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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 럼 / 이재정 목사의 하고 싶은 말(15)초전도체
  • 기독교헤럴드
  • 승인 2023.09.07 21:05
  • 호수 5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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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정 목사(기성 복된교회)

일전 우리나라 고려대학교 연구진이 ‘상온에서 초전도 물질’을 개발했다는 세계적인 뉴스로 설렜습니다. ‘LK-99’로 명명한 이 물질의 초전도성은 여러 검증을 거치면서 거의 해프닝으로 끝나갑니다만, 사실이었더라면 우리 땅에 유전 100개 터진 이상의 가치가 있을 뻔한 일이었더랍니다. 전선, 자기부상열차, 의료 장비, 컴퓨터 등 일상생활 모든 영역을 혁신할 수 있는 물질입니다. 꿈의 물질이라고 불릴 정도니까요. 미리 김칫국 마시는 사람은 이 물질 개발 사실을 애국가에 넣어 불러야 할 정도라고 호들갑을 떨기도 했습니다.

모든 물체에 전기가 흐를 때 그 물질이 가진 특성에 크고 작은 저항이 생깁니다. 일테면 나무나 돌은 저항값이 크기 때문에 전기가 아예 흐르지 않습니다. 전류가 흐르는 금속이라도 종류에 따라 저항값이 있습니다. 그 저항 때문에 전기 100을 보내면 거리나 전선 상태에 따라 70, 80 정도만 목적지에 도달합니다. 나머지는 전기 흐름을 방해하는 저항에 막혀 열을 내고 소모됩니다. 대부분의 전기 제품에서 열이 발생하는 현상이지요.

저항값이 ‘0’이어서 전류 손실이 전혀 없는 물질을 ‘초전도체’라 부릅니다. 그런 물질이 상온에서 실재한다면 용도는 무궁무진합니다. 그런데 상온에서는 어려운 일이고 영하 269도의 극저온에서나 가능하다니 상용이 어렵습니다.

전기가 흐르는 동안 전력이 손실되는 이유는 물체가 가지고 있는 저항 때문입니다. 그중 금이나 구리는 저항값이 적습니다. 금은 원체 값비싼 금속이니 구리를 전선으로 씁니다. 따라서 구리도 값비싼 금속이 됩니다.

“너희는 우리로 말미암아 나타난 그리스도의 편지니”(고후3:3). 성경은 우리를 그리스도의 편지랍니다. 그리스도를 세상에 전하는 전선 같다고 할까요?. 그리스도를 세상에 있는 그대로 전해 주는 사명이겠습니다. 그런데 우리 각자는 일정 부분 저항값을 갖고 있습니다. 복음에 접속된 우리가 또 다른 사람에게 복음을 전해 주어야 하는데 우리가 가진 분량의 저항값 때문에 상당한 분량의 감소와 심지어 왜곡을 겪습니다.

중요한 저항은 윤리 도덕적인 면에서 시작됩니다. 마땅히 갖춰야 할 사회적 책임을 다하지 못하는 저항값도 있습니다. 교회가 본질적인 품격을 잃어도 복음의 저항값은 높아집니다. 교회 조직이나, 교리, 신학, 심지어 성직 제도 등도 순수한 복음이 세상에 닿는 과정의 저항값이 됩니다. 친구가 전도하면 듣기라고 하지만 목사가 전도하면 달아나기가 숨 가쁩니다. 성직자의 복음 전도는 그만큼 저항값이 큽니다. 숨겨 가진 죄는 드러나지 않는 저항값입니다.

복음 전도에 전무후무한 공적이 있는 바울도 저항값이 만만치 않습니다. 유대인들에게는 이방인 접촉자, 변절자라는 낙인으로 극심한 저항에 시달렸습니다. 로마 사람들에게는 사회 소요 인자로 취급됩니다. 그가 전하는 복음의 내용은 들어보지도 않습니다. 다만 바울이 가진 저항값의 발열(發熱)이 핍박으로 나타났고 결국은 죽음에 이르렀습니다. 순교라 합니다. 바울이라는 최고의 전도자도 그가 소멸되어 저항값이 사라진 후에야 복음 전도 매체로 더 요긴했던 겁니다.

저항값이 적은 구리가 값비싼 금속이듯, 그리스도의 본질이 감소하지 않고 잘 전달되는 성도는 더 귀하게 여김을 받습니다. 아예 저항값이 ‘0’이어서 그리스도의 본질을 있는 그대로 세상에 전달해 줄 초전도체적인 ‘꿈의 그리스도인’이 있을까요?

상온에서 사용할 수 있는 초전도 현상은 아직 없답니다. 극저온에서만 가능한 현상이랍니다. 평상의 삶에서 그리스도의 복음을 있는 그대로 전해 줄 수 있는 인격체는 사실상 불가능합니다. 모든 사람은 복음의 저항값이 있습니다.

복음의 초전도체는 극저온이 아닌 극 고온에서 실현될 수 있습니다. 성령의 충만을 받아 뜨거운 심령이 되면 하나님이 그를 사용하셔서 있는 그대로의 복음을 전달하십니다. 일테면 예루살렘에서 성령의 충만함으로 극 고온 상태였던 베드로가 전한 복음을 듣는 사람들은 하루에 3천 명이나 감전되었더라지 않습니까. 우리 신앙의 목표를 거기 두어야겠습니다. 이 가을에 성령의 강력한 역사를 덧입읍시다. 맑은 영성으로 자신을 가꾸어 복음 전달 과정에서 저항값 ‘0’성도, 그리스도의 선한 영향력을 있는 그대로 전해 줄 수 있는 ‘초전도체’ 그리스도인들로 쓰임 받읍시다.

기독교헤럴드  chd6235@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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