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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종표 목사-4無의 삶을 산 김용은 목사(21)공라헬 전도사와 어부지리 총회장에 대한 술회
  • 기독교헤럴드
  • 승인 2023.06.15 15:29
  • 호수 5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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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용은 목사

■ 공라헬 전도사와의 8년 4개월

김용은 목사는 공라헬 전도사를 어머니로 생각했다. 그는 어머니의 순교 앞에서 늘 죄인의 심정으로 살고 있었다. 모친의 순교 정신이 빛바래지 않게 하기 위해서라도 참으로 진실한 섬김의 삶을 살아야겠다고 결심했다. 김 목사는 오랫동안 군산 중앙교회에서 시무하다가 전도사로 은퇴한 후, 병들고 오갈 데 없는 공라헬 전도사를 만났고 그녀를 어머니로 모셨다. 그렇게 한다고 해서 순교하신 모친의 은혜가 갚아질 것은 아니지만 어느 정도 심리적 위안을 받을 수 있었다.

김 목사는 공라헬 전도사를 집으로 모셔 왔다. 그런데 교회로 모셔 온 지 얼마 안 되어서 중풍으로 쓰러져 몸을 움직일 수 없는 전신마비 환자가 되었다. 김 목사는 마음속으로 하나님께서 어머니에게 진 빚을 갚을 기회를 주신 것으로 생각했다. 박광희 사모는 공 전도사를 위해 밥을 떠먹이고, 몸을 씻기고, 옷을 갈아입히고, 대소변을 받아내는 일을 직접 했다. 또한 변비가 많아 변이 굳어져 관장이 안 될 때는 손가락으로 파내는 날이 셀 수 없이 많았다. 하루 이틀이 아니었다. 공라헬 전도사는 8년 4개월 동안 김 목사 부부의 간호를 받고 소천했다. 8년 4개월을 모시는 동안 김 목사 부부는 매일 예배를 드리며 공 전도사를 어머니처럼 성심성의껏 모셨다.

■ 어부지리(漁父之利) 총회장

김용은 목사는 1971년에 우리 성결교단의 제26회 총회장으로 선출되었다. 그는 지방에서 목회에만 전념하느라 총회 활동도 하지 않았다. 쉰셋 밖에 되지 않은 그에게 총회장의 직책이 주어진 것은 전혀 뜻밖의 일이었다.

당시 교단 상황은 신앙 노선과 지역적인 연고 문제로 갈등이 심했다. 누구는 진보고, 누구는 보수고, 누구는 어느 지역의 출신이고 하는 것이 판단의 기준이 되었다. 거기다가 교단은 통제력이 미약했다. 이래저래 교단 운영이 쉽지 않았다.

당시 총회장으로 출마했던 후보는 서울의 황경찬 목사와 전라남도 광주의 김신근 목사였다. 그들은 각기 특정 지역을 대표하면서 동시에 보수와 진보의 대결을 벌였다. 이 양대 산맥은 첨예하게 대결을 벌였다. 누구든 3분의 2 이상의 표를 얻어야 당선이 되는데 지지가 백중했다. 7차례나 투표했지만 표의 변동이 없었다. 생각다 못해 증경총회장단에게 조정을 의뢰했다. 교단의 원로들은 두 분 가운데 한 분이 양보하기를 바랐지만 지지하는 진영이 양쪽에 버티고 있어서 개인적인 결단을 하기 어려운 상황이었다. 다시 숙의 끝에 두 분 모두 사퇴하고 제3의 인물을 후보로 추대하는 것이 좋겠다는 의견이 나왔다. 그때 서울의 한명우 목사와 김용은 목사가 후보로 거론되었다. 그들은 총회장으로 일해 보겠다는 생각이 없었기 때문에 당연히 극구 사양했다. 그러나 교단 원로들의 뜻을 끝내 거절할 수 없었다.

투표 결과 김용은 목사가 단번에 3분의 2의 지지를 얻어 총회장으로 당선되었다. 김 목사는 자격도 없고 총회장 꿈도 없었던 자가 커피 한잔 안 사고 어부지리(漁父之利) 총회장이 되었다고 말했다.

총회장으로 당선된 그는 성품상 총회장 직무를 확실하고 성실하게 수행하였다. 첫째, 교단 단합에 힘썼다. 교단 역대 총회장으로 구성된 총회장 자문기구를 만들어 총회장을 자문하도록 했다. 교단 지도자들이 단합하면 교단이 분열되지 아니하고 단합하게 된다는 확신 때문이었다. 둘째, 재정이 자립하도록 했다. 총회와 어려운 지교회의 재정을 돕던 OMS의 지원이 60년대에 이미 끊어졌다. 그 후 총회의 운영은 오직 지교회의 상회비로만 운영되었기 때문에 총회본부 직원들의 월급도 몇 개월씩 밀리는 것은 다반사였다. 당시 자립 가능한 교회는 612개 교회 가운데 100개 교회 정도였고, 연간 수입이 6억 정도였다. 그러한 상황이라 총회장의 판공비나 교통비가 지급될 까닭이 없었다. 김 목사는 오히려 중동교회에서 매월 20만원의 활동비를 지급해주어 교통비와 활동비로 사용하며 총회장의 업무를 처리하였다. 지방회장과 지교회를 찾아다니며 교단의 실정을 설명하고 교단에 힘을 실어달라고 호소하며 열심히 일하는 것을 보고 지교회들은 감동을 받고 총회에 협력하기 시작했다. 결국 누적되었던 총회의 적자가 완전히 해소되고 직원들의 월급도 해결되었다. 김용은 목사는 “총회장으로 김종호 장로님, 홍기득 장로님, 박희순 장로님이 앞장서서 협력하셨다”고 증언하였다. <다음 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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