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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 영 사모의 편지밤의 도서관
  • 기독교헤럴드
  • 승인 2023.08.25 10:51
  • 호수 5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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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 영(본지 논설위원, ‘속삭이는 그림들’ 저자)

늦은 밤 도서관은 독특한 분위기가 있다. 도서관의 주인인 책들이 살아나는 시간이라고나 할까, 여러 사람이 분주하게 일하고 있고 사람들이 들락거려야 할 공간이 텅 비어 있고 모니터 앞에 한 명만이 있다. 빈 의자들 역시 의자 스스로가 존재하는 듯 낮과는 다른 존재감을 선명하게 나타내고 있다. 사람이 지닌 소란함은 힘이 세다. 사람이 많으면 아름답고 적요한 풍경조차 사라져버린다. 혹시 소소하면서 섬세한 것들, 오래된 집이나 작은 뒷마당, 찬찬히 봐야 보이는 돌담길이나 숲에 펼쳐지는 소롯길의 고요한 아름다움은 사람들의 소란을 피해 스스로 숨어버리는지도 모른다.

밤의 도서관에서 호퍼의 작품 <나이트 호크>의 기운이 살짝 느껴진다. 사람들은 어딘가 자신의 몸을 뉠 곳으로 들어가 버리고 그러지 못한 사람들이 밤 가운데 남아있는 그림이다. 빛이라고는 식당의 불빛이 다다. 하루살이처럼 거기 빛 속으로 네 명의 사람들이 모여있다.

두 사람의 남녀는 어둠이 두렵기라도 하듯이 몸을 책상 앞으로 기울이고 있다. 호퍼가 좋아하는 중절모를 쓴 남자와 주황색의 원피스를 입은 여자와의 사이에 달달한 것이 흘러야 일반적이거늘, 호퍼의 사람들이 그러하듯 그들 사이는 서늘해 보인다.

설령 둘이 더 가까워진다 해도 저들에게는 현재의 저 빈틈이 완강한 자세로 존재할 것이다. 다른 한 남자는 그 어둠을 바로 대하고 있다. 그러나 그 역시 어둠이 두려운 듯 어둠을 피해 살짝 고개를 숙이고 있다. 숙인 눈으로 커플을 바라보고 있는지도 모른다.

평범한 사람들은 통속과 사이가 좋다. 통속은 예측 가능한 안정감이다. 그런데 어디 삶이 그러한가, 그러니까 호퍼는 지금 여기 어느 한순간, 소소한 모든 것들을 생략해버린 밤 풍경을 표현하고 있는 듯 보이지만 실제는 삶이라는 거대한 공간, 그 서늘함을 직시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 호퍼의 작품이 우리에게 다가오는 중요한 지점이 바로 그 서늘함이다. 서늘함은 관계의 근간이다. 그것을 호퍼는 표현하고 우리는 매혹당한다. 새로워서가 아니라 원래 그렇기 때문에 매혹당하는 것이다.

오란비 오시는 날 호퍼 전시회를 찾았다. 아침 시간이기도 했고 비가 와선지 사람들이 많지 않았다. 생경한 생각일지 몰라도 호퍼의 전시회를 보는 동안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혹시 호퍼는 우리 뇌 속의 풍경을 그리는 게 아닐까, 생략할 것은 과감하게 생략하고 기억하고 싶은 것만 기억하는 뇌의 성향대로 그린 그림. 일상을 그리면서도 일상의 디테일은 제거한 표현들이 그런 생각을 하게 한다. 

숲을 좋아해선지 호퍼가 그린 숲을 유심히 바라보았다. 특히 ‘오전 7시’의 숲과 ‘이층에 내리는 햇빛’ 속의 숲 그리고 ‘계단’ 앞의 숲, 눈부시게 환한 세상인데 숲들은 깊어선지 밤처럼 어둡다. 지금 사람들은 빛 가운데 존재하지만 어두운 숲은 바로 그의 옆까지 ‘계단’에서는 바로 앞에 펼쳐진다. 펼쳐진 숲은 아득하고 모호해서 두렵게 느껴진다. 계단을 내려서자마자 홀리듯, 끌려갈 것 같은 숲. 숲은 그들에게 인생의 어둠과 어둠 속의 균열을 보여주고 있다. 숲의 어둠처럼 갑자기 한 어둠이 펼쳐지는 게 인생 아니던가.

1914년 작품 ‘푸른밤’ 앞에서 오래 있었다. 기둥이 두 개의 그림으로 보이기도 한다. 배경의 푸른 밤은 숲과 하늘일 것이다. 제각각의 방향을 바라보고 있는 일곱 명의 사람들은 어느 사람도 서로에게 관심이 없다. 피에로는 막 연극을 마친 것일까, 나에게 말 걸지마, 피곤해, 내가 방금 한 작품에 대해서는 더더욱 말하지마. 새빨간 입술의 여인, 그러나 그녀는 고개를 빳뻣이 세우고 그 누구에게도 굴하지 않겠다는 모습으로 서 있다. 별도 달도 없는 하늘, 색으로 지워버린 숲은 푸른 밤이 되어 사이좋게 조용히 그들을 바라보고 있다.

몇 년 전 호퍼의 그림을 주제로 여러 유명 작가들이 위탁받아 쓴 소설을 읽은 적이 있다. 그만큼 다양한 스토리를 호퍼의 작품은 지니고 있다는 방증이다. 마크 스트랜드라는 시인이 쓴 ‘빈방의 빛’을 빌렸다. 에드워드 호퍼의 그림에 대한 인상을 적은 글로 시적 감흥과 독특한 시각들이 읽는 즐거움을 주었다.

밤의 도서관은 나만의 케렌시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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