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진각순례자의교회 담임

“세상에 나아가서 나누고 베풀며 정직하고 성실하게 살아가야 한다고 외쳐주어야 합니다.”

‘박은지’님의 『제가 알아서 할게요』(출판: 상상)에서 일부를 옮기며 각색해 봅니다.

고등학생 때는 학기 초가 되면 아래쪽에 절취선이 그어진 안내장을 받았다. 야간 자율학습 여부를 묻는 종이였다. 누군가 선생님에게 물었다. “동의 안 한다고 적으면 ‘야자’ 안 해도 돼요?” 아이들은 와르르 웃음을 터트렸다. 아침 여덟 시의 0교시를 시작으로 밤 열 시까지 야간 자율학습을 하며 버텼던 이유는 물론 대학 진학이었다. 그러나 대학에서 뭘 배울 수 있는지도 잘 몰랐다. 유일하게 알고 있던 정보는 ‘대학에 가면 주관식으로 시험 본다’는 것 정도였다. 막상 수능 점수를 받아 들고 원서를 써야 할 때가 오자, 담임선생님은 내 점수로 지원할 수 있는 가장 높은 대학과 가장 안전한 대학을 골라주셨다. 그 덕분에 대학에 갔지만. 또 그 탓에 일부는 ‘막상 와 보니 내가 생각했던 공부가 아니야’라며 한두 학기 만에 그만둬버렸다. 다음 문제는 취업이었다. 자신이 하고 싶은 일과 잘하는 일이 어떤 직무와 관련 있는지, 실제로 회사에 가면 무슨 일을 하는지, 평균 연봉은 어느 정도가 합리적인지 가르쳐줄 담임선생님은 당연히 없었다. 물론 몇몇 선배들에게 물어볼 수는 있었지만, 사회의 전체적인 그림을 그려보기에는 너무나 적은 통계였다.

대부분이 살아왔던 젊은 시절을 보여주는 글인 것 같습니다. 무엇을 할 수 있어야 하는지를 누군가에게 꼭 물어봐야 하는 식이었습니다. 그래서 스스로 결정하고 책임지는 사람이 만들어질 수 없는 때를 살았는지도 모릅니다. 자기 자신에 대한 확신이 없는 사람들을 이 사회가 양산해 낸 것입니다. 2014년,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한국을 방문하여 기자들의 질문을 받는 가운데 한국 기자들이 전혀 질문을 안 했습니다. 오바마는 한국 기자들에게 질문을 받겠다며 기회를 주었습니다. 어느 누구도 손을 들지 않았습니다. 이 장면은 국제 사회의 웃음거리가 되고 말았습니다. 스스로 결정할 수 없는 그런 배움을 가졌던 우리 사회의 단면입니다. 자신을 책임질 수도 없고 자신을 드러낼 만한 당돌함도 없는 그런 교육문화의 당연한 귀결일 것입니다. 스스로 결정하고 행동할 줄 아는 사람을 만들어내야 합니다. 책임질 줄 알고 또한 자신만의 것을 만들 줄 알고 당당하게 드러낼 수 있는 사람들을 만들어 내는 사회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그런데 교회도 별반 다르지 않습니다. 교회 안에서는 기쁨과 감사가 넘치는 생활을 합니다. 그런데 삶 속에서는 신앙과 조화시키는 그 어떤 결정도 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래서 아닌 척, 모르는 척 그냥 얼렁뚱땅 넘어가며 신앙인인지 아닌지 모호한 사회적 삶을 살아갑니다. 교회가 성도를 그렇게 가르친 것입니다. 세상에 나아가서도 그리스도인으로서 자신을 드러내며 살아갈 수 있도록 만들어 주지 못한 교회의 책임을 생각해 보았으면 합니다.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아 가르쳐 지키게 하라(마28:19-20에서)는 주님의 지상명령을 지켜 낼 수 있는 성도를 만들어 낼 수 있어야 한국 교회가 다시 일어날 수 있습니다. 교역자와 교회 울타리 안에서의 행복이 아니라 세상에 나아가서 나누고 베풀며 정직하고 성실하게 살아가야 한다고 외쳐주어야 합니다. 중 1학년, 첫 교복을 입고 주일을 맞았을 때가 생각납니다. 교복을 입고 손에 성경책을 들고 시내버스에 보란 듯이 올라탔습니다. 그때는 교회 다니는 것을 드러내는 것이 멋있는 일이었습니다. 교인이라면 세상 사람들이 모두 착한 사람들, 정직한 사람들이라 인정하던 때였습니다. 교회에서 그렇게 살아야 한다고 그것이 그리스도인이라고 가르쳐 주었기 때문입니다. 그런 교회와 성도를 세상도 인정했습니다. 그 시대가 그립습니다. 주께서 우리와 함께하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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