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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기고> 비밀의 왕국1세기 가야는 기독교 왕국이었다(20)
  • 기독교헤럴드
  • 승인 2023.10.18 16:27
  • 호수 5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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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용봉 목사(기성 진주중앙교회 원로)

3. 제자 도마 

시간이 갈수록 예수의 이름은 모든 사람 속에 각인이 되었고 예수를 만나려는 사람들은 갈수록 그 수가 더해지고 있었다. 늘 동행하며 곁에서 시중들던 유다는 이런 형의 모습에서 새롭고 놀라운 모습을 보았다. 지금까지의 형이 아니었다. 형은 새롭게 하늘에서부터 내려온 분이었다. 그의 신비로운 이적과 기사들도 놀랍지만 해박한 지식과 그 말씀 한마디 한마디가 새롭고 신비롭기만 하였다. 유다는 이제 예수는 육신의 형이기보다 하나님의 사람이라는 인식이 들기 시작하였다. 이렇게 유다는 말없이 형 예수를 따랐고 예수님이 제자들을 선택할 때 그 무리 속에 들게 되었다. 이는 도마가 예수님을 가까이하였으며 그 말씀을 믿었기 때문이었다. 이렇게 유다는 도마라는 별칭으로 제자의 반열에 들게 되었다.

도마는 어떤 사람인가?

수전절이란 하누카(Hanukkah)라고 불리는 절기로 유대인에게는 성전을 되찾고 나라를 찾은 절기로서 온 백성들이 8일 동안 지키는 절기이다. 
BC356년 마케도니아의 수도 펠라에서 필리포스 2세와 왕비 올림피아스의 아들로 태어난 알렉산드로스는 열두 살 때 사나운 명마를 단숨에 길들일 정도로 용맹했고, 열여섯 살 때까지 그리스의 대학자인 아리스토텔레스를 교사로 삼아 학문을 배웠다. 알렉산드로스는 뛰어난 무예와 아리스토텔레스의 가르침으로 탁월한 학문을 겸비했고, 호메로스의 《일리아드》 《오디세이》를 읽으며 자랐다.

아버지인 필리포스 2세가 비잔티움과 전쟁을 하러 떠났을 때 알렉산드로스가 왕국의 섭정을 맡게 되자 그가 없는 틈을 타서 트라키아의 마에디 족이 반란을 일으켰으나 알렉산드로스는 주저하지 않고 나아가 마에디 족의 반란을 순식간에 진압하니 그의 명성이 드러나기 시작하였다. 필리포스는 그리스 대부분을 정복한 다음 코린토스에서 '그리스 연합(Hellenic Alliance)'을 만들어 페르시아와 그 힘을 겨루며 더욱 강력해지는가 했으나 BC336년, 에게 근방에서 딸의 결혼식에 참석했을 때 반감을 품은 경비대장 파우사니아스에게 암살당하고 말았다.

이런 일로 알렉산드로스는 약관 20세에 마케도니아의 왕위에 오르게 되었다. 왕이 되자 여러 반란이 일어났으나 하나하나 평정하기 시작하여 왕국을 안정되게 만들었다. 그리고 그는 아버지인 필리포스 때부터 준비해오던 페르시아 원정을 시작하였다.
당시의 페르시아 제국은 지중해에서 인도에 이르는 광범위한 지역에 걸쳐 성립된 최대의 제국이었다. 전성기를 지나 쇠락하고 있다 해도 마케도니아 같은 작은 국가가 상대하기에는 여전히 버거운 대제국이었다. 

BC 334년 그는 소아시아와 중동 사이에 있는 헬레스폰트해(다르다넬스 해협의 옛 이름)를 건너 소아시아를 경유하여 이수스에서 페르시아의 대군을 격파하기 시작하면서 페르시아 함대의 근거지인 티루스를 정복하고 가자를 함락시켰다, 그리고 이어 이집트의 항복을 받아냈다. 그는 쉬지 않고 페르시아로 진군하여 아르벨라에서 페르시아군에게 씻을 수 없는 치명적인 타격을 입히고 그 여세를 몰아 페르시아의 수도인 페르세폴리스로 진격하여 다리우스 3세의 뒤를 이어 즉위한 후계자를 죽이고 BC331년 페르시아를 굴복시켰다. 이로써 대제국 페르시아를 자신의 손에 넣고 바벨론 성읍을 복구시켜 예전의 영화를 되살리는 등 쉼 없이 일을 만들었다. 그리고 알렉산드로스는 4년 후 BC327년 오랜 전쟁으로 지친 군사들을 다독여가며 힌두쿠시산맥을 넘어 인도로 진격했다. <다음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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