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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 연재> 리차드 포스터 <7>기도로의 초대
  • 기독교헤럴드
  • 승인 2023.06.14 15:47
  • 호수 5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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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차드 포스터 교수

할 수 없는 만큼이 아니라, 할 수 있는 만큼 기도하라 - 돔 채프만(Dom Chapman)

리차드 포스터(Azusa Pacific University 신학과) 교수는 미국 LA에서 ‘Renovare’라는 단체를 설립하고, 교회 부흥을 위해서 여러 가지 사역들을 활발하게 전개했다. ‘영적 훈련과 성장’, ‘돈과 X 권력’이란 책의 저자로도 한국에 널리 소개된 바 있다.

단순한 기도(4)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오셔서 일상적인 삶 속에서 우리에게 복을 주신다고 믿는 것이 바로 기도의 재료이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우리의 처소로 들어오신다고 믿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 우리는 그런 기도를 멸시하기 쉽다. ‘하나님께서는 지금 여기서 내게 복을 주실 수 없다’고 우리는 신음한다. ‘내가 졸업하면, 내가 부서장이 되면, 내가 회사의 사장이 되면, 또는 내가 담임목사가 되면’ 하나님께서 내게 복을 주실 수 있는 장소는 우리가 있는 바로 그 장소뿐이라는 것이다. 그곳이 바로 우리가 있는 유일한 장소이기 때문이다.

모세가 불붙은 떨기나무 앞에 있었던 것을 기억하는가? 하나님께서는 그에게 신을 벗으라고 말씀하셔야 했다. 그 이유는 모세가 자신이 거룩한 곳에 서 있다는 사실을 몰랐기 때문이다. 만일 우리가 현재 있는 곳이 거룩한 땅이라는 것을 알게 되면, 그곳이 직장이든, 가정이든, 동료, 친구, 가족 그 누구와 함께 있든 그곳이 바로 기도를 배우는 곳이다. 가장 자연스럽고 단순하게 일상의 경험을 기도하려면 매일 매일의 생활에서 일어나는 평범한 사건들을 가지고 하나님께 나아가면 된다. 때로는 밤잠을 못 이룰 만큼 엄청난 시련을 겪을 수도 있다.

그때마다 하나님과 함께 걸으며 우리의 상처와 고통과 실망을 아뢸 수 있다. “왜 저입니까? 왜 제가 이 아픔을 당해야 합니까? 이렇게 좌절과 슬픔과 분노에 대하여 호소하는 것이 단순한 기도의 언어이기도 하다. 길을 잃고 상심할 때 우리는 하나님의 동행을 요청할 수 있다. 때로는 이웃 사람이 무심코 내뱉은 한마디가 우리 속에 있는 분노, 시기, 두려움 따위의 감정을 모두 폭발시키기도 한다. 그때 우리는 솔직하고 정직하게 그 일을 하나님께 말씀드리고 그 감정 뒤에 숨어있는 상처를 치료해 달라고 요청할 수가 있다.

우리는 하나님께 자유로이 불평도 하고, 따지기도 하고, 외치기도 해야 한다. 예레미야 선지자는 이렇게 호소하기도 했다. “여호와여! 주께서 나를 권유하시므로 내가 그 권유를 받았사오며 주께서 나보다 강하사 이기셨으므로 내가 조롱거리가 되니 사람마다 종일토록 나를 조롱 하나이다”(렘 20:7). 이 장면에서 나는 예레미야가 하늘을 향하여 주먹을 흔들며 기도하는 모습을 가끔 상상하게 된다. 그렇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분노와 좌절과 실망까지도 완전하게 처리하실 수 있다. C.S 루이스는 말하기를 “우리 안에 있어야 할 것이 아니라 우리 안에 있는 바로 그것을 하나님 앞에 내려놓으십시오”라고 했다.

우리 삶의 자질구레한 것들은 기도의 올바른 내용이 아니라고 하는 속임수를 믿어서는 안 된다. 예를 들면, 우리 기도가 숭고하고 이 세상 것이 아닌 활동이라고 가르침을 받았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기도할 때는 하나님에 관해서만 하나님께 말해야 한다고 배웠는지도 모른다. 그 결과 우리는 일상의 체험들이 올바른 기도를 방해하고 주의를 산만하게 한다고 쉽게 단정한다. 그러나 그것은 잘못된 영성이다. 우리가 섬기는 예수님은 냄새나는 마구간에서 태어나 피와 땀과 눈물로 이 땅 위를 걸어 다니셨지만, 하나님의 뜻에 한시도 벗어남이 없이 살아가셨다.

따라서 나는 여러분에게 일상적인 생활들에 관해서 하나님과 끊임없이 대화하라고 권고하고 싶다. 지금으로서는 ‘올바른 기도를 하려고 애쓰지 말고 단지 하나님께 이야기하라. 자유롭고 숨김없이 상처를 나누고, 슬픔을 나누고, 기쁨을 나누라. 어린아이들이 부모에게 올 때 그러하듯이 하나님도 사랑과 긍휼로 우리의 말을 들어주실 것이다. 우리가 있다는 것만으로도 하나님께서는 기뻐하신다. 그렇게 할 때 우리는 측량할 수 없는 귀중한 것을 발견하게 된다. 그것은 단지 기도하는 것만으로도 기도를 배울 수 있다는 평범한 진리이다. <다음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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