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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쓴물 단물>
  • 기독교헤럴드
  • 승인 2023.11.29 22: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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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수도원에서 한 늙은 수도사가 왔다는 소문에 젊은 수도사들이 몰려들었다. 백발이 성성한 노수도사를 보고 젊은 수도사들이 말했다. “노수도사가 왔구려! 어서 식당에 가서 접시나 닦으시오.” 이 수도원에서는 처음 부임한 수도사에게 그런 허드렛일을 시키는 것이 관례였다. 노수도사는 머리를 숙이며 “예, 그렇게 하겠습니다” 말하고서, 곧장 식당으로 갔다. 노수도사는 불평하지 않고 한 달, 또 한 달, 그리고 또 한 달을 접시만 닦았다. 젊은 수도사들은 말없이 불평하지 않고 일하는 노수도사에게 멸시와 천대 그리고 구박을 쉬지 않았다.

석 달이 지난 즈음에 수도원 감독자가 이 수도원을 방문했다. 젊은 수도사들은 책잡힐 일이 있지나 않을까 두려워하며 감독 앞에서 쩔쩔매고 있었다. 감독은 수도원의 원장이 보이지 않자 원장을 찾았다. “원장님은 어디 가셨는가?” 수도사들이 “원장은 아직 부임하지 않았습니다”라고 대답하자 감독은 고개를 갸우뚱하면서 큰 소리로 말했다. “아니 무슨 소린가? 내가 로렌스 수도사를 이 수도원의 원장으로 임명했고, 이곳으로 파견한 지 벌써 3개월이나 되었는데!” 이 말을 듣고 젊은 수도사들이 깜짝 놀라서 모두 식당으로 달려갔다. 그곳에 늙은 수도사가 식기를 닦고 있었다. 그가 너무나 유명한 브라더 로렌스(Brother Lawrence)였다. 이후로 이 수도원은 가장 모범적인 수도원이 되었다. 그 일 이후에도 노수도사는 어떤 명령도 설교도 하지 않았다. 그러나 그 섬김 앞에서 모두가 변했다.

“종교는 사사(私事)가 아니다. 종교는 믿는 자만의 종교가 아니다. 시대 전체, 사회 전체의 종교다. 그런데 그 기독교가 겉과 속이 같지 않은 듯하고, 살았나 죽었나 의심나게 하니 묻지 않을 수 없다. 지금 이 사회가 정신적 혼란에 빠져 구원의 손을 내미는데 교회는 왜 아무런 활동을 보여주지 않을까? 이 시대에 구원이 기독교적인 데서 와야 한다는 것은 전 인류의 방향이 지시하는 바다.” 함석헌이 1956년 1월 ‘사상계’(30호)에 기고한 ‘한국의 기독교는 무엇을 하고 있는가?’의 일부다. “이 시대에 구원이 기독교적인 데서 와야 한다는 것은 전 인류의 방향이 지시하는바”라고 강조했던 70년 전 함석헌의 말은 여전히 유효하다. 복음은 이 땅에 지금도 복음이다. 단지 복음을 받은 이들이 퇴색했을 뿐이다. ‘세베대의 아들의 어머니들’(마가복음 10:20-21)만 많아서 교단과 교회가 소란한 것이다. 성명서를 내고 힘자랑하는 이들보다 ‘내 탓이오’ 참회하고 ‘섬기는 자들’이 더 늘어나길 기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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