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정 목사(기성 복된교회)

1592년의 임진왜란으로 국토의 2/3가 황폐해졌고 인구 절반이 죽습니다. 1637년의 병자호란으로 젊은이들을 중심으로 15%의 인구가 포로로 잡혀갑니다. 난리 통에 나라 조정의 허실 함이 드러납니다. 임금을 중심으로 사대부라는 지도자들은 반상(班常)의 질서만 강조하여 국민을 억압하고 군림했지만 막상 외세의 침입에는 나 먼저 달아나려는 극단의 이기적인 모습을 보임으로 그동안 억눌려 살아 온 국민의 신망을 잃습니다. 국가 존립 위기에 처한 판국에 이 나라 조정은 죽은 효종 임금의 장례를 치릅니다. 그 장례에 왕의 계모가 상복을 1년을 입느냐 3년을 입느냐는 장장 15년간의 논쟁으로 국력을 소모하고 있습니다. 소위 허울 좋은 예송논쟁(1638, 禮訟論爭)입니다. 그 논쟁의 근간은 성리학, 주자학입니다. 송나라 유학자 주자(朱子. 1130-1200)의 가르침을 맹목적으로 신봉하는 세력들의 끊임없는 당파 싸움으로 우암 송시열(1607-1689)을 중심으로 한 서인, 그것도 노론 파가 정권을 쥐지만 결국은 나라를 말아먹습니다. 알고 보면 주자가 가르치는 예법이라는 게 허울 좋은 잡탕 철학에 불과한데 말입니다. 

그 보다 약 한 세기 앞선 1501년에 태어나 자타공인 성리학의 대가로 정평 났던 퇴계 이황은 21세에 허 씨 부인과 결혼했으나 사별 후, 권 씨 부인과 재혼합니다. 그런데 정신적인 문제가 있는 여인입니다. 조부 제사를 모시는 제사상에서 굴러떨어진 배 하나를 치마 밑에 감추다 혼이 납니다. 후에 자초지종이 궁금했던 퇴계는 부인 권 씨에게 “왜 그러셨소.” 묻습니다. 권 씨는 단순 무식하게 “먹고 싶어서요”랍니다. 조선 예법의 대가, 대학자 퇴계는 그의 모자람을 탓하지 않고 묵묵히 배를 깎아 아내에게 먹여 주었더라고 전해 옵니다. 먹고 싶은 인간 본성을 허울 좋은 예법으로 억누르지 않고 배려한 처사입니다. 아울러 친지들에게 할아버지도 손자며느리가 음복하는 것을 귀엽게 여길 것이라고 말하며 예법에 어긋난 부인을 에둘러 감싸 주었더랍니다. 퇴계는 당대 최고의 학자였지만 사람보다 이념을 앞세우지 않았습니다. 같은 주자학 경전을 들고서도 이념이 사람을 위한 것임을 실천해 보인 사례입니다. 

우리의 기준은 성경입니다. 성경에도 추상같은 안식일에 길가의 밀 이삭 잘라 먹은 제자들을 허물하는 예법 주의자들이 있었습니다. 주님은 그 바리새인들을 향해, “안식일이 사람을 위하여 있는 것이요 사람이 안식일을 위하여 있는 것이 아니니”(막 2:27) 하심으로 그들의 안식일 법을 넘어서서 먹고 싶은 인간 본성을 지지해 주신 기록이 있습니다. 성경을 읽음으로 그 가치를 높이는 섬김의 대상이 되면 우상입니다. 그 안에 담은 하나님의 뜻을 사람에게 유익하게 펼쳐 내는 일이 교회와 성도의 본분이겠습니다. 

그 성경에서 구원받는 도리를 교리로 만든 사람들이 있습니다. 우리나라가 위에 적은 대로 예송논쟁의 한가운데 있을 때 활동했던 ‘칼빈’(John Calvin. 1509-1564)이 대표적입니다. 우리나라 장로교회들은 그의 교리를 추종합니다. 그릇된 것은 없습니다. 하나님의 절대 주권이 인간 구원의 동기라는 성경적 근거를 잘 일러 주는 교리입니다. 우리는 그의 교리를 부정하지 않습니다. 진일보하여 그렇게 나타난 구원의 역사가 사람에게 나타날 때는 반드시 선행으로 반응한다는 점을 강조합니다. 대립이 아니라 병립(竝立)입니다. 

역사를 돌아보면 경전의 해석으로 교리를 만들고 상이한 점들로 대립, 논쟁, 분쟁 삼다가 더불어 망한 일이 많습니다. 큰 틀에서 성경 전체의 가르침을 해석해 내야 합니다. 주님이 요약해 주신 바에 따르면 ‘하나님 사랑, 이웃 사랑’입니다. 

성경의 가르침을 인지적으로 설명하는 일은 꼭 필요하지만 난해한 일일 뿐 아니라 끊임없는 이설(異說)을 양산합니다. 나와 다른 대상들 공격하는 예리한 무기로 삼기도 합니다. 성경을 주신 아버지의 본심은 아니지 싶습니다. 심지어 성경으로 이단을 만들어 내기도 하지요. 

성경은 성경을 기록하신 성령님께 의존되고, 성령으로 충만할 때 비로소 성경의 기본 정신, 하나님 사랑, 이웃 사랑을 몸으로 살아 낼 수 있습니다. 성령의 충만을 받는 부흥은 감정적 흥분이 아니라 성경을 바르게 실천한 방향을 배우고 실천할 능력을 받는 기회입니다. 훔치려는 배를 깎아 모자라는 아내의 먹고 싶은 마음을 채워 주던 퇴계의 행실처럼 그릇된 사람들을 탓하는 대신 감싸고 품어 안는다면 그게 진정한 부흥입니다. 부흥한 영성으로 성경을 그렇게 펼쳐 내야 아버지가 기뻐하실 교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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