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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공보길 박사의 Good Interview다람쥐 쳇바퀴 경주, 극복하기
  • 기독교헤럴드
  • 승인 2023.03.02 15:42
  • 호수 5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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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보길 목사 (미국 심슨대학교 부총장 ,기성 사회선교사훈련원장)

왜 예수님을 따르는 사람들이 2천 년이 지난 오늘날까지 하나되지 못하고 더 나뉘어졌을까?

왜 우리의 대화는 사람들을 예수님께 가까이 가도록 인도하지 못하는 것일까?

이 질문이 늘 삶에서 이어져 간다. 이런 답도 기대한다.

예수님을 따르는 사람들이 하나님의 초자연적인 능력을 체험하고 나타내는 수준이 되어 영혼을 살게 하고, 생명을 즐거워하게 하며, 사랑이 흘러넘치고, 영혼들이 연합하는 대화를 할 수 있을까?

우리는 마음속에 있는 생각을 말하면, 관계가 어려워질 것이라는 생각 때문에 자신의 감정을 드러내지도 않고 서로에게 표현하지 않으면서 가면의 익숙한 삶을 살아간다. 그러나 솔직하게 자신의 감정을 드러내는 대화일지라도 그 내용이 인간의 본성에 바탕을 둔 표현들이라면 관계를 해칠 가능성이 매우 크다. 인간의 본성에만 의지한 솔직함은 깊게 우리 영혼에 상처를 주게 된다. 아무리 솔직한 감정의 대화일지라도 파괴적일 가능성이 아주 큰 자아의 대화로 흐를 수가 있기 때문이다. 자아의 대화는 다양하게 포장되어 전달되는 특징이 있다. 즉 본성적인 생각과 감정만을 의식하면서 내면에서 일어나는 것들을 긍정적인 표현으로 바꾸어 다양한 자아의 대화를 할 수 있다. 이런 대화를 “사교적인 자아의 대화”라고 말한다.

우리 안에 있는 본성을 영성화하는 방법의 일환인 긍정적 표현을 해도 결국은 서로에게는 능력을 줄 수 없는 자기중심적이고 사교적인 대화로 흘러갈 뿐이다.

결과적으로 내면 깊은 곳에서 요동치며, 영혼 깊은 곳에 감추어져 있는 거룩한 생명을 찾지 못할 가능성이 매우 큰 것이다. 포장하지 않는 진실이 나오는 곳이며, 하나님을 알고자 하는 열망을 일깨우는 곳이 바로 영혼이다. 각자 영혼 속에 있는 성령의 생각과 감정을 깨닫고 그것을 언어로 표현하는 것이 영혼의 대화이다. 선한 능력으로 다른 사람의 삶에 영향을 끼치는 대화를 말한다.

다시 말하면, 중요한 것은 우리 영혼 속에 그리스도의 생명이 없다면 우리가 하는 솔직한 느낌이라는 표현과 말은 관계를 깨뜨리고 상대방의 감정에 깊은 상처를 주면서 위험을 무릅쓰는 대화를 하게 된다는 것이다. 상황에 따라 대화를 바꾸어 유쾌하지만 공허하고 피상적인 대화로 흘러가게 될 것이다.

그러나 대안은 있다. 성경 말씀의 능력으로 예수님 성품을 닮아 갈 때, 영혼 중심에 하나님의 생명이 살아 있음을 고백하는 그때이다. 이 순간에 생동적인 생명으로 실제적이며 열정적인 삶을 살아가게 된다. 내용이 분명하고 또한 능력이 살아 기적을 일으키고 약동하는 생명력을 갖게 된다.

예수 복음으로 삶의 인도함을 받을 때 영혼의 대화를 할 수 있는 능력이 생긴다.

이때 진지한 마음을 열기 시작하게 된다. 즉 생명의 언어로 말하며 갈급한 영혼에게 변화의 생수를 공급하며, 지치고 거짓된 삶 속에서 쾌락을 찾아 유혹 속에 떠도는 방황하는 영혼들에게 변화를 일으키는 영혼의 대화가 가능해지는 것이다.

 

 

내면의 깊이를 살피고, 영혼 속에서 흘러넘치는 생명의 강을 인식하고 대화를 나눈다면 어떨까? 이런 생각을 한다. 사람들에게 삶에 영향을 끼치는 능력의 말을 하려면 어떻게 준비해야 할까? 그리고 예수님을 따르는 사람들 사이의 대화가 하나님의 초자연적인 능력을 분명하게 나타낼 수 있을까?

나는 분명히 영혼의 대화를 배움으로써 나타나는 결과는 사랑하는 사람들의 영혼, 그 내면에 세계를 보게 될 것을 믿는다. 영혼의 대화는 돌봄의 언어가 중심이다. 초자연적인 목적을 통하여 만나고 교제하는 아주 특별한 섬김이다. 성령의 인도하심으로 다른 사람의 삶에서 하나님에 대한 열망을 분출시키는 것이다.

 

“나의 자녀들아 너희 속에 그리스도의 형상이 이루기까지 다시 너희를 위하여 해산하는 수고를 하노니”갈4:19 그것은 타인의 영혼을 돌보는 일일 것이다. 그것은 초자연적인 목적을 가지고 섬기기 위해 초자연적인 열정과 지혜를 가지는 언어이기 때문이다. 그 이유는 대화를 나눌 때, 어떤것보다 하나님을 더 원하도록 돕기 위하여 성령의 지혜와 열정을 구해야 한다.

 

영혼의 대화는 성령의 인도하심으로 그의 뜻을 따라 우리의 언어가 지혜와 열정을 갖는 것을 말한다. 그러므로 영혼의 대화에는 힘을 겨루는 싸움이 없다. 만일 예수님을 따르는 사람이라면 영혼은 하나님과 함께 살아있는 것이다. 그러기에 우리는 평범한 사람이 아니다.

C.S 루이스는 “그냥 살다가 그냥 죽은 사람은 아무도 없다”고 말했다.

 

삼위의 하나님의 실제적인 생명이 이 순간도 우리의 함께 살아 역사한다.

그러므로 우리 영혼은 하나님을 갈급해 하면서, 언어로 목소리로 얼굴표정으로 드러내야 합니다. 그 어떤 것보다 더 하나님을 사모하는 모습이다. 이미 우리 안에 있으며 분출되기를 기다리는 열정과 에너지라고 볼 수 있다.

그리고 사람들이 말하는 문제의 뒤에서, 그리고 영혼 속에서 일어나고 있는 갈등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말씀이 주시는 초자연적인 분별력이 필요로 한다. 성령께서 왜 사람들의 영혼에 들어오셨는지 무엇을 위하여 오셨는지 성령의 진정한 계획을 생각해 보라. 우리는 비전이 필요하다. “상대방의 삶에서 나타내시기 원하시는 것이 무엇인가?” 상상력이 필요하다.

특별히 상대방의 영혼에 있는 혼란을 잘못 판단하지 않고 분명하게 볼 수 있으려면 먼저 자신의 혼란을 명확하게 볼 수 있어야 한다. 그 결과 이야기하고 있는 그 사람에 대하여 진정으로 알게 된다. 그가 하나님보다 더 귀하게 여기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를 알아보는 것이다.

그 결과 먼저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 무슨 뜻인지,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다른 사람을 사랑할 수 있도록 자아를 깨뜨리게 됩니다. 깨어지기를 저항하는 자기방어와 자기만족을 완전히 소멸시키는 성령의 역사를 따르는 것이다. 예수님이 인간의 영혼을 만족시키시고 사랑해 주시는 유일한 분임을 영혼의 대화를 통해서 증거 할 수 있다. 인간관계에서부터 하나씩 변화가 일어나도록 하나님께 구하여야 한다. 함께 하는 사람들이 안전하게 서로를 알게 되고, 은혜 가운데 발견하고, 소망을 찾고, 능력으로 어루만질 수 있을 때까지 변화되도록 기도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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