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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 이재정 목사의 하고 싶은 말(14)목회자 청빙 공고 
  • 기독교헤럴드
  • 승인 2023.08.24 22:37
  • 호수 5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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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정 목사(기성 복된교회)

찬반이 있는 문제를 말하는 건 언제나 조심스럽습니다. 그러나 반대 의견을 가진 사람들의 면박을 감수하고라도 좀 적어 두어야 할 말이 있습니다. 개교회에 담임 목사를 청빙하는 과정에서 우리의 교과서인 성경과 매우 다르게, 세상 가치관을 따라 진행되는 모습을 보기 때문입니다. 

까탈스럽게 말해 보려고 합니다. ‘청빙’(請聘)은 국어사전의 정의대로 풀면 구할 청(請), 찾아갈 빙(聘)입니다. ‘찾아가서 청하다’입니다. 애당초 청빙은 제시된 자격을 갖춰서 찾아오라고 공고할 일이 아니라는 뜻입니다. 그런데 목하 우리 교계는 담임 목사를 청빙 할 때 신문이나 기타 언론 매체에 ‘청빙 광고’ 내는 걸 객관적이고, 공식적인 절차로 인식하는 현실입니다. 몇몇 모사꾼들에 의해 만들어진 이 왜곡은 아주 되먹지 못한 처사입니다. 

성경의 정신, 교회의 정신에 전혀 맞지 않는 일이 이리된 까닭이 있습니다. 언론사를 주도하는 사람들이 시작한 일입니다. 작금의 소소한 언론사들은 다 운영난에 허덕입니다. 더구나 교회를 상대로 하는 대부분의 언론사는 운영비가 넉넉하지 못합니다. 열심히 광고를 만들어서 운영비를 조달해야 하는 현실이니 무슨 일이든지 자신들이 주관하는 매체를 광고판 삼도록 영업해야 합니다. 그 나름으로 수고도, 기능도 인정해야 합니다. 문제는 돈 주고 내는 청빙 광고가 어느덧 목회자 청빙의 필수, 공식 과정으로 둔갑해 버린 데 있습니다. 심지어 언론사가 가진 다양한 정보들을 수집하는 기능을 통해 청빙에 직간접 관여합니다. 마침내 경제적 이익을 포함하여 모종의 사익을 추구하는 추태를 부리게 된 것입니다. 

그런 과정을 통해 객관적이고, 공정한 청빙이 이루어지는 게 결코 아니람은 여러 사례로 증명됩니다. 여러 후보를 대상으로 청빙 대상자를 결정하는 과정에서 이견이 발생하고, 분열로 이어지는 사례는 비일비재합니다. 게다가 청빙 공고에 ‘응모’했던 목회자들은 모양 빠지게 됩니다. 최소 수십 명의 응모자 중, 한 사람만 청빙 됩니다. 나머지 응모자들은 ‘낙방’하여 기존의 사역지에서 신뢰를 잃습니다. 스스로 성직의 존엄함을 떠나 일자리 구하는 구직자 신세로 전락했던 자신을 돌아보며 자책감도 듭니다. 그러거나 말거나 모종의 거간꾼들은 먹고 떨어지면 그만입니다. 책임 의식은 1도 없습니다. 보무당당히 돈 받아먹고 할 일 다한 명분이니까요. 

모범적인 청빙 과정을 거치는 교회를 보았습니다. 담임 목사님이 은퇴하신 후, 새로운 목회자를 그야말로 모시는 과정이 지혜롭고 성경적입니다. 우선 광고, 공고를 내지 않습니다. 전국의 교회를 대상으로 개 교회 예산 규모를 특정하여 해당 교회들을 물색합니다. 그 중, 정한 연령대의 목회자가 있으면 1차 청빙 대상으로 삼고, 청빙 위원들이 일일이 찾아갑니다. 교회와 목회를 관찰하고, 주변의 의견을 듣습니다. 그렇게 취합된 의견을 모아 한 분 청빙 대상께 청빙 의사를 물어 응하자 교회의 조건을 담은 청빙서를 보냈습니다. 그야말로 목회자를 찾아가서 모셔 온 것이지요. 결과는 눈에 보일 만큼 선합니다. 

건강한 교회를 지향하려면 세상의 질서 말고 하나님이 정하신 최소한의 기준이라도 지켜 내야 합니다. ‘청빙 공고’는 성직자를 취업자 취급하는 천박한 행위입니다. 그런 과정으로 “채용” 된 목회자는 목회하는 게 아니라 자신을 채용해 준 주체를 놓고 월급쟁이 설교자로 되고 말지요. 그 일에 응모하는 목회자는 스스로 성직자이기를 포기하고 자신을 구직자로 전락시킵니다. 제 관찰로 보면 그런 광고에 좌고우면하지 않는 목회자, 목회의 본질을 잃지 않으려는 옹골진 의지로 청빙 광고에 응하지 않는 목회자들을 하나님이 골라서 쓰시거든요. 

까다로운 소리 하나 더 덧붙일까요? 내 앞에도 당면한 일이니 이도 면박 받을 일입니다. 이스라엘의 40년 지도자, 모세는 그 목적지 요단강가에 다다르자 쥐도 새도 모르게 사라집니다. 그 노회한 리더십으로 새로운 지도자 여호수아의 우호적 지원자가 될 수 있지 않을까요?. 그러나 뒷짐 지고서라도 새로운 지도자 여호수아 뒤에 어정거리지 못합니다. 새로운 지도자는 하나님께 직접 인도 받는 것이지 더는 모세의 도움을 받을 필요가 없다고 하겠습니다. 평생의 동지로 지내면서 친형처럼 따르던 목사님 한 분이 최근, 정말 닮고 싶은 뒷모습을 남기고 목회를 내려놓았습니다. 은퇴 일성이 ‘교회를 떠나는 것’이었습니다. 그 뒷자리가 섭섭하기도 하지만 자못 아름다워 개인적 속내로는 거의 장엄합니다. 변명 없이 자리 비운 외로움 감당할 준비를 못 갖추면 추태로 남을걸요. 

기독교헤럴드  chd6235@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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