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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대담> 기성 순천연향교회 윤세광 목사“기도하는 목회, 건강한 교회로 세워… ‘축호전도와 성경공부’로 성도 신앙 지도 ”
  • 고광배 특임기자
  • 승인 2023.06.29 18:19
  • 호수 588
  • 댓글 2
왼쪽부터 고광배 특임기자, 윤세광 담임목사

◆ 일시: 6월 11일, 오전

◆ 장소: 순천연향교회 목회실

◆ 주제: 건강한 교회의 목회 현황

◆ 대담: 윤세광 담임목사

◆ 진행: 기독교헤럴드 고광배 특임기자

Q. 목사님 성장배경과 가정사, 그리고 신학을 하게 된 동기가 있는지요?

A. 예, 저는 전남 신안군 암태면에서 아버님(윤우봉 목사, 2017년 작고)으로부터 6남매 중 막내로 태어났습니다. 아버님은 함경북도 흥남에서 8.15해방 후 남으로 내려오셔서 소명 받아, 서울신학교(서울신학대학)에서 수업하고 졸업 후, 1953년부터 목회를 했습니다. 1941년에 결혼하여, 3남 3녀를 두고, 큰형님(윤의광 목사)은 본 교단에서 46년간 목회한 후 은퇴하셨고, 막내인 제가 1988년부터 지금까지 35년째 목회하고 있습니다. 아버님은 제가 어렸을 때부터 자녀들에게 철저한 신앙교육을 주입하셨습니다. 그리고 ‘주의 종’이 되는 길로 이끄셨습니다.

율법적이라고나 해야 할까요? 아버님의 엄격한 가르침과 지도에 학교에서는 모범생, 교회에서는 예배와 봉사에 주력하였고, 언제나 상은 늘 독차지 했습니다. 중학교 2학년이 되면서 교회의 모든 예배에 풍금 반주를 했고, 교회 예배 주보 작성, 교회당 청소, 교회학교 교사를 했습니다. 아버님은 어려서부터 순종하며, 목회자의 목회를 돕는 아들이 목회자가 되어야 한다고 교육하며 기도하셨습니다. 저는 중학교 3학년이 되었을 때 성경을 통독하며 통신으로 성경을 공부하고 고등학교 1학년이 되어 세례를 받았지만, 구원의 확신이 없는 게 문제였습니다.

더구나 아버님이 목회하고 있는 교회가 농어촌교회며 미자립교회였고, 가난한 어린 시절을 보내면서 점점 목회자의 꿈이 없어져 갔습니다. 제가 내성적인 성격이라 아버지의 목회를 보고 자라면서 교회의 장로로 교회를 섬기는 것이면 몰라도, 목회자는 되지 않겠다고 다짐했죠. 저는 1980년에 고등학교를 졸업하면서, 인문계 출신으로 취업제한이 있어, 통신 기술 기능사 자격을 취득한 뒤, 2년간 통신회사에 근무했습니다. 2년간 사회생활을 하는 동안, 인생에 대하여 생각하게 되었고, 미래에 대한 염려와 인생을 고민하게 되어 급기야 우울증에 시달렸습니다.

육체적, 정신적 아픔이 찾아왔고 영적인 구원의 확신이 없었던 저는 신앙적 갈등으로 방황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로 인해 1982년에는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고 강화도 모 기도원에서 금식하며, 신앙 체험과 진로에 대해 기도했습니다. 금식 3일째 성령을 체험하고 철저히 눈물로 회개했습니다. 이때 고린도전서 15장 50절 말씀에서 주님의 음성을 들었습니다. 혈과 육은 하나님 나라를 유업으로 받을 수 없고또한 썩는 것은 썩지 아니하는 것을 유업으로 받을 수 없느니라라는 말씀에서 성령으로 거듭나야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있다는 확신을 얻게 되었습니다.

금식 3일째가 되던 1982년 2월 10일 오후에 마니산 첨성단에서 서원했습니다. 이제는 주와 복음을 위해 남은 생애를 살아야겠습니다라고 결단하고 하산했습니다. 지금까지는 예배와 기도에 형식적으로 참여했다면, 이제는 내 안에 성령님이 주신 힘으로 찬양하며 기도했습니다. 좋아하던 유행가는 모두 멀어졌고 오로지 찬양을 통해 은혜와 기쁨, 그리고 지속적인 기도를 통해 주님의 음성을 들었습니다. 신기하게 기도원에서 성령을 체험한 후 지금까지 새벽 4시 이후에 기상하여 41년이 되는 지금까지 빼놓지 않고 새벽기도를 하면서 신학을 공부하였고, 서울에서 부 교역자로 5년, 순천에서 개척하여 30년을 목회하고 있습니다. 지나고 보니 어린 시절 순교자 문준경 전도사님이 세운 교회에서 아버지가 목회하여 순교자의 영성을 자연스럽게 이어받게 되고, 부모님의 기도로 부족한 제가 여기까지 오게 되었습니다. 감사한 일이지요.

Q. 목회 중에 보람과 어려웠을 때는 언제이고, 그 어려움을 극복한 내용이 있나요?

A. 서울에서 전담 전도사로 5년간 사역하고, 이어 단독목회를 해야 목사 안수를 받았던 시기에 교회의 청빙을 받아 단독목회를 할 것인가?, 개척할 것인가? 에 있었습니다. 결국 개척하기로 결심했습니다. 그런데 아무 연고가 없는 전남 순천서 개척한 것은 소위 맨땅에 해딩하는 것이었지만, 1993년 1월 25일 33세 나이로 34평 아파트 상가에서 단독목회를 시작했습니다. 그 당시 아파트 주민들의 반대로 개척과정에서 1년 동안 시련을 겪기도 했지만, 아내와 3살배기 아들과 함께 첫 주일예배를 드렸던 그 감격을 지금도 잊을 수 없습니다.

서울에서 어린이 선교신학교를 졸업한 아내가 선교원을 개원해 43명의 어린이가 말씀 안에서 자라게 되었고, 관계 전도 차원에서 자모 대학을 개설하고, 붓글씨와 기타 반을 운영했습니다. 밤낮 가리지 않은 사모의 헌신적인 전도와 양육, 그리고 투명한 재정 운영, 성경 공부와 제자훈련으로 교회가 설립된 3년 만에 자립하게 되었습니다. 교회를 개척하기 전, 저는 다짐했던 것이 있었습니다. “첫째, 단독목회는 교회 개척으로 시작한다. 둘째, 개척하여 7년 안에 예배당을 건축한다. 셋째, 40세 이전에 대학원을 진학하고, 하나님이 주시면 둘째 아이를 낳는다.”고 구체적으로 세 가지 기도를 했습니다.

감사하게도 33세에 개척하여 단독목회를 하였고, 개척 6년째 예배당을 건축하여 7년째 되는 해에 입당 예배를 드렸으며, 39세에 둘째 아들을 낳았고, 제가 대학원을 진학하여 기도한 것에 대하여 모두 응답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30년 목회 중 2,000년도에 예배당을 건축한 후, 일부 성도들이 시험에 들어 60여 명의 성도 중 12명의 집사들이 교회를 떠나는 아픔을 겪기도 했습니다. 1997년 IMF 시절에 예배당 건축을 위한 교회 대지를 매입하고 2년 후 예배당을 건축하여 약 2억 원의 교회 건축 부채를 안고 있었습니다.

직접적으로는 성도들 간에 갈등과 대립으로, 간접적으로는 저의 교만과 나태함으로, 성도들이 떠나는 아픔을 겪었던 것이죠. 목회자로서 할 수 있었던 것은 오직 하나님 앞에 엎드리는 것이었습니다. 전북 남원에 있는 모 기도원에서 21일간 금식하며 기도했습니다. 건축하면서 대학원을 다녔고, 40의 나이에 나름대로 규모 있는 예배당까지 건축하면서 내심 마음으로 우쭐했던 교만을 회개했습니다. 건축 전에는 노방전도, 축호전도, 외침전도를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쉬지 않고 했던 그 열심과 영성은 사라지고, 믿었던 성도들이 교회를 떠나면서 번–아웃(탈진) 한 것이죠.

기도원에서 21일 금식한 후, 교회에서는 기적 같은 변화가 일어났어요. 떠났던 12명의 집사님 중, 7명이 돌아왔습니다. 제가 심방 하거나 설득을 한 게 아닌데 그들이 돌아와 지금까지도 교회를 잘 섬기고 있습니다. 이 모두가 하나님의 은혜요 기도의 응답이었습니다.

Q. 교회설립 30주년을 맞이한 교회의 상황을 소개해 주세요?

A. 본 교회는 제가 당시 서울 강남지방 모 교회에서 전담 사역을 사임하고, 당시 순천교회(현. 한소망교회)의 선교회가 개척교회 헌금을 하고, 개척자를 찾던 중, 연결되어 1992년 9월에 순천으로 이주했습니다. 3개월에 걸쳐 사택준비와 예배당 리모델링을 한 후 그해 12월부터 가족이 모여 예배를 드렸습니다. 1992년 12월 선교원 개원 준비를 하고, 2명의 교사와 함께 교회학교 어린이 예배를 드리면서 1993년 1월 25일 교회설립 예배를 드렸습니다.

개척 초기에는 어린이 사역이 왕성하게 진행되어 결국 유치부 예배 처소를 독립시켜 아파트 경로당 건물을 임대하여 40여 명의 유치부를 운영하고, 순천연향교회 예배당에서는 100명이 넘는 유초등부가 예배드리고, 옆 피아노 학원에서는 30명의 중고등부가 모였습니다. 결국 공간 부족에 대해 탄식하던 교사들이 예배당 건축의 필요성을 요구하였고, 1995년 봄 부흥회 강사가 교인들에게 건축헌금을 작정하게 하여 예배당 건축 준비를 하게 되었습니다.

때마침 교회학교 학생의 자모 한 분이 딸의 피아노 매입 돈을 예배당 건축헌금을 해왔습니다. 그 성도의 자녀 남매는 유년부를 다녔는데 훗날 장로교회 소속 신학교에서 공부하여 목회자가 되었습니다. 1999년 12월 9일 성전 건축을 시작하여 2000년 7월 10일에 입당하였고 그 후 6년이 지나서 모든 건축 빚을 해결하고, 교회의 목회 영역도 해외와 국내로 확장하게 되었습니다. 2007년과 2019년에는 필리핀 지교회를, 2012년과 2014년에는 인도에 지교회와 학교를 세웠고, 5,000여 세대에 공급할 우물을 파주었습니다.

2015년 케냐에 교회와 학교, 보건소와 우물을 파주었으며, 2020년 캄보디아에 예배당을 리모델링 하여 선교사 4가정을 파송하였습니다. 국내는 2011년 목포에 지교회를 설립하여 건축했고, 2017년에는 부 교역자와 3가정을 분립시켜 개척교회를 했으며, 2008년부터 코로나-19 펜데믹 기간까지 지방회 작은 교회에 선교 순회 예배를 드리고, 적게는 5백만 원부터 1천만 원에 이르기까지 지원하고, 정기적으로 축호 전도를 하고 있습니다.

우리 교회 모든 부서마다 사역자가 있고, 사역자 역량대로 자율적인 사역을 하고 있습니다. 특별히 모든 교육기관마다 찬양단이 있고, 매주 토요일 예배리허설이 있죠. 모든 성도는 교회를 중심으로 신앙생활을 하도록 화요일에는 중보기도 모임, 수요일에는 전도 훈련이 있고, 목요일에는 구역 소그룹 모임, 금요일에는 심야기도 가 있으며, 주일에는 새 가족 양육 성경 공부 및 제자훈련 등이 담임목사의 주관으로 실행되고 있습니다. 그 외 솔라워십, 카르디아 하프단 등이 예배 특별찬양, 교도소 선교 등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교회에서는 매월 첫 주 오후 예배 후, 전교인 노방전도를 실시했습니다. 작은 교회를 중심으로 순회 예배를 통해 축호전도를 합니다. 2020년에는 평신도 전문인 선교사로 의사 부부가 파송되어 캄보디아에서 의료선교를 했으며, 2018년부터 교단 항존부서인 북한선교위원회에서 실시하는 북한선교훈련과 북한내 성결교회 재건 프로젝트에 참여하며 기금을 적립하고 있습니다.

Q. 30주년을 맞은 순천연향교회가 앞으로 비전과 발전계획이 있습니까?

A. 저도 나이가 어느덧 60대 중반이 되었습니다. 무엇보다 다음 세대를 세우는 교회가 되어야 하고, 선교 지향적인 교회가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교회학교를 더욱 견고하게 세워가려고 합니다. 어린이, 청소년 중고등부, 청년대학부, 현재는 청년부가 왕성하게 활동하고 있지만, 코로나-19로 소강상태인 유초등부, 중고등부를 예전처럼 역동적인 교육부서로 회복하는 데 주력하고자 합니다. 수련회, 캠프, M.T 해외 단기선교 등 교회에서는 훈련기금을 비축하고 있습니다. 장년부도 3년 과정의 성서대학을 마치고 18명의 수료생을 배출했습니다.

성지를 찾아서 수련회도 실시하려고 합니다. 매일 감사일기 쓰기와 성경 필사를 통해 개인적인 신앙 영성을 키우고, 매월 초 월삭 예배를 통해 전 교우들이 하루 새벽기도로 새달을 시작하고, 계속해서 전도 훈련을 통해 초교파적으로 전도자를 양성하는데, 주력하고자 합니다. 급속히 성장하기보다는 더디더라도 본질에 충실한 사역으로 올바른 방향과 목적이 분명한 목회가 되고, 사람들의 이목을 끄는 교회가 아니라 주님의 시선에 합당한 교회를 갖추기 위해, 형식보다 내용이 견실한 교회를 세우고자 합니다.

교세를 확장하고 규모를 키우는 교회보다 나누고 섬기는 교회로, 사람을 모으는 교회보다 영혼을 사랑하고 살리는 교회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지나온 30년을 되돌아볼 때 그 시작도 하나님이 하셨고 지금도 하나님이 교회를 돌보시며 교회를 세워 가시며, 앞으로도 하나님의 교회를 세워 가시는 대로 순종하려고 합니다. 목회자로서 주의 말씀에 순종하는 종이 되어 사역할 때 하나님이 배후에서 일하실 것을 확신합니다. 지난 30여 년 목회의 결실은 연약하지만 믿음으로 순종한 그 열매입니다. 앞으로도 작은 일에 순종한 만큼 하나님께서 더욱 건강하고 성숙한 교회가 되도록 이끌어 주실 것을 믿습니다.

Q. 개척하여 탄탄하고 건강한 교회를 이루신 선배로서 후배 목사들에게 당부할 말씀은요?

A. 목회는 단거리 경주가 아닌 장거리 마라톤입니다. 하나님이 부르셨다는 소명 의식이 목회자의 정체성이라면 아무리 어렵고 힘들어도 자기 십자가를 지는 것이 목회자의 사명입니다. 자기희생 없는 목회란 있을 수 없습니다. 목회자가 죽어야 교회가 산다 는 말은 진리입니다. 특히 목회자가 성공의식에 집착할 때, 심령은 외로운 처지가 되고, 영성이 메마르게 됩니다. ‘목회는 영혼 구원’이라는 목표를 향해 정 주행하는 것입니다. 속도보다 방향이 중요하며, 기본에 충실한 목회로 끊임없는 기도와 성령의 기름 부으심이 넘치는 말씀 선포와 사람을 세우는 양육을 할 때 건강한 교회로 세워질 것입니다.

“여러 가지 질문에 성실하게 말씀해주셔서 감사합니다. 훌륭한 목회자이던 아버님과 형님을 통해 배우고 양육을 받은 윤세광 목사님은 참으로 복을 많이 받았습니다. 목회자 한 사람이 건강하고 바르게 섰을 때, 하나님이 어떻게 일하시는가를 보았습니다. 감사합니다.”

고광배 특임기자  chd6235@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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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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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유 ㅇㅇ 2023-06-30 09:20:38

    본질에 충실한 연향교회를
    사랑합니다
    목사님과 사모님의 헌신에
    박수를 보냅니다   삭제

    • 백♡,♡ 2023-06-29 21:17:57

      아멘~

      나누고 섬기며 영혼을 사랑하고 살리는 교회!!
      초대교회 모습을 간직한 귀한 교회로 인도하신 주님의 은혜에 감사드립니다   삭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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