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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 웨슬리의 교회 안의 작은교회 선교운동(24)제5장 ‘교회 안의 작은 교회’에 관한 역사적 고찰
  • 기독교헤럴드
  • 승인 2022.11.11 12:56
  • 호수 5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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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재완 목사(영암벧엘교회)

수도원 운동사의 중요한 몇 단계 계기를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첫째, 3~5세기로 동방 수도원의 정착기이다. 수도원의 기원은 서방 기독교보다 3~4세기 동방 기독교 지역에서 먼저 일어났으며 성 안토니와 성 파코미우스, 동방의 박사 성 바질이 그 대표자였다. 초기 수도원 운동의 특징은 철저한 은둔주의이며 거친 광야나 산중에 숨어 사는 독거 생활 형태였다는 점이다. 함께 모여 계율과 규칙을 만들고 생활하는 공동체로서의 수도단체가 아니었다. 그들은 고행주의라고 할 만큼 철저한 고행을 통한 육체적, 현세적 욕망의 절제와 극복을 목표로 하고 있었다. 
그들은 고독과 독거를 사랑하고 흠모하였다. 둘째, 6-11세기로 서방 수도원의 확립기이다. 켈트 수도원 제도는 배네딕트 수도원의 발흥보다 시대적으로 약 100여 년 앞선 것으로 켈틱 수사들은 그리스도의 권면대로 완전을 목표하였으므로 엄격성을 강조하였고 고행주의가 지배적이었다. 육체의 감각적 쾌락을 완전히 포기하고 금욕했으며 세속적인 명예욕도 완전 제거를 요구했다. 켈틱 수사들은 공동생활 자체를 통해 개인적인 고독과 은둔생활의 경향성이 강했다. 


이들은 명상과 기도, 침묵, 육체노동과 간소한 식사, 사도적 전승의 교구에 대한 적극적 옹호와 수도원장의 지도에 대한 절대복종, 규칙에 제정된 엄격한 참회의 고행 등이 그 특징이었다. 베네딕트 수도원은 단순히 수도원 운동뿐만 아니라 유럽 문명에 끼친 영향 때문에 8세기에서 11세기의 기간은 ‘베네딕트적 세기’라고 불려졌다. 수도원은 애굽의 수도원 전통에 따라 면면히 흘러오는 개인 중심적인 금욕주의와 고행주의를 보다 높은 영성신학으로 발전시켰으며 진리의 빛을 찾는 ‘하나님을 찾는 학교’로 수도원의 성격을 변화시키고 공동생활을 통한 공동체 신학과 경건 훈련을 확립했다. 


즉 베네딕트 수도 규칙은 철저한 자기 부정과 순종을 강조했다. 또한 기도, 독경, 명상, 예배, 성례거행, 진리탐구 등 영적 훈련에 집중적으로 정진하면서 한편으로는 금욕, 노동, 교육, 구제 활동에 전념하였다. 특히 ‘노동은 기도다’라고 했으며 모든 수도사들은 하루 7시간씩 노동하면서 몸의 훈련을 통한 영성 훈련에 집중하였다. 셋째, 12세기인데 시또 수도원이 베네딕트 
이 운동의 특징은 단순성, 검약, 믿음과 사랑과 겸손의 덕행 실천, 엄격한 자기 부정을 통한 영성 훈련의 자기 정진 등이다. 그들은 침묵기도, 명상, 노동, 독경, 연구독서에 전념했다. 
넷째는, 13세기로 이때 일어난 탁발숭단 운동은 12세기 수도원 부흥운동의 종교적 열정과 정화운동의 결실이었다. 탁발숭단은 본질적으로 12세기까지의 수도원처럼 수도원에 갇힌 정신이 아니고 세속사회에 개방적인 열린 수도원 정신으로 변혁되었다. 즉 12세기까지의 수도원 운동이 교구 중심, 농민 중심의 운동인 데 반하여 탁발숭단은 그동안 무관심한 도시 곧 도성에 버린 사람들의 영적 갱신을 목적으로 했다. 탁발숭단의 핵심 정신은 절대 청빈의 실천적 신앙이었다. 


그러나 이 청빈 계율은 계율이라기보다는 그리스도와 만나는 복음의 길이었으며 고행이 아니라 축복과 환희와 감사의 길로 여겨졌다. 이 운동은 평신도 운동이었다는데 의의가 있으며, 프란체스코회(Franciscans), 도미니크회(Dominicans), 깔멜회(Carmelites), 어거스틴회(Augustins)등이 있다. 대표적 탁발숭단인 프란체스코회는 ‘사랑, 평화, 자유, 청빈’의 네 가지 요소가 그들의 정신을 압축한 것으로 그중에서도 핵심은 청빈의 실천적 신앙이다. 
이 정신은 초대교회 제자공동체의 삶으로 환원과 복귀를 의미했으며 그들의 청빈은 두 벌 옷이나 내일을 위한 양식 준비를 허락하지 않았다. 각각 손으로 노동하여 그때마다 의식주 문제를 은혜의 선물로 받았다. 이와 같이 수도원들은 그 영성 면에서 신앙 소그룹이 추구하는 교회의 본질을 회복하려는 운동이었다. 그러므로 교회의 본질을 회복하고자 하는 웨슬리의 ‘작은 교회’ 운동에 역사적으로 영향을 끼쳤다.
2. 경건 훈련을 위한 모임(Collegia Pietatis)
경건주의 운동의 창시자인 스페너(Philip Jacob Spener, 1635-1705)는 성경과 안트(J. Arndt)의 명저인 《진정한 기독교》(True Christianity)등의 서적을 읽으면서 신비주의적 안티안주의(Arndtianism)와 청교도적 경건주의(Puritan piety)가 혼합된 배경에서 성장하였다. 경건한 분위기에서 성장한 그는 스트라스버그(Strassburg) 대학에 진학하였고, 당시 댄하우어(J. C. Danhauer, 1603-1666) 교수로부터 루터 신학과 평신도 위치에 대한 사상에 크게 영향을 받았다. <다음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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