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현준 목사(기성 하늘동산교회)

“20세기 청춘들의 이야기”

2. 영화 ‘수상한 그녀’의 주인공인 오말순 여사는 온 가족과 갈등을 빚는 장면으로 영화가 시작된다. 광부로 독일에 파견되었던 남편은 한 줌의 유골로 돌아오고 홀로 뱃속의 아이를 키우고자 한 아이의 엄마는 갖은 고생을 마다하지 않았다. 하나뿐인 아들을 번듯하게 키우고자 그녀는 국밥집에서 직원으로 일하기 시작하였고, 나중에 그 국밥집의 비법을 몰래 익히고는 같은 시장에 국밥집을 개업하여 원조식당을 망하게 한다. 은혜를 원수로 갚은 것이다. 세상 모든 사람이 등을 돌리고 손가락질을 한다 해도 오직 한 사람, 그녀의 아들만은 그녀를 욕할 수 없다. 힘든, 아니 야곱처럼 험악한 인생의 굴곡을 겪으며 꽃다운 아가씨는 억척스러운 아줌마로 변하였고, 어느샌가 잔소리꾼 시어머니가 되었다. 

3. 이 땅의 부모님들은 자녀에게 유산은 못 물려준다 해도 가난은 대물림하지 않고자 이를 악물고 노력하였다. 굶어 죽고, 병들어 죽는 것을 차마 보지 못하며 ‘빼앗고 훔치고 빌어먹을지언정’ 어린 자녀를 기필코 살리고자 하였다. 그렇게 어린 자녀를 살리고자 안간힘을 다한 이 땅의 어버이들은 채 환갑을 넘기는 이가 드물었고, 어버이들의 사랑과 희생으로 어린 자녀는 생명의 불길을 이어받아 어버이가 되어 또 다른 어린 자녀를 위해 기쁨으로 희생하는 사랑을 전달하였다.

4. 20세기의 청춘들도 한때는 꿈이 있었다. 20세기에도 낭만이 있었다. 사랑이 있었다. 꿈이 있었다. 배우자의 얼굴도 모른 채 결혼식을 올리고 가족을 건사하기 위해 무작정 앞만 보며 달려온 시간이었다. 격동의 20세기는 정(情)은커녕 인간성마저 거세당한 상실의 시대였으며, 낭만과 사랑과 꿈이 권력자들의 비정한 칼날에 베이어진 단절의 시간이었다.

5. 만신창이가 된 20세기의 청춘들은 그래서 거칠다. 투박하다. 심지어 상스럽게 느껴지기까지 한다. 사방에서 쏟아지는 총, 칼을 맨몸으로 받아낸 그들의 말은 거칠 수밖에 없다. 세상의 모진 풍파를 짊어진 그들의 행동은 투박할 수밖에 없다. 자신의 마음을 돌보지 못한 그들의 말은 상스러울 수밖에 없다. 그렇기에 그들의 상스러움은 성스러움이다. 그렇기에 그들의 투박함은 온유함의 다른 표현이다. 그래서 그들의 거친 말은 나약한 생각을 붙잡아주는 도구였다.

6. 누천년(累千年) 동안 부모에게서 자녀에게 잇대어온 사랑은 누군가 함부로 빼앗거나 베어낼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가족을 위해 자신을 포기한 그들을 향해 누가 욕을 할 수 있을까? 자녀의 미래를 위해 자신의 현재를 포기한 그들을 향해 누가 침을 뱉을 수 있으랴? 사랑하는 자녀가 찬란한 꽃으로 피어날 수 있도록 스스로 거름이 되는 길을 선택한 그들을 향해 감히 누가 돌을 던질 수 있을까? 가족은 그들의 유일한 희망이요, 기쁨이요, 구원인 것을.

7. 꿈을 포기할 수밖에 없었던 1960년의 청년을 비방할 수 없다. 억지를 부리고, 성화를 부리는 1950년의 청년을 비난할 수만은 없다. 자기 생각만 옳다고 주장하며 강요하는 1940년의 청년들을 미워하기만 할 수는 없다. 시대는 그들의 꿈을 포기시켰기에, 가족은 그들의 희생이 필요했기에, 이 땅은 억지로 그들의 헌신시켰기에. 21세기의 청년들은 20세기 청년들의 피와 살로 삶을 영위하고 있기에. 그저 안타까움과 눈물이 날 뿐이다. 다만 마음이 늙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다양한 의견과 생각들에 귀 기울여 주기만을 바랄 뿐이다. 잘 들리지 않고, 이해되지 않아도 경청해주기를 바랄 뿐이다.

8. 영화 “흐르는 강물처럼”은 아름다운 풍경의 영상미와 잔잔한 배경 음악이 아름다운 조화를 이루는 대작이다. 1992년 상영된 이 영화는 거의 30년 가까이 지났음에도 불구하고 아름다운 여운을 주는 영화이다. 이 영화는 세 부자(父子)의 이야기이다. 목사인 아버지와 순종적인 첫째 그리고 방종한 둘째. 다양한 인생을 사는 세 부자는 서로를 이해하지는 못하지만 이해하려고 하고 서로를 사랑한다. 이 영화에서 둘째를 잃은 아버지는 마지막 설교에서 이런 말을 한다.

“사실 우리는 우리에게 가장 가까운 사람들을 거의 돕지 못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우리 주변에 있는 사람들이 누구인지를 알아야 합니다. 설사 그들을 완전히 이해하지 못하더라도 우리는 완전한 사랑을 줄 수 있습니다.”

9. 서로를 이해와 공감을 줄 수는 없어도 사랑은 줄 수 있지 않을까?

21세기의 청년들이여, 20세기의 청년들을 경멸하지 말자.
20세기의 청년들이여, 21세기의 청년들을 멸시하지 말자.
우리는 서로를 완전히 이해하지 못해도, 우리는 서로에게 완전한 사랑을 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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