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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권하는 사람들 / 전북지방회 독서클럽프로테스탄트 윤리와 자본주의 정신
  • 기독교헤럴드
  • 승인 2023.08.24 22:07
  • 호수 5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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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기철 목사(석매교회)

1. 시대적 배경

19세기 후반 영국에서 일어난 기술 혁명으로 유럽은 산업화가 급속히 진행되어 유구한 역사의 친숙한 전통들을 가차 없이 밀어버리고 자본주의 거대한 물결이 휩쓸고 지나갔다. 양모 생산을 위해 농토가 목축장으로 바뀌고 일자리를 잃은 빈농들은 도시 노동자 또는 부농에게 고용된 노동자가 되었다.

당시 철학자들과 사상가들은 이 새로운 “근대 자본주의” 아래서 어떻게 살아가야 할 것인지 고민하게 되었고, 마르크스는 자본주의를 자본가가 자신의 부를 늘려가기 위해 노동자를 착취하는 구조로 이해하고 공산주의를 주장했다. 하지만 사유재산을 가지지 못하게 하는 자체가 또 하나의 착취이다. 막스 베버는 마르크스가 말하는 자본주의를 비판하기 위해서 이 논문을 저술했다.

2. 근대 자본주의의 기원

베버는 이 논문에서 고대부터 현재까지 문명이 있는 모든 곳에 존재해 왔던 “자본주의”와 “근대 자본주의”가 어떻게 다른가에 대해 집중한다. 그리고 그는 근대 자본주의 기원이 개신교가 지니고 있던 “프로테스탄트 윤리”로부터 나왔다고 주장한다. 즉 경제나 기술의 문제가 아니라 종교 영역으로부터 생겨난 “자본주의 정신”이라는 에토스(ethos: 기풍)에서 시작되었다는 것이다.

3. 프로테스탄트 윤리와 자본주의 정신

베버는 당대 학자들이 “경제 형태”로써 근대 자본주의의 기원에만 관심을 가진 것을 비판하며, ‘경제 윤리’를 강조한다. 전통적인 경제 윤리를 추종하는 사람들은 노동을 천한 고역이자 필요악으로 여겨서, 경제적으로 윤택해지는 순간 노동을 회피하는 것이 보통이었다. 이런 노동관으로는 일정한 돈을 벌면 자신의 노동 시간을 줄이기 때문에, 노동생산성을 올리기는 어렵다.

베버는 이런 경제적 전통주의를 벗어나게 된 획기적인 계기를 프로테스탄트, 특히 청교도의 등장에서 찾았다. 베버가 자본주의 정신의 원천을 “종교”에서 찾은 것은 종교적인 신념이 삶 전체는 물론이고 노동 습관과 기업에 대한 접근방식에도 영향을 미친다는 견해를 기반으로 한 것이다. 베버는 종교의 차이가 직업 선택과 교육 정도에 깊은 영향을 미친다는 것에 주목했다.

베버는 각 종파의 종교적 신념이 거기에 속한 신자의 삶에 어떤 영향을 미치며, 그들의 경제활동에 대해 직접적으로 약속한 심리학적 보상이 어느 정도인가 하는 관점에서 비교 분석했다. 예를 들어 중세 가톨릭교도들은 “내가 구원받은 자에 속하는가?”라는 중요한 질문을 경제활동과 연결하지 않았다. 그들은 선행에 참여하는 것과 주기적인 ‘고해성사’를 통해 구원받을 수 있다고 믿었다. 또한 중세 가톨릭은 상인과 기업가를 몹시 부정적으로 보았다.

루터교는 가톨릭으로부터 극적인 변화를 꾀하기는 했지만, 사람들에게 자기의 삶을 체계적으로 조직하고자 하는 동력을 제공하는 데는 역부족이었다. 따라서 베버는 루터교의 경제 윤리 또한 기본적으로 전통주의에 머물러 있었다고 보았다.

반면에 칼뱅은 하나님을 전지전능하신 초월자의 위치에 두고, 오직 소수의 사람만 구원받으며 나머지 대다수는 영벌에 처하도록 예정하셨다고 주장했다. 그래서 베버는 ‘구원의 확실성’이라는 심리학적 보상을 얻기 위해 직업 노동을 중심으로 합리적이고 체계적인 삶을 영위한 것이 “자본주의 정신”을 탄생시켰다고 역설한다. 이것을 이루어낸 가장 대표적인 종파가 17세기 칼뱅주의를 기반으로 해서 생겨난 청교도들이다.

청교도들은 부 자체를 추구한 것이 아니라, 부의 축적을 통해 하나님 나라의 건설에 이바지하고자 했다. 그래서 오히려 빈곤과 결핍은 전지전능한 하나님을 욕되게 할 뿐이었다. 그들은 사치를 배격하고 근검절약을 실천했고, 그 과정에서 자본이 축적될 수 있었다. 그리고 자신들이 돈을 벌어 큰 부자가 되었다고 해도, 그 부를 자신들을 위해 사용하는 것은 도덕적으로 비난받을 만한 죄악으로 여겼다. 이러한 청교도적 정신이 미국의 기부 문화와 19~20세기 미국의 세계선교에 크게 이바지하지 않았나 생각한다.

정리하자면 17~18세기 유럽은 기술 혁명으로 인해 대량생산이 가능해지면서 근대 자본주의가 발전하게 된다. 이런 급격한 변화의 흐름을 정의하는 과정에서 많은 사상가와 학자들은 여러 가지 분석과 비판적인 논문들을 발행했다. 전통적으로 종교는 금욕이나 청빈을 이상으로 삼았지만, 베버는 ‘근대 자본주의 정신’의 뿌리를 칼뱅의 예정설에서 찾았다. 즉 하나님이 구원받을 사람을 불렀다는 의미는 ‘내가 세상에서 어떻게 살아야 할지를 불렀다’라는 의미로 해석되었고, 그래서 칼뱅주의가 전파된 곳에서는 자신의 직업을 신의 소명과 동일시하게 되었다. 그리고 칼뱅주의 기독교인들은 자신의 직업 활동으로 인한 성공을 하나님이 자신을 선택했다는 징후로 해석했다. 그리하여 상반되어 보였던 종교적 신념과 부의 축적을 상호보완적 관계로 재해석하게 되었다. 그래서 베버는 이 프로테스탄트 신앙이 근대 자본주의 정신을 기원이라고 주장한다.

베버가 말하는 ‘자본주의 정신’이란 다음과 같다.

첫째, 일하는 것은 그 자체로 가치 있는 것이다.

둘째, 정직하고 근면한 노동을 통해 돈을 버는 것이 목표다.

셋째, 시간을 허비하는 것을 경멸하고 계획을 세워 실천하는 생활을 한다.

넷째, 일하기 위해 쾌락, 행복, 즐거움 등을 포기하고 쓸데없는 휴식이나 게으름을 물리친다. 다섯째, 돈을 모으기 위해 절약하고 검소하게 생활해야 한다.

막스 베버는 이를 자본주의 정신이라 불렀고, 그는 돈보다 자본주의 정신이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우리 조상들은 서양의 자본주의를 원천 봉쇄하는 쇄국정책을 펴다가 쓰라린 식민지 시대를 거친 후에 해방 후 자본주의를 받아들여 눈부신 발전을 이룩했다. 지금 우리는 초기 자본주의 시대나 100년 전 베버가 살던 시대와는 비교할 수 없는 자본주의가 고도로 발전한 시대에 살고 있다. 하지만 과연 우리나라를 비롯해 미국이나 대표적인 자본주의 국가들이 베버가 말하는 ‘근대 자본주의 정신’을 이어가고 있는지, 또한 오늘날의 자본시장에서 프로테스탄트 정신에 입각한 경제 윤리가 작동하고 있는지도 의문이다. 고위층이나 사회지도층 또는 재벌들이 부당한 방법으로 축재한 사실이 자주 뉴스에 보도되어 부자들의 윤리성이 사회적인 지탄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

자본주의는 돈을 맹목적으로 추구하고 숭배하는 것이 아니다. 이런 문화를 천민자본주의라고 한다. 우리나라도 건국 과정에서 자본주의를 도입하여 국가 발전을 이루기는 했지만, 천민자본주의적 행태가 만연하다. 베버의 주장대로 ‘근대 자본주의’가 프로테스탄트 윤리에 뿌리를 두고 있다면 현 사회와 경제가 기독교적 정신으로 움직여지도록 선도해야 할 책임과 의무가 오늘 우리 교회에 있다.

또한 자본주의가 제대로 작동하려면 합리적으로 노동하는 자본주의의 정신을 습득해야 한다. 그렇지만 우리 사회에 과연 어디에서 한 개인이 자유 시민으로 성장하는 학습 과정에서 자본주의 경제 윤리에 대해 배울 기회가 제공되고 있는가? 청교도 시대처럼 교회가 그 소임을 수행할 수 있을까? 오히려 교회가 프로테스탄트 정신을 상실하고 사회로부터 염려와 걱정의 대상이 되고 있지 않은가? 지금부터 100여 년 전에 ‘영적 대각성 운동’이 일어났다면 ‘경제 정의와 프로테스탄트 윤리를 회복하는 개혁과 대각성 운동’이 기독교와 교회로부터 일어나야 한다고 생각한다.

막스 베버, ‘프로테스탄트 윤리와 자본주의 정신’ , 박문재 옮김, 도서출판 현대지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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