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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진 교수의 구약성서 강론(118)에스더서의 이중성적 신학 구조
  • 기독교헤럴드
  • 승인 2023.09.07 16:23
  • 호수 5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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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신학대학교 13대 총장, 현 명예교수

실제로, 모르드개로 왕복을 입고 공개적으로 퍼레이드를 하게 한 것은, 어느 의미에서는 와스디로 하여금 왕후의 면류관을 정제하고 수많은 방백들과 백성들에게 보이도록 왕의 앞으로 나아오게 한 것(1장 11절)과 대칭을 이룬다. 그러나 이 와스디에게 결코 일어날 수 없는 일이 일어나 결국 와스디를 폐위케 하는 원인이 되어버렸다.

다른 의미로 보면, 이 두 사건은 대조적으로 정반대이다. 예를 들면, 와스디의 경우는 왕이 자기를 과시하기 위해 그녀의 육체적 아름다움을 내보이도록 하는 것이었다면, 모르드개의 경우는 왕의 생명을 구출해 낸 것에 대한 아하수에로 왕의 감사와 존귀함을 배려하는 퍼레이드였다. 여기서 우리는 저자가 한편으로는 아주 딱 맞는 평행을 이루는 구성을 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중요한 주제적 대조를 이루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 이야기가 전달하려는 광범한 특성은 저자가 유사성과 상이성을 합쳐 교착시킨 미묘한 차이에 대해 판단력을 잃게 한다. 그래서 읽는 자로 하여금 긴장감과 놀라움을 계속 가지게 한다. 이야기를 두 개로 짝을 이루도록 하고 종합적인 대칭적 구조를 갖는 것은 어느 수준에서는 평형과 정체를 생각나게 하는 반면에, 다른 단계에서는 모든 사건이 모르드개가 등용되고 反셈족 음모가 사라지게 될 때까지 그 행동을 계속하도록 한다.

3) 이중성적(二重性的) 구조

에스더서에서 이중적 구조 양식은 구조 전체에 걸쳐 보충하여 완전하게 하며, 다양한 메시지를 전하는 방법에 절대 필요하다. 우리가 이미 강조했던 대로, 에스더에서 짝을 이루고 중복되는 양식을 발견할 수 있다. 예를 들면, 두 개의 연회를 5단위로, 남자와 여자로 한 3개의 쌍(아하수에로와 와스디, 모르드개와 에스더, 하만과 세레스)을 이루고 있을 뿐만 아니라 사건의 장면도 여러 개의 이중 중복으로 쌍을 이룬다. 즉, 본문의 언어에 깊이 간직된 엄청나게 많은 문자 그대로의 양자관계를 볼 수 있다. 예를 들면, 제1장에서만도 24개의 관계를 발견할 수 있다. “아하수에로와 같은 아하수에로”(1장 1절부터 2절) “인도로부터 구스까지”(1장 1절); “그의 방백들과 신복들” “파사와 메대”(1장 3절, 14절, 19절); “귀족들과 방백들”(1장 3절); “그의 왕국의 거대한 부함과 영화로운 영광”; “여러 날 동안과 180일 동안”(1장 4절); ”높은 자와 낮은 자“(1장 5절); 각각의 손님(each guest)과 모든 사람(every man)”(1장 8절); “시중드는 일곱 명의 내시들”(1장 10절); “백성들과 방백들”(1장 11절); “왕이 분노하게 되고 중심에 불이 붙는 듯하다”(1장 11절); “사례를 아는 박사들”; “규례와 법률”(1장 13절); “왕의 면전에 가까이하는 자들과 일곱 방백들”(1장 14절); “왕과 방백”(1장 16절); “멸시와 분노”(1장 18절); “와스디 여인과 더 나은 여인”(1장 19절); “왕과 방백들”(1장 21절); “각각 도와 모든 도”, “각 백성과 모든 백성”; “자기 남편으로 주관케 하고 자기 민족의 방언대로 말하게 하라”(1장 22절) 등이다.

그러한 문자(말) 그대로 중복되는 양자관계로 표현되는 이유는 에스더서 저자가 큰 효과를 얻으려는 이야기 양식인데 이는 고대의 관공서 문체로서 눈에 띄는 것이었다. 에스더서 저자는 공문서 기록자의 양식을 자주 취하여 사용했다고 한다. 하필이면 1장에 이렇게 중복되는 말을 많이 사용하여 기록하고 있을까? 이는 궁정에서 행해진 사건들을 말하고 왕의 현자들로 구성된 참모 회의에서 심사숙고한 결정(1장 13절에서 22절)에 집중되고 있어서 그렇다. 그래서 상당히 관청 용어와 당시의 궁중에서 사용된 용어들이 신중하게 다루어졌기 때문일 것이다. 그래서 에스더서 전체 본문은 말이 쌍을 이루는 이중어(二重語) 혹은 두 단어의 군(群)이 많이 나타나 이야기에 쌍대성(雙對性)의 의미심장한 효과를 준다.

더욱더 살핀다면, 이 말의 쌍대성의 이중어 사용은 에스더서에 나타나는 가장 독특한 문학 양식으로 사건들을 구분 짓는데 동의어를 정교하게 연결해 광범위하게 사용하고 있다. 이는 같은 일을 두 번, 세 번, 혹은 네 번 얘기하는 경향이 있다. 예를 들면, 일곱의 내시들과 일곱의 현자들의 목록을 제시하고 있다(1장 10절, 14절)(뒤에 목록을 거꾸로 읽으면 앞엣것과 조금 비슷한 면이 있다). “파괴하다, 학살하다, 전멸시키다”(3장 13절, 7장 4절, 8장 11절), “금식, 통곡, 부르짖음 그리고 베옷과 재”(4장 3절), “영광, 즐거움, 기쁨, 존귀함”(8장 16절)과 같은 표현 등이다. 또한 하만의 아들들이 세 명씩 그리고 네 명씩을 두 그룹으로 정리되었고 각 그룹은 그 이름들이 p로 시작하고 어미에서 두 번째 음절에 액센트가 있고 t(h)a로 끝나고 같은 끝맺음으로 다른 이름과 함께 끝난다. 역시 그 동기는 가장 가능성이 없는 이야기를 역사적 진실성이 있게 보이게 하려고 공문서 기록 양식 혹은 연대기 편자의 기록 양식을 본받았을 것이다. 그러나 드디어 한결같이 그리고 아마도 더욱 중요하게 그 결과는 그 이야기의 익살스러운 어조를 고조시킨다. <다음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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