아 낸다는 말이겠습니다. 내가 가진 진리, 지혜, 훈계, 명철을 마구 쏟아 놓으면 그 말이 주는 작은 파장에 내 중요한 재산을 파는 걸 겁니다. 헐값이지요. 내 속에 남겨 가진 게 없어서 헛헛할걸요.

뭘 좀 더 알아서 뭘 하게요. 그거 드러내는 일은 얄미운 사람 되는 거 맞습니다. 옳거나 그릇됨을 기어이 구별하려는 건 에덴에서 선악과 먹은 후유증일 뿐입니다. 예수님 믿고 삭여온 시간만큼 속으로 익은 인격은 남의 말만 아니라 그 마음 까지 새겨듣는 일, 그래서 친구 되는 온기로 한 해의 마무리를 다정하게 하는 일입니다. 주변 친구들 전화 한 바퀴 돌려서 따듯한 온기를 돋우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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