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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사역 전문가 최현준 목사의 ‘다음세대’ 논단(23)청년, 예수와 함께 답을 찾다
  • 기독교헤럴드
  • 승인 2023.11.29 21: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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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현준 목사(기성 하늘동산교회)

“신의 사랑을 창조하는 자”

2. 2년 전 탈레반으로 인해 세계가 시끄러웠다. 탈레반은 말 그대로 고아이자 알라를 믿는 신학생들인 만든 무장테러조직이다. 문제는 이들은 자신들만의 선을 강요하는 독선의 길을 걸으면서 숭고한 신앙을 자랑하는 자들이다. 이들을 보면서 섬뜩한 것은 정도의 차이일 뿐 우리 주변에도 탈레반과 비슷한 독선의 길을 걸어가고 있는 이들은 없는가 하는 것이다.

3. 최근에 발매된 업스트림이라는 책이 있다. 이 책에서 업스트림이란 문제의 현상만 고치는 것이 아니라 문제의 시발점을 찾아 문제 자체를 해결하는 것이라고 설명한다. 지금 한국교회는 이제 문제의 현상만을 해결하는 것에서 근본적인 원인을 제거해야 할 때가 왔다. 지금껏 한국교회는 성장하고 부흥하는 것이 최고라는 관점으로 문제를 외면해 왔다. 그러나 지금이야말로 우리의 문제를 직면하고 근본적인 원인을 고쳐야 할 때가 도래한 것이다.

4. 이사야 65장을 보면 하나님께서는 새 하늘과 새 땅을 창조하실 것이고 영원 전부터 영원 후까지 쉬지 않고 일하시는 창조의 하나님이심을 알려주고 있다. 그렇다면 하나님은 무엇을 창조하실까? 바로 사랑을 창조하고 계시다. 이리와 어린 양이 함께 놀고 사자가 짚을 먹으며 뱀이 흙을 먹는 시대. 인간은 만들 수도, 생각조차 할 수 없는 사랑과 평화의 세상을 창조하신다. 그렇다면 신의 자녀인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할까? 신의 자녀는 신이 하는 일을 함으로 신의 자녀임을 증명해야 한다. 하나님께서 계속해서 사랑과 평화의 세계를 만드시는 것처럼 신의 자녀는 신적인 사랑을 창조해야 한다. 그러나 신적인 사랑은 오직 신의 자녀만이 창조할 수 있다.

5. 마태복음 20장에 나오는 포도원 품꾼 비유처럼 세상은 정의와 공평을 이야기한다. 하지만 신의 자녀는 정의와 공평을 뛰어넘는 사랑을 만들어야 한다. 정의와 공평을 무시하라는 것이 아니라 정의와 공평은 기본적으로 지키고 나의 것을, 내 생각과 가치관을 포기하면서까지 사랑과 평화를 만드는 자가 되어야 한다. 과연 러브메이커, 피스메이커가 된다는 것이 쉬울까? 아니며 자기부정, 자기 포기가 없으면 결코 사랑을, 평화를 만들 수 없다. 세상은 마치 절굿공이와 절구통같이 끊임없이 다투고 싸운다. 서로를 공격하기도 하고 일방적인 갑질에 당하기도 한다. 그러나 그 안에 밥이 들어가면 파괴의 현장이, 창조의 현장이 된다. 계속해서 성령의 단비에 젖어 드는 밥은 절구와 절구통에 의해 떡이 된다.

6. 유교와 불교 중심의 대한민국에 기독교가 유입되면서 첩 문제, 여권신장, 가정폭력 등 사회의 각종 악습을 철폐하는 데 큰 역할을 감당했다. 그러나 그런 기독교도 이기지 못하는 두 가지가 있으니 바로 대학교와 정치문제이다. 아무리 신실한 사람도 이 두 가지 앞에서는 무력해지는 모습을 발견한다. 아무리 좋은 사람이라고 해도 나와 정치적 성향이 다르면 이기죽거리며 헤살을 놓기 일쑤이다. 하나님의 자녀들은 절굿공이와 절구통처럼 서로 다투는 이 세상에서 나를 내려놓고 떡이 되어야 한다. 하나님의 백성들은 정치를 뛰어넘어야 한다. 마치 전쟁터에서 적군과 아군을 가리지 않고 치료하는 의료인들처럼 모두를 품을 수 있어야 한다.

7. 정치문제로 나누어진 기독교와 여러 테러단체로 나누어져 싸우는 아프가니스탄의 탈레반과 무자헤딘의 차이가 무엇일까? 무기를 소지하지 않다 뿐이지 언어폭력은 기본이고 인격 말살까지 자행하고 있지 않은가? 정치로 인해 다투는 교회의 모습을 보면 징건하고 마음이 아프다. 정치적 입장이나 생각은 다를 수 있다. 그러나 비판은 할 수 있어도 비방은 자제하며 성숙하게 영글어 가야 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정치인들은 낮에는 싸우고 저녁에는 형님, 동생 한다는데 왜 국민들만, 기독교인들만 이용당하는지 안타깝기만 하다. 코로나로 인해 브레이크 없이 달리던 우리는 이제 한걸음 뒤로 물러나 우리를 객관적으로 보기를 원한다. 세상은 분열하며 다툴지라도 신의 자녀는 애오라지 신의 사랑을 창조하는 삶, 피스메이커, 러브메이커의 삶을 사는 것으로 매조지하는 것이 어떨까? 그것이 신의 자녀에게 부합되지 않을까?

“내려놓음, 더 내려놓음, 다 내려놓음”

1. 6월 7일. 이날은 내가 세상에서 두 번째로 사랑하는 장녀, 기쁨이의 생일이다.

자녀가 태어남으로써 나는 비로소 사랑이 무엇인지 알게 되었다. 부모가 된다는 것은 사랑을 배운다는 것이고, 희생과 섬김을 배우는 것이기에 그렇다. 사랑하는 자녀를 위해서 져주는 것, 포기하는 것, 알면서도 모르는 척하는 것이 불편함과 억울함이 아닌 기쁨임을 깨닫게 되었다. <다음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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