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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 선 박사 창문 칼럼(112)어머니의 천국 입성
  • 최 선 박사(Ph.D., Th.D. D.Min.)
  • 승인 2023.01.04 11:51
  • 호수 572
  • 댓글 0

고향 충주시 엄정면에서 살던 나의 어머니 김복예 여사는 젊은 나이에 4남 1녀의 둘째이신 아버지 최면선 옹이 사는 신니면으로 시집을 왔다. 신혼생활을 시작했지만 얼마 안 되어 아버지는 군에 입대하셨고 어머니는 제대하실 때까지 큰댁에서 며느리 역할을 감당했다. 군 복무를 마친 아버지는 신니면 마수리 온수동 단칸방에서 생활하다 윗동네인 상촌마을 작은 초가집을 마련하여 독립하였다.

김복예 여사 결혼 후 가족

부모님은 논농사, 밭농사와 양잠을 하고 조금씩 모은 재산으로 양옥집을 건축하여 다섯 남매를 위해 헌신하셨다.

그러나 행복도 잠시, 농사하며 오십 평생을 시골에서 보내신 아버지는 서울 한양대학교 병원에서 심장판막증 수술을 받았지만 일 년 후 소천하셨다.

그 후 우리 가족은 서울 노원구 상계동으로 이사했다. 가족들을 위해 오랜 시간 일하신 어머니는 서울 아산병원에서 폐암과 위암 제거 수술을 받았지만 위암이 재발하여 생을 마감하고 천국으로 가셨다.

지난해 11월 24일, 서울 태릉에서 어머니께 순두부를 대접했다. 그것이 어머니와 마지막 만찬이었다. 그 후 3주가 채 되지 않은 시간에 우리 가족은 중계동 집에서 어머니를 뵙고 치료와 회복을 위해 간구했다. 병원에 입원하기 전 하나님께 어머니의 영혼을 위하여 간절한 기도를 드렸다. 12월 9일, 아산병원에 입원하신 어머니는 복부에 적체되어있는 암 제거 수술을 받았다. 회복을 위해 의사와 간호사들이 큰 수고를 하였다.

11일 저녁, 어머니의 몸이 좋지 않다는 연락을 받고 병원으로 이동한 우리 가족은 치료를 지켜보다 자정이 지나서 집으로 돌아왔다. 그러나 어머니는 나를 기다려주지 않고 오전 7시 20분, 사명을 마치고 하나님의 나라에 입성하셨다.

깁복예 여사

이 땅에서 경제적으로 힘든 삶을 살았지만, 하나님의 은혜와 평강으로 임종 2주 전까지 평원교회에서 주일예배를 드렸다. 어머니를 천국에 보내드리고 서울의료원 장례식장에 많은 분이 찾아와 위로했다.

세계로부천교회, 세계로금란교회, 충북 상봉교회, 극동방송, 온누리교회, 평원교회, 샬롬나비행동시민단체, 기독교헤럴드 편집국장, 한부총, 서울한영대학교, 사닥다리종합건설 등 여러 기관에서 예배와 기도로 모친을 잃은 유가족들에게 영적인 위로를 전했다.

동생 영자와 정서방, 찬호, 박 서방과 미자, 병현, 가현, 규리 또한 포항, 조치원, 부산, 제천에서 권혁일 목사님까지 많은 분이 문상을 왔다. 특히 목회자인 필자를 대신해 어머니를 모신 윤정 누님과 매형께 감사드린다. 13일에는 충주에 폭설이 내렸다. 발인하는 14일 3시 30분, 서울시립승화원에서 출발하여 오후 6시에 장례의 모든 일정을 완료했다.

감사한 것은 전날 내린 폭설로 노면이 미끄러워 입산이 매우 어려웠지만, 일몰이 평소보다 30~40분 늦게 시작해 가섭산 정상의 붉고 밝은 노을이 작은 빛이 되어 장례에 큰 도움이 되었다. 장례를 모두 마친 후 하산하니 주위는 어두워졌다. 우주 만물을 주관하시는 하나님의 특별 섭리와 은혜로 출발과 마무리, 바람과 해의 길이까지도 간섭하신 축복이었다. 생전에 많은 기도를 하신 어머님이 임종 후 장례까지도 기도했던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장례 후 고향에 살고 계시는 최면복 숙부님과 아우 윤회와 제수씨, 사촌 큰 누님과 매형, 백모님과 송어회 만찬을 하고 상경했다. 3일장을 마친 후 일상 복귀가 쉽지 않다. 여러 가지 복잡한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15일은 폭설이 내렸다. 운전 도중 갑자기 어머니가 보고 싶었다. 어머니께 죄송하고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생각에 가슴이 답답하고 걷잡을 수 없는 눈물로 집으로 오는 동안 무척 힘들었다.

평소에 어머니는 집에 도착하면 “아들, 조심해서 운전하고 집에 가면 꼭 전화해라”라고 말씀하셨다. 돌이켜 보면 그냥 전화하라는 말이 아니었다. 전화로 어머니의 목소리를 많이 들었지만, 사는 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것을 미리 알고 아들의 음성을 듣고 싶었던 사랑이 전해진 큰 울림이었다. 이제야 후회가 된다.

우리는 일상적으로 어르신들을 “아버님, 어머님”이라고 부른다. 나의 아버지, 어머니는 오직 한 분이다. 임종하신 후 시간이 지나서야 한 분이란 것을 현실로 느꼈다. 어머니를 더욱 보고픈 마음에 가슴이 너무 아프다.

최 선 박사(Ph.D., Th.D., D.Min.)
세계로부천교회 위임목사
서울·포항 FEBC극동방송 칼럼니스트
GOODTV365칼럼니스트
전(前) 안양대학교 외래교수
전(前) 건신대학원대학교 외래교수
▲저서: 희망 아름다운 세상, 존낙스의 정치사상, 기다리고 기다렸더니, 그대 고마워라, 소중한 만남, 회개와 소망의 시편, 시는 노래가 되어, 소중한 그대, 대골 너럭바위, 당신이 던진 한 마디의 말(한국문학방송), 기독교 집단상담, 김치선 박사와 이성봉 목사의 삶과 신앙
(도서출판 킹덤북스),
고향 마을 느티나무 같은 70년의 삶(도서출판 UCN) 외 23권, 전자책 23권 이상
한국문학방송작가회 전자책 출간 작가 315명 중 베스트 작가, 가곡: 백두산 천문봉, 섬김 세월 외 15개 이상
유튜브: 세계로부천방송WBSTV.

최 선 박사(Ph.D., Th.D. D.Min.)  knoxchoi@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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