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PDATE : 2024.4.15 월 11:06
상단여백
HOME 기고/오피니언 특별기고
키워드로 보는 세상(41)‘찐’
  • 기독교헤럴드
  • 승인 2023.10.18 16:57
  • 호수 596
  • 댓글 0
김광연 교수(숭실대학교)

진짜와 가짜, 늘 동전의 양면처럼 따라다니는 말이다. 가짜가 난무하는 세상이라고 사람들은 말을 많이 한다. 언제부터인가 우리 사회에서는 ‘가짜’가 ‘진짜’인 것처럼 보여지는 그러한 곳이 되어가고 있다.

멀리서 꽃을 파는 가게를 바라본 적이 있었다. 멀리서 보이는 꽃은 전부 화려한 색으로 자신을 뽐내고 있었다. 더욱 유난히 자신의 색을 과시하는 꽃들이 있어서 일부러 꽃가게를 지나갔다. 그런데 아니나 다를까, 유독 멀리서 보이는 화려한 색의 꽃은 조화, 즉 인공으로 만들어진 꽃이었다. 말 그대로 가짜 꽃이었다.

누구나 한 번쯤 조화를 집이나 회사 사무실에 장식한 기억이 있을 것이다. 그 속에 비록 생명력은 없지만 그래도 잠시나마 생화를 흉내 낼 수 있는 장식용으로서는 대체할 수 있다. 대형 쇼핑몰에 방문하면 매장의 나무들이 간혹 장식용으로 사용된다. 그중에서도 진짜 나무가 있고, 진짜를 닮은 가짜 나무도 있다. 그런데 가까이 가서 자세히 살펴보지 않으면 그 나무가 진짜인지 가짜인지 분간이 어렵다. 좀 더 돌려서 말하면, 가짜를 진짜처럼 만들어 내는 기술이 너무 대단했다. 한편으로는 진짜와 가짜를 분간하기 어려울 정도의 기술력으로 인해 우리의 시선을 혼란스럽게 만들기도 했다. 

가짜와 진짜의 구분은 나무와 꽃뿐만이 아니다. 명품 브랜드를 흉내 내는 소위 짝퉁이라고 불리는 가방도 진짜와 가짜를 구분하기 힘들 정도이다. 어디 이뿐인가? 진짜와 가짜를 구분하는 것은 세상 어디를 가 봐도 천지에 널려 있다. 다시 말하면, 가짜가 난무하는 세상이라 진짜를 찾기란 어지간히 힘든 세상이라는 것이다.

혹시 지금 나는 지금 진짜의 모습을 하고 있는 가짜의 무언가가 가지고 있지는 않는가? 아니면 늘 우리는 가짜와 익숙한 나머지 진짜의 소중함을 잊고 있는 것은 아닌가? 세상에서 가짜가 너무 많아서 등장한 신조어 중의 하나가 “찐‘이란 말이다. 찐은 말 그대로 진(眞), 참으로 진실한 의미의 진을 좀 더 강하게 표현한 말이다. ’진‘보다 더 ’진‘인 의미, 즉 진실 되고 거짓 없는 것보다 더욱 진실 되고 의미 있는 말로서 ’찐‘이라는 말이 사람들에게 사용된다. 

‘찐’의 등장은 거짓으로 가짜를 진짜로 둔갑하는 사회에 등장한 우리 시대의 자화상은 아닌지 한 번쯤 생각해 볼 말이다. 얼마나 우리의 사회가 거짓이 난무하고 진실을 찾기가 어려워서 ‘찐’이란 말이 등장했을까? 그래서 사람들은 ‘찐친구’, ‘찐사랑’이란 말을 사용하기도 한다. 진짜진짜 친구, 진짜진짜 사랑을 표현할 때 사용되는 신조어이다. 우리는 얼마나 찐친구가 있는지도 한번 생각해 볼 일이다.

성경에서도 ‘거짓 선지자’와 ‘거짓 교사’가 등장한다. ‘거짓’은 사실을 왜곡하고 진실의 얼굴을 가린다. 거짓의 행동은 과거에도 있었고 오늘날에도 존재한다. 거짓에 현혹되지 않기 위해서 늘 ‘진실’의 가치와 의미에 대해 생각하는 마음이 필요해 보인다. 때로 거짓은 더욱 화려한 색으로 둔갑한다. 독버섯의 색깔은 더욱 눈에 잘 띄게 마련이다. 가짜 꽃(조화)은 멀리서 보면 더욱 화려한 색을 띠어서 진짜와 가짜를 구분하기 힘들게 만든다. 

늘 가짜와 진짜 사이의 경계선에서 우리는 ‘진실된 것’을 찾는 노력을 한다. ‘찐’, 오늘 우리 사회를 말해주는 ‘찐’은 진실의 상실을 말해주는 말이 아닐까? 점점 진실의 가치가 사라지면서 정말 우리가 진실을 찾고자 하는 또 다른 희망에서 등장한 ‘찐’의 가치는 또 얼마나 우리 사회에서 지탱할 수 있을지 두고 볼 일이다.

기독교헤럴드  chd6235@naver.com

<저작권자 © 기독교헤럴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좋아요 0

기독교헤럴드의 다른기사 보기
icon인기기사
기사 댓글 0
전체보기
첫번째 댓글을 남겨주세요.
여백
여백
여백
Back to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