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브로커’는 베이비박스에 버려진 아기를 빼돌려 돈을 받고 팔아넘기려는 이야기다. 아이를 버렸지만, 다시 찾으러 온 소영(이지은)은 아기의 얼굴을 차마 똑바로 보지 못하고 불이 꺼진 어둠 속에서 “우성아, 태어나줘서 고마워!”라고 말한다. 세상에 태어나줘서 고맙지 않은 존재는 없다. 그런데도 태어나서 한 번도 이런 얘길 듣지 못하고, 세상을 떠나간 아이들, 물건처럼 쓰레기통에 버려지고 모르는 이에게 팔린 아이들, 지금도 어디에선가 학대당하고 있을 아이들도 있다.

‘몰래 입양을 보내고 싶다’는 미혼모의 인터넷 글에 대해 ‘개인 입양을 하고 싶으니 연락을 달라’, 한 미혼모의 출산 비용을 묻는 글에 ‘출산 비용을 대주고 아이를 개인 입양(불법)하고 싶다’는 댓글 등이 보인다. 문제는 이렇게 ‘거래’(?)된 영아들이 유기·학대나 극단적 살해 등 범죄에 무방비 상태가 된다는 점이다.

2015년부터 지난해까지 태어난 기록은 있으나 출생신고가 안 돼 생사가 확인되지 않은 아이들이 2236명이다. 이 기간 베이비박스에 버려진 아이들이 1000여 명이다. 이를 감안해도 1000명 넘는 아이들의 행방을 모른다. 이런 일을 전혀 몰랐다는 듯 정부는 분주하게 대책을 마련 중이다. 영·유아를 상대로 끔찍한 범행을 저지른 개인을 넘어, 이런 일을 가능케 한 정부와 병원, 정치권의 책임이 크다. 병원이 부여하는 임시번호와 주민등록번호를 대조하면 출생신고가 되지 않은 아이들의 실태를 알 수 있다는 것을 보건복지부는 알고 있었지만, ‘개인정보보호 위반’이라는 이유로 한 번도 조사하지 않았고, 그동안 2000명이 넘는 아이들이 사라졌다.

병원은 행정기관에 출생기록을 통보할 의무가 없고, 부모에게 한 달 내에 출생신고를 하라고 알려주는 게 전부다. 하지만 병원은 행정비용과 책임 부담이 크다는 이유로, ‘출생통보제’에 반대하면서도 접종 기록을 제출하면 질병관리청이 지원금을 주기 때문에 신생아 접종으로 얻는 실익은 챙겼다. 정치권의 무책임은 말할 것도 없다. 21대 국회 들어 출생통보제 관련 법안이 15건이나 발의됐으나, 여야는 정쟁에 몰두하느라 단 한 번도 논의하지 않았다.

국가소멸을 걱정하며 ‘저출생·고령화’가 최대과제라고 외치면서도 기본적인 출생신고 등록시스템 구축도 외면한 것이다. 국회는 관련 법 제정을 서두느라 그렇지만 졸속 입법은 안 된다. 꼼꼼하게 법제화하고, 불안전한 사각지대는 없는가 살펴보아야 한다. 저출생 문제에 수년간 천문학적인 돈을 쏟아부으면서도 정작 ‘출생아 관리’도 제대로 못해서야 되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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