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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 웨슬리의 교회 안의 작은교회 선교운동(5)'작은 교회'에 관한 연구들
  • 기독교헤럴드
  • 승인 2022.04.20 17:48
  • 호수 5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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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재완 목사 (영암벧엘교회)

영적으로나 도덕적으로 그리고 정치적으로 무너져 가던 영국과 영국교회를 개혁시킨 존 웨슬리(John Wesley, 1703-1793)에 대한 연구는 여러 세기를 거쳐 오면서 많은 학자에 의하여 활발하게 진행됐다.
먼저 1913년, 저술로는 팔레비(Elie Halevy)의 영국에서의 메소디즘의 탄생이다. 할레비는 웨슬리의 감리회 운동이 프랑스 혁명의 대격동으로부터 영국을 건졌을 뿐만 아니라 1730년의 경제 위기와 피할 수 없는 관계를 맺었고, 19세기 영국의 경제개혁운동-노동조합운동-은 감리교도들에 의해 주도되었다고 해석했다. 그래서 웨슬리를 사회개혁자로 보았고, 메소디스트 (Methodist)들의 “종교적 열정주의”가 영국을 변화시키는 원동력이었다고 주장했다. 그래서 이 저서는 웨슬리와 메소디스트 운동이 선교와 사회 변화에 미친 영향 연구의 필독서가 되었다.

그리고 아브라함 립스키(Abraham Lipsky)가 쓴 John Wesley:A Portrait(1928)는 웨슬리가 동생 찰스 웨슬리(Charles Wesley)가 옥스퍼드에서 시작한 신성클럽에 가입하게 된 배경과 신성클럽의 목적 등에 관해 자세히 밝혔으며, 요한 사이몬(John S. Simon)이 쓴 《존 웨슬리와 메소디스트 모임들》에 서는 웨슬리에 의해 시작된 메소디스트 운동 중 특히 ‘신도회’와 ‘속회’의 지침들, 그리고 목사와 평신도 의결기관인 ‘연회’의 문제와 평신도 조수의 임무까지도 심도 있게 다루었다. 특히 속회 활동의 특색을 밀도 있게 다룸으로써 웨슬리가 “온 세계는 나의 교구다”라고 외쳤던 비전을 다루었다. 그리고 1930년대의 저술들은 웨슬리의 개인적인 종교적 체험에 더 깊은 관심을 두었는데 레튼버리(E. Rattenbury)는 The Conversion of John Wesleys에서 그의 올더스게이트 체험을 “복음적 회심”(Evangelical Conversion)으로 해석하면서, 나아가 웨슬리의 회심은 하나님에 대한 새로운 만남이며, 이것은 ‘복음적인 위대한 부흥을 이끌어 낸 역사적 가치를 지닌 경험’으로 해석하였다. 이 책은 웨슬리의 선교사상 연구에 뿌리가 되는 저술이다. 그다음으로 리처드 조이는 John Wesley’s Awakening에서 웨슬리의 소그룹인 신도회, 속회, 조, 선별신도회 및 그 리더들에 대해 상세하게 언급하면서 웨슬리는 그의 선교와 사역의 필요에 따라 독특한 조직들을 고안했음을 기술하였다. 그리고 그의 조직 안에서 언약 예배와 애찬회 등 감리회의 독특한 예배 형식들을 개발하여 영적 훈련에 적용한 것에 극찬하였다.


1940년대 저술들은 웨슬리를 종교개혁적인 배경에서 연구한 색채들이 강하다. 그중에 헤럴드 린드스트룀(Harold Lindstrom)의 Wesley and Sanctification (1946)은 구원론에 있어 특히 성화론을 중점적으로 연구했다. 그런데 웨슬리의 신앙운동의 요체는 구원에 있고, 나아가 성화사상은 웨슬리의 중심 진리이며, 모든 그리스도인들은 성화를 통해 성장할 때 성숙한 교회가 가능함을 강조하였으므로 ‘작은 교회’ 운동을 연구하는데 기초 자료가 된다.


1950년대의 저술들은 대체로 웨슬리를 다른 신학자들과의 관계성의 관점(Perspective)에서 심도 있게 연구되었다. 이를테면, 헨리 카터(Henry Carter)는 The Methodist Heritage(1951)에서 메소디스트 운동(Wesley and Methodist Movement)이 에큐메니칼 운동과 관련성이 있음을 주장하였고, 힐데브란트(Franz Hidebrandt)는 From Luther to Wesley(1951)에서 웨슬리가 종교개혁자 마틴 루터와 깊은 연관성이 있으며, 그는 “교회 안의 작은 교회”를 통해 교회 개혁을 주도하고자 했음을 밝혔다. 특히 그는 웨슬리가 저 유명한 올더스게이트(Aldersgate)에서 회심을 경험할 때가 그날 밤 예배에 참석했던 한 청년이 읽었던 루터의 로마서 주석 서문을 통해서였음을 언급하였다. 더 나아가 그는 웨슬리가 루터의 신학사항을 직접적으로 영향받은 설교들을 부각시켜서 루터와의 관계를 강조하였다.

그런 의미에서 웨슬리를 종교개혁(Reformation)의 연장선상에 서 있는 신학자로 보았다. 이렇게 웨슬리는 그의 신학과 종교개혁의 신학을 창의적으로 종합한 탁월한 신학자였음을 알 수 있다. 또 하나의 연구로서는 클리포드 타울슨(Clifford W. Towlson)의 명저인 Moravian and Methodist(1957)에서 웨슬리 당시의 소그룹 운동에 영향을 준 모라비안의 역사와 특히 교제 가운데 있었던 모리비안과 메소디스트, 그리고 모라비안(Moravian)에 기여한 메소디스트(Methodist)의 공헌과 메소디스트에 공헌한 모라비아의 문제들을 심도 있게 다룬 저술이다. 그다음으로 1960년대의 저술을 보면 더욱더 활발한 연구들이 일어났는데 먼저, 스타키는 The Work of the Holy Spirit:A Study in Wesleyan Theology(1962)에서 에큐메니칼 신학(Ecumenical Theology)의 난제와 문제점들을 웨슬리의 성령론으로 충분히 해결할 수 있다는 주장과 함께 에큐메니칼 선교에 대한 새 지평을 제시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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