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 영 사모(본지 논설위원, ‘속삭이는그림들’ 저자)

나와 함께 살아가고 있긴 하지만 내가 마음에 들거나 사랑해서는 아니다. 우선 내 외모부터 내가 바라는 것과는 아주 상이하다. 모딜리아니를 아름답다고 여기지만 실상은 구석기 시대, 아주 오래된 비너스 쪽이다. 내면이라도 명석하고 침착하며 온유하길 원하지만 웬걸 저울추는 그 반대쪽으로 심각하게 기울여 있다. 상황이 이러니 현대인들처럼 명품백이라도 하나 들어 ‘나 돈은 좀 있어,’ 이런 ‘명품 발산 문장’이라도 착장해서 시선을 분산시켜야 할 텐데 언감생심이기도 하지만 썩 바라는 바도 아니다. 그러니 이래저래 부족한 것들 투성이라 어디 내놓을 만한 사람이 못 되는 것이다. 그저 다른 삶의 방법이 없으니까 나는 나와 동행할 수밖에.

실상은 그렇지만 가끔은 드물게 내가 마음에 들 때도 있긴 하다. 가령 이런 날, 아침 일찍 부지런함을 떨며 집을 나서 백마역에 있는 벨라시타를 향한다. DMZ다큐멘터리 영화제가 진행되는 곳이다. 매해 이맘때의 행사로 세계 각국의 다큐멘터리가 펼쳐진다. 사실 영화감독 그것도 다큐멘터리 감독을 하려면 인생에 대한 진지함과 밝은 시선, 삶에 대한 성찰, 미래에 대한 독특한 안목이 있어야 한다. 내겐 없는 안목으로 바라보는 세상들이 눈 앞에 펼쳐지는 것이다. 그것도 극장에 가만히 앉아서, 누구에게나 열려있는 축제지만, 다 즐기는가 하면 그렇지는 않다. DMZ다큐멘터리 영화제를 아는 사람은 사실 소수다. 그중에서도 내가 픽해서 보게 된 <마지막 겨울>은 열 명 안팎, 그것도 나중에 보니 GV를 위한 관계자ㅡ사회자 번역자 감독이 있었고 질문을 한 사람 중에 자신을 다큐 감독이라고 소개했으니 일반인 관객은 서너 명?

네팔의 고산 지대, 이름도 처음 듣는 도르계곡 그곳에 사는 두 여자 노인이 주인공이다. 더군다나 한겨울에는 모두 남쪽으로 내려가서 온 동네가 텅 비게 된다. 두 여인은 그 동네의 겨울 지킴이다. 한 남자를 남편으로 두고 살았던 여인들이다. 특별한 인연이었을 그들의 관계는 자연과 그들처럼 그저 심상하다. 다큐는 그들에게 어떤 질문도 하지 않는다. 바람처럼 눈처럼 자연 속에서 살아가는 그들을 가만히 비추고만 있다. 한겨울의 바람이 산을 흔들리게 하고 눈은 그 바람 따라 정처 없이 내리고, 겨울의 세찬 바람 소리, 눈 밟는 소리, 눈 내리는 소리, 겨울 새소리 등 수많은 소리들이 적막하다. 겨우 차로 십여 분 거리의 극장이지만 극장 속의 나는 한 번도 가보지 못한 네팔의 동네 도르 계곡으로 여행을 간 것이다. 이럴 때의 나는 시간 여행자일 뿐 아니라 공간 여행자이기도 하다. 삶으로부터 다가오는 모든 것들을 여행으로 치환시키는 힘이 아주 조금 생겨난 것이다.

<사람도 풍경이 되어버리는 다큐 같았습니다. 한겨울에 그 깊은 계곡 속에 여인, 둘만 남은 것은 자의 인가요, 타의인가요. 극 중반에 그들이 사는 집안으로 거침없이 내려앉는 커다란 까마귀들을 볼 때 자연풍경 같던 다큐에 스토리가 생기는가, 혹시 두 할머니 중 한 사람이 세상을 떠난 건가. 조장 생각도 났는데 아무런 일이 없이 지나갔어요. 무슨 뜻이 있었을까요?>

GV 시간에 내가 한 질문이었다. 자의이기도 타의이기도 하며 봉사에 대한 즉 가치에 대한 이념도 있었을 거라고, 까마귀에 대한 감독의 답이 흥미로웠다. 그냥 좀 무섭게 보이려고...순수하고 재미없는 대답, 마치 영화처럼 젊은 감독은 꾸미지 않는 대답을 했다.

영화를 보러 간다는 것은 의외로 수많은 계획이 유동적으로 움직일 때 가능한 일이다. 우선 정보가 있어야 하고 그 정보가 마음에 들어야 하고 게으르지 않을 때 가능한 일이다. (사실 이 나이쯤 되면 가장 편한 곳이 집이다) 움직일 수 있는 에너지가 있어야 한다. 영화를 보는 일이 즐거운 시간도 되나 끊임없이 생각해야만 한다. 감독의 의도를 살펴야 하며 극 중 사람들로 나 자신을 변환시켜야 하며 전체를 봐야 한다. 여유 있고 느긋해 보이지만 백조의 물속 다리처럼 열심히 생각해야만 하는 시간이기도 하다. 그러니 영화를 본다는 것은 진지한 삶에 대한 성찰이요. 각성이다.

뭘 더 바라랴.

영화관 속의 나는 내 마음에 든다.

가끔은 드물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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