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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 선 박사 창문 칼럼(89)시대적 아픔에 대한 '단상'
  • 최 선 박사(Ph.D., Th.D. D.Min.)
  • 승인 2022.05.04 14:09
  • 호수 549
  • 댓글 0

6.25 한국전쟁 이후 최 빈민국에서 지금은 외국인들이 부러워하고 있는 대한민국으로 급성장했습니다. 이처럼 발전한 우리나라가 있기까지는 140여 년의 조선 말기 정치적, 사회적, 교회적인 배경을 조금이라도 이해하는 것이 무엇보다 필요합니다. 당시 고통의 세월 속에 믿음의 조상들이 겪었던 애절한 삶의 여정을 살펴보면서 현실을 극복하는 지혜의 교훈을 얻고자 합니다.

강대국들이 조선에 무력으로 통상 개방을 요구하는 등 1882년부터 1910년까지 나약한 우리나라의 정치, 경제적 형세는 풍전등화와 같이 매우 위태로웠습니다. 특히 1894년에 전라도에서 일어났던 동학 봉기가 전국적으로 확산되어 나갔습니다. 조선 정부는 동학군 진압에 역부족을 느끼자 중국으로부터 원병을 요청하였고 청나라는 3천 명의 군사를, 청나라와 경쟁 중이던 일본도 7천 명의 병력과 군함 7척을 파견하였습니다. 이 사건을 계기로 청일전쟁(1894-1895)이 발발하였고 결국 그 전쟁은 일본의 승리로 끝났습니다.

승전한 일본은 더욱더 자신들의 입지를 공교히 하였고, 김홍집과 박영효가 중심이 되어 친일 내각을 구성하여 급진적인 개화 개혁정책을 시행하였지만, 갑신정변으로 이 내각은 실각하였습니다. 친일 내각을 몰아낸 친러파 이완용과 이범진은 추종자들과 함께 정국을 장악하게 된 배후에는 명성황후의 후원이 있었습니다.

바로 이때 새로 부임한 일본 공사 미우라는 음모를 꾸며, 왕후를 시해하였습니다(1895.10.8). 청나라를 대신하여 자리를 차지한 러시아는 일본과 경쟁을 해야 했고 조선을 식민화하려는 일본은 1905년 러일 전쟁에서 승리하면서 조선을 장악하게 되었습니다. 마침내 1905년 11월 17일, 일본은 강제로 대한제국과 보호조약을 체결하여 우리나라의 식민화를 추진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조선 말기의 사회적 배경을 잠시 살펴본다면, 우리나라의 봉건사회는 자본주의 경제사회로 전환하고 있었습니다. 농업기술의 발달, 산업기술의 발달, 통상제도의 발달 등으로 인해 경제는 나아졌지만, 사회적으로는 백성들이 크게 동요되고 매우 불안한 상태였습니다. 정부 관리들이 조세를 가혹하게 징수해서 농민들의 불만이 가증되고 있었습니다. 이에 따라 동학 난이 발발하였습니다.

당시에는 백성들에게 부과되는 세금은 너무 과중하였고, 그것도 다양한 세금을 내도록 강요받았기 때문에 불만은 더욱 쌓여만 갔습니다. 병역제도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그런데 부자들은 뇌물을 주고 면제받았습니다. 그리곤 군대 유지를 위해 백성들에게 더욱 많은 의무와 세금을 부담시켰던 것입니다. 견디다 못한 농민들은 도망 다니기도 하였으며 이로 인해 수많은 반란이 일어나기도 하였습니다.

교회적 배경을 거슬러 올라가면, 1910년대에는 한국교회는 3번의 놀라운 영적인 부흥 운동이 있었습니다. 1903년 원산부흥운동, 1907년 평양대부흥운동, 1909년의 백만인구령운동이 그것입니다. 이처럼 세 번의 부흥 운동의 파장 중에서 평양대부흥운동은 한국교회의 성장에 가장 강력한 성령의 역사였던 것입니다. 그런데 평양대부흥운동이 있기 전 1903년 원산부흥운동이 그 시발점이 되었던 것입니다.

1903년 8월 24일부터 30일까지 원산지역 주재 선교사들이 모여 가진 기도회 동안에 발흥한 원산부흥운동은 평양대부흥운동의 영적 각성의 모체였습니다. 초기 부흥 운동의 모든 자료는 평양대부흥운동을 거슬러 올라가면 원산부흥운동으로 귀결된다는 일치된 견해를 피력하였습니다.

조선 말기와 대한제국 13년(1897년 10월 12일~1910년 8월 29일) 동안에 있었던 정치적, 사회적, 교회적인 배경에는 위와 같이 내외적으로 심각히 위기를 겪고 있었던 시절이었습니다. 외국의 막강한 힘을 통해 무역통상 개방을 할 수밖에 없었던 우리나라는 자중지란을 통해 결국 당파싸움은 극도로 올라가 혼란이 가중되었습니다. 국가의 몰락을 당하고도 정신 차리지 못한 우리나라는 암흑의 세월 36년 일제강점기를 맞이할 수밖에 없는 존재가 되었던 것입니다.

지금 우리나라가 겪고 있는 시대적인 흐름을 파악하고 본다면 좌우 이념의 극도의싸움에서 평범한 국민들은 마음이 갈라지고 정치적, 사회적으로 너무나 큰 아픔을 겪고 있습니다. 조선 말기와 근대사회에서 조상들이 범했던 실수를 뼈저리게 교훈을 삼아 우리는 과거의 역사를 통해 시대적인 지혜를 찾아야 할 것입니다. 첨예하게 대립각을 보이는 여야의 이기적인 당파경쟁만을 위한 입법이 아니라 국민을 위한 현명한 판단과 정치적인 양보를 통해 과연 사랑하는 조국, 대한민국 100년을 내다보는 국가지도자들의 슬기로운 결단이 있기를 기대합니다.


최 선 박사(Ph.D., Th.D., D.Min.)
세계로부천교회 위임목사
예장 백석 부천중앙노회 노회장
서울·포항 FEBC극동방송 칼럼니스트
기독교헤럴드 논설위원
OCU 사회복지학과 겸임교수
전 안양대학교 외래교수
전 건신대학원대학교 강사
한국문인협회, 한국작가회의 시인
▲저서: 희망 아름다운 세상, 존낙스의 정치사상, 기다리고 기다렸더니, 그대 고마워라, 소중한 만남, 기독교 집단상담, 김치선 박사와 이성봉 목사의 삶과 신앙
(2018 킹덤북스)외 전자책 30권 이상
한국문학방송작가회 전자책 출간 작가 315명 중 7위 작가

최 선 박사(Ph.D., Th.D. D.Min.)  sms21@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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