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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8인 순교의 피… ‘용서의 현장 임자진리교회’이성균 목사, 조부 선친의 적대세력 용서는 ‘십자가정신’
  • 고광배 특임기자
  • 승인 2023.04.05 19:49
  • 호수 5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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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자 진리교회 이성균 목사

전라남도 신안군 임자도는 한국기독교 순교사의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다. ‘전남 여수’에는 자기 아들을 죽인 사람을 용서하고 양아들로 삼은 사랑의 원자탄 손양원 목사가 있고 ‘신안군 임자도’에는 이성균 목사의 할아버지 이판일 장로 와 그의 일가족 13명을 포함하여 48명을 잔인하게 학살한 원수를 용서함으로 예수그리스도의 십자가 사랑을 몸소 실천하신 부친 이인재 목사가 있어 여기에 순교자 추모탑이 세워졌다.

이판일 장로는 임자도 진리 태생으로 정규 교육을 받지 못한 섬 소년이었다. 그때 임자도는 목포에서 5시간 항해야 도착할 수 있는 경제적으로 열악한 섬이었으나, 전도에 열정을 가진 문준경(1950년 순교) 전도사가 이 섬에 선교를 하여 복음이 들어왔던 것이다. 1932년 무렵 경성신학교 신학생 문준경이 임자도 옆 증도를 거점으로 도서 순회 선교를 했다.

문준경 전도사는 훗날 ‘임자도교회 부흥기’라는 글에서 이판일 장로와 만남에 대해 ‘그가 깨뜨려 졌다’고 적었다. 이판일 장로는 예수를 만나기 전까지 가부장적 의식이 강한 집안의 장자였다. 20대 후반 그의 아버지 이화국이 죽고 어머니 남구산 과 남동생 판성 등 4형제를 책임져야 했다. 이 의식의 장자권은 그를 성실하고 근면하게 했다. 어느 날 문준경 전도사가 이판일 장로에게 “영생의 진리를 가르치는 하나님 말씀”이라며 성경을 건넸다.

“어떻게 해야 하나님을 믿을 수 있습니까.” “예수님을 나의 구주로 영접한다고 고백해야 합니다.” 이판일 장로는 “예” 하고 고백하고 나서 새 삶을 살기 시작했다. 신앙생활 또한 성실과 근면이었다. 그는 이내 섬 교회 장로(영수)가 됐고, 집사가 된 동생 판성(1907~1950) 등 온 가족과 예수를 섬겼다. 진리교회는 그렇게 시작된 것이다.

그러나 1950년 6·25전쟁 발발 직후 10월 5일 이판일 장로는 ‘백산 솔밭’에서 무참히 살해됐다. 어머니(당시 78세), 동생 판성 등과 몰살당한 것이다. 그 현장은 비단 그리스도인 이판일 장로의 가족뿐만이 아니었다. 지주이거나 배움이 있거나 예수 믿으면 반동으로 몰아 죽임을 당했다. 그 솔밭 구덩이에서는 대창에 찔리고, 총상에 목숨이 붙어 있던 부상자의 신음이 몇 날 며칠 이어졌다고 한다, 누구 하나 나서 구할 수가 없었다. 산 자들은 귀를 틀어막아야 했다. 살아있는 자체가 지옥이었다.

1950년 9·28수복 이후에도 지방 치안은 좌익세력이 장악한 곳이 많아 이런 만행이 곳곳에서 일어났다. 임자도에서도 그랬다. 이판일 장로는 일제강점기에도 살아남았다. 신사참배 거부와 교회가 폐쇄되는 곡절을 겪고서도 말이다. 그는 동방요배 거부 등으로 목포경찰서에 끌려가 문초당하기도 했다. 그런데 해방된 조국에서 같은 민족에 희생당했다. “내 어머니만은 살려주실 수 없소?” 형제가 ‘백산 솔밭’으로 끌려가며 말했다.

형제는 탈진한 어머니를 업고 골고다 언덕을 향해 갔다. 밤 2시. 구덩이에 던져진 생명의 비명이 하늘로 퍼졌다. “주님 이 악당들의 죄를 사하소서.” 그러나 그들은 “죽는 놈이 무슨 기도냐”며 몽둥이로 내리쳤다. 그리고 돌들을 던져 덮어 버렸다. 이판일 장로의 딸 완순(당시 8세)은 뒤늦게 좌익세력에 발견되어 살해된 후 갯벌에 버려졌다. 13인의 가족은 그렇게 몰살당했다. 이판일 장로의 장자 이인재 (1922~2009)는 6·25전쟁 당시 목포에 살아 화를 면했다. 할머니 부모 여동생 등 가족 13명의 시신을 거둬야 했다.

1950년 10월 19일 이판일 장로의 아들 이인재 목사가 목포에서 해군 ‘백부대’와 함께 임자도로 들어왔다. 그는 백산 솔밭으로 달려가 생매장된 시신을 뒤졌다. 부패한 시신으로는 얼굴을 알아볼 수 없었다. 이인재 목사는 한 시신의 주머니를 뒤지다 인민군 목포 정치보위부장이 끊어준 ‘여행증명서’로 아버지의 시신을 확인할 수 있었다. 좌익들이 물러가고 임자도는 치안 공백이었다.

이번엔 우익에 의한 좌익가족 살해가 이어지고 있었다. 이때 이인재 목사가 부역자 색출의 치안 책임자로 들어왔다. 그는 손끝 하나로 철천지원수들을 얼마든지 보복할 수 있었다. 분노에 가득 차 새벽기도를 드리던 중, 아버지의 음성이 들렸다 “아들아. 내가 그들을 용서했다. 너도 용서해라. 원수를 사랑으로 갚거라.” 이후 이인재는 원수들을 용서하고, 가구 수가 많은 대기리에 대기리교회를 개척하게 된다.

임자 진리교회 입구
순교 기념비  

진실화해위원회 위원장을 만난 이성균 목사는 “적대세력을 용서하셨던 조부님과 선친 목사님의 십자가 정신이 임자도에서 실현된 것 같다. 임자도에서 살아계신 하나님의 사랑을 전하고 용서와 화해의 십자가 정신을 꽃피우는 일에 힘쓰고 싶다. 때론 억울한 일을 당하고 말못할 일을 당해도 신앙의 힘으로 버텨낼 수 있었다. 하나님께 감사한다”고 말했다.

임자진리교회 현 담임인 이성균 목사가 말하기를 “아버지는 해군이 상륙할 때 부역자 색출 위원장으로 함께 돌아오셨다. 그런데 가족을 죽인 가해자들을 용서하고 이들을 살리는 데 앞장섰다. 아버지가 혹시 가해자들이 피해를 볼까 봐 광목천에 태극기를 그린 완장을 만들어 나눠주면서 일종의 신원 보증을 해주셨다”고 전했다.

현재 진실화해위원회 보고서에도 ‘이인재 목사(왼쪽)가 좌익 가해자의 아들을 살려 줬다’는 증언이 나온다. 원래 목수였던 이인재 목사는 뒤늦게 신학교에 들어가 마흔 무렵 목사가 됐다. 1956년 전도사로 진리교회에서 3년쯤 일했고, 1983년 다시 이 교회 담임 목사로 돌아와 10년 가까이 목회했다. 이성균 목사는 “아버지는 가해자를 용서하고 교인으로 받아들였을 뿐 아니라 가해자의 아들 주례도 서줬다고 전해들었다”고 말했다.

이성균 목사는 2016년부터 임자도 진리교회에서 담임목사로 사역하고 있다. 그는 “생전에 아버지께 꼭 여쭤보고 싶은 게 있다. 부모님과 동생 등 가족을 몰살한 가해자를 용서한 것까지는 그렇다고 해도 왜 두 번이나 이 교회에 와서 가해자들과 그들의 가족을 교인으로 받아 들이고 섬겼는지? 나 역시 목사지만 잘 모르겠다”고 눈시울을 흐렸다.

▲ 순교자 48인의 피가 흐르고 있는 임자진리교회 담임 이성균 목사는 2일 종려주일 오전 예배에서 기독교헤럴드 제1호 평생회원으로 등록하고 기금 500만 원을 전달했으며 기독교헤럴드(대표이사 이재완 목사)로부터 평생회원패를 받았다.

 

대기리교회 반쪽예배당 헌당 및 원로장로 추대 및 임직예식

지난 4월 1일 오전에는 전남 신안군 임자면 한틀길 126 대기리마을 중앙에 있는 대기리교회당에서 외곽 한틀길 126번지 넓은 대지에 ‘평화통일 염원 대기리교회 반쪽예배당’을 건축하고 임직예식과 함께 헌당식을 거행했다.

제1부 감사예배는 황현수 담임목사가 사회를 보고 전남동지방회 교역자회 회장 이성균 목사(진리교회)가 기도, 지방회장 정제욱 목사(백향목교회)가 설교했다. 헌당식에서는 건축위원장 주장배 장로가 성도들의 기도와 후원으로 성전건축이 완료되었다고 보고했다. 담임목사가 성전건축을 위해 수고한 건축위원장 주장배 장로를 베롯한 건축회사 관계자들에게 감사패를 증정했다.

제2부 임직식에서 원로장로 추대는 담임목사의 집례로 탁영체 장로에 대한 소개와 추대사에 이어 담임목사가 대기리교회 원로장로가 되었음을 공포한 다음 추대패 및 메달을 증정했다. 장로장립식은 담임목사가 김견태 씨를 소개한 후 서약을 받고 안수례를 집행하여 기독교대한성결교회 대기리교회 장로가 되었음을 공포했다. 담임목사가 기념패와 메달을 증정했다.

집사안수식에서 김영태 집사가 소개된 후 담임목사가 서약받고 안수례를 집행하여 안수집사가 되었음을 공포했다. 담임목사가 기념패와 메달을 증정했다. 권사 취임예식에서 최연순, 박숙희, 남순심, 정원주 씨가 소개된 후 담임목사가 서약받고 권사가 되었음을 공포했다.

제3부 축하와 권면의 시간에는 장호희 호남지역 장로협의회 회원이 축가, 정태기 목사(치유상담대학원대학교 명예총장)가 축사, 김재곤 목사(전주태평교회)가 권면하고 김견태 신임 장로가 답사했다. 김만길 장로의 광고에 이어 다 같이 찬송가 208장을 찬송하고 오부영 목사(전장포교회)가 축도했다.

고광배 특임기자  chd6235@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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