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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 영 사모의 편지길 위에 서서
  • 기독교헤럴드
  • 승인 2023.06.28 17:07
  • 호수 5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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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위 영 (본지논설위원, '속삭이는 그림들'저자)

길처럼 다양한 의미를 지닌 단어도 많지 않다. 단순한 길 외에도 보이지 않는 수많은 길은 얼마나 많은가. 멀리 갈 것 없이 내 몸속의 핏줄만 해도 지구를 두 바퀴 돌만 한 길이를 지닌 놀랍고 경이로운 길이다. 헤아리기도 어려운 그 길이 한구석만 막혀도 우리 몸에는 치명적이다. 모든 관계 속에서 소통이 중요한 것은 바로 우리의 몸을 통해서도 명시된다. 가장 긴 여행은 탄생부터 죽음으로의 길이다. 그런 의미에서 마르틴 부머의 “모든 여행에는 자신도 모르는 비밀한 목적이 있다” 말은 의미심장하다.

몬세라트 수도원 가는 날은 하늘은 푸르고 시리도록 맑았다. 분명 봄날이었는데 습기 없는 청랑한 햇살은 초추의 양광처럼 느껴졌다. 전설에 의하면 몬세라트 바위산에서 양을 치던 목동ㅡ생각해보면 목동들은 그저 양을 치고 있는데 그들에게 나타난 놀라운 사실들이 많다는 것은 참으로 많은 것을 시사해준다ㅡ들이 하늘에서 빛이 내려오는 것을 목격했다고 한다. 천사들이 노래하고 아이들의 마음은 기쁨으로 가득 차고 그리고 오랜 시간 뒤 굴에서 나무로 된 검은 성모상을 발견, 수도원을 지은 곳이 몬세라트 수도원이다.

기암괴석이 높다란 병풍처럼 둘러 있는 계곡에 있는 몬세라트는 "톱니 모양의 산"이라는 뜻이다. 수도원 오르는 길에 사그라다 파밀리아, 수난의 파사드를 조각한 수비라치의 성 조르디의 조각상이 있었다. 음각으로 조각된 그의 작품은 아무리 봐도 지극히 현대적이다. 생략과 과장이 아우르는, 그래서 여백의 미가 넘친다고나 할까, 어느 각도에서 봐도 조각상의 눈이 보는 이를 따라 움직이는 것처럼 보인다. 수도원 끝쪽 아름다운 산책길에도 수비라치의 라몬율 기념비가 있었는데 산은 먼 데 있고 작품의 배경은 광활한 공간이었으니 놀라울 수밖에 없다. 우리나라 사람 누군가가 천국의 계단으로 부르기 시작해서 오히려 그 이름이 더 유명해졌다고 가이드가 말한 믿거나 말거나 통신,

패키지여행이라고는 믿을 수 없을 만큼 몬세라트 수도원에서 네 시간이라는 긴 시간이 우리에게 주어졌다. 느긋하게 산미가엘 전망대를 오르기 시작했다. 숲의 향기가 진하게 펼쳐졌다. 광활한 산그리메가 펼쳐지더니 기묘한 형태의 암석들이 보였다가 사라지고 다시 모습을 드러냈다. 어딜 보나 아름다워서 걷는 것 자체가 참으로 행복했다. 전망대의 거대한 십자가도 수비라치의 작품이었다. 홀로 우뚝 서 있는 십자가는 거대하면서도 외로워 보였다. 사람이 만든 십자가지만 자연을 배경으로 서있는 십자가는 십자가의 의미를 통렬하게 느끼게 했다. 숭고한 아우라가 주변에 감돌았다. 십자가에 기대섰다. 저절로 눈이 감겼다. 돌아오는 길에서 가는 길에서는 보이지 않던 파블로 카잘스의 조각을 만났다. 길에서 살짝 옆으로 벗어난 곳이었기에 보이지 않았다. 그는 거기 숨어서 혼자 첼로를 켜고 있었다. 그는 어린 시절 헌책방에서 바하의 <무반주 첼로모음곡>을 발견했다. 그 시절이야 어디 지금처럼 악보가 흔했겠는가, 파블로 카살스는 그 모든 곡을 평생을 들여 연구했고 그만의 방식으로 연주했다. 프랑코 총통의 독재에 반대해 은거했고 조국을 떠나야 했고 다시 돌아오지 못했다. 카탈루냐 지방의 크리스마스 캐럴을 모티브로 삼아 작곡했던 ‘새들의 노래’는 내가 무척 좋아하는 곡이다. 비록 살아생전 조국에 돌아오지는 못했어도 태어난 곳에서 멀지 않은 수도원에사 첼로를 켜고있는 자신을 그는 보고 있을까,

‘길을 떠난다’는 문장은 여행에 대한 가장 쉬운 표현이다. 어디든 떠나가는 곳을 의미하는 것 같지만 떠남에 기울여 본다면 내가 사는 곳이 길이란 해석도 가능하다. 인간을 호모비아토르(viator)로 정의한 철학도 있다. 길을 가는 사람이라는 뜻, 단순한 공간으로서의 길에서 생각해도 사람들은 거의 길 가운데 서 있다. 즉 길은 길 자체로 과정이다. 어딘가를 향해서 움직이든 움직이지 않든 우리는 유형 무형의 길에 서있다. 그러니 한곳에 정착하지 못하고 길을 떠나는 여행자만 여행자랴, 바로 지금 이 시간에도 좀 전과는 다른 풍경과 시간이 마음과 만남이 상처와 관계가 빚어지고 있는 것을, 여행자 아닌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롤랑바르트가 어머니를 그리워하는 것을 철학자 한병철은 죽은 자들의 나라를 여행하는 것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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