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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사역 전문가 최현준 목사의 ‘다음 세대’ 논단청년, 예수와 함께 답을 찾다 ⑮
  • 기독교헤럴드
  • 승인 2023.08.24 22:36
  • 호수 5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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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현준 목사(기성 하늘동산교회)

신뢰하는 믿음

8. 과연 우리는 언제가 되어야 믿음의 후배들을 보며 안심이 될까? 50세? 60세? 정답은 내가 믿는 순간이다. 여든이 넘은 시어머니가 환갑이 넘은 며느리에게 잔소리를 하는 경우를 흔히 발견한다. 믿음이 없으면 후배의 나이가 100세가 넘어도, 며느리의 나이가 100세가 넘어도 안심이 되지 않는다. 무조건적인 믿음을 논하는 것이 아니다. 청년들의 일에 아예 손을 떼라는 것이 아니다. 그들의 목소리를 경청해 달라는 것이다.

9. 여(余)는 운전면허증을 취득한 이후로 주로 승합차를 운전했다. 그래서 제동이 잘 되는 승용차가 오히려 불편하다. 또한 아직은 젊기에 선배 목사님들과 함께 이동시 승합차 맨 뒤쪽에 착석한다. 관건은 운전하시는 분이다. 주로 승합차를 운전하셨거나 안전하게 운전하시면 상관이 없지만 승용차만 운전하셨거나 승합차를 타셨어도 조수석에만 타셨던 분들이 운전하는 차를 타면 맨 뒤쪽은 롤러코스터 변한다. 사람은 위치에 따라 보이는 것이 다르다. 필자 또한 부교역자로 있을 때 담임목사님의 사역과 결정을 흔쾌히 이해하기가 어려웠다. 담임이 되고서 앞서가는 지도자의 고뇌와 고통을 깨닫게 되었다. 말없이 헌신하는 어른들의 보이지 않던 희생들이 눈에 밟히기 시작했다. 그에 비해 점점 청년들과 청소년들을 이해하기란 어려워진다. 왜 길에서 앞머리에 롤을 꽂은 채 다니는지, 옷은 왜 저렇게 입는지, 저 유치찬란한 영상이 정말 재밌다고 생각하는 건지 이해하기가 어렵다.

10. 우리는 청소년, 청년들을 향해 다음세대라고 말한다. 그리고 그들이 나중에 귀하게 쓰임 받을 수 있도록 정성껏 가르치고, 양육하며 길러내야 한다고 말한다. 1990년대부터 수도 없이 외쳤던 말이지만 그 결과는 어떠한가? 대다수 교회에서 50대 이하를 찾아보기가 지경에 이르렀다. 30년 동안 최선을 다하지 않은 교회와 지도자들이 있는가? 아니다. 그렇다면 우리의 열심을 의심할 것이 아니라 열심의 방향이 잘못되지는 않았는지 점검해 보자는 것이다. 진리를 사칭하는 이단에는 다음 세대가 넘쳐나는데 왜 진짜 복음을 전하는 교회에서는 검은 머리가 사라져갈까를 고민해야 한다. 심지어 이단에서 벗어났고, 이단이 잘못된 단체라는 것을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다시 이단 공동체를 그리워하며 돌아가는 이들이 있다. 만약 어른들 자체를 싫어했다면 정통교회나 이단이나 모두 젊은이들이 사라져야 마땅하다. 서두에서 거론한 것처럼 MZ세대, 알파세대가 686세대, 베이비붐 세대를 싫어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본인들이 경험하지 못한 것을 경험한 어른들의 경험과 취향을 신기해하고 알고 싶어 한다. 그것이 ‘할매니얼’이라는 유행의 저변에 있는 생각이다. 문제는 소통이 되지 않고, 소통은 거부한 채 본인의 생각만 주장한 채 일방적인 지시만 하는 어른을 피하는 것이다. 더 정확히는 어른이 아니라 ‘꼰대’를 피하는 것이다. 80대인 이강천 목사님께서 30~40대 후배 교역자들과 편안한 소통이 되는 것은 그들의 말에 귀 기울여 주기 때문이다.

11. 그렇다면 청년들이 꿈꾸는 교회는 어떠한 모습일까? 첫째, 경청과 소통이 있는 교회이다. 일방적인 강요와 지시가 아닌 소통이다. 둘째, 실수와 실패를 허락하는 교회이다. 아이들이 건강하게 키우겠답시고 멸균된 공간에서만 지내는 것은 아이를 온실 속의 화초처럼 연약하게 키우는 것이다. 오히려 자연 속에서 흙과 모래를 만지며 자라야 더 건강해지듯 청년들은 온실 속에서 키워서는 안 된다. 청년들의 실수를 허락해야 한다. 이 세상에는 실수와 실패를 통해서만 배울 수 있는 것들이 있다. 홈런왕 베이비 루스는 삼진 기록은 홈런 기록의 두 배가 넘는다. 그러나 그는 삼진을 두려워하지 않았기에 홈런왕이 될 수 있었다. 청년들의 실수와 실패를 허락하고 그들의 실수와 실패를 책임져 주는 교회이다. 셋째, 내 계획이 아닌 하나님의 계획을 이루고자 하는 교회이다. 나의 안목과 생각의 한계로는 하나님께서 세우시는 청년들을 제한하는 교회가 아니라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교회이다. 우리의 조급함으로 청년들 가운데 은혜를 채우려 하면 오히려 과유불급이 될 수도 있다. 그러나 하나님의 역사를 믿고 청년들을 믿어주면 영적인 그릇이 더 커질 것이고 하나님께서 커진 그릇을 채우실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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