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원영 목사(제일교회 담임)

윤성근 님의 『探書(탐서)의 즐거움』(출판:모요사)에서 일부를 발췌해 보았습니다.
최근 몇 년 사이 외국문학에 대한 변역 문제가 시끄럽다. 발단은 ‘이정서’라고 하는 새롭게 등장한 번역가의 도발이었다. 우리나라 프랑스 문학계의 귄위자인 김화영 교수가 번역한 카뮈의 “이방인” 번역서에 오류가 많다고 주장한 것이다. 물론 오역한 부분이 없진 않겠지만 “지금껏 읽은 김화영 교수의 번역본은 엉터리이며 독자들은 속은 것이다”라는 말은 문학계는 물론 일반 독자들에게도 큰 충격을 주었다.

“이방인”의 첫 문장인 “Aujoird'hui, maman est morte”는 『모비 딕』의 첫 문장 “Call me Ishmael(내 이름을 이스마엘이라고 해두자)”만큼이나 중요한 문장이다. 그렇기 때문에 세계적으로 이 첫 문장의 번역을 두고 여러 논란이 있어왔다. 원문의 'Mamman'을 ‘엄마’로 할 것인가 ‘어머니’로 할 것인가, 또 그 뒤에 이어지는 단어를 ‘죽었다’로 할 것인지 ‘돌아가셨다’ 혹은 ‘운명하셨다’로 표현할 것인지를 두고 적지 않은 번역가들이 고민에 빠졌다. 이정서는 이 문장을 “오늘 엄마가 죽었다”라고 번역한 김화영 교수의 번역이 틀렸다고 주장한다. 그는 “오늘 엄가가 돌아가셨다”라고 번역했고 자연스럽게 우리말을 살려 쓰려면 ‘죽었다’보다는 ‘돌아가셨다’가 옳은 선택이라고 말한다. 과연 뭐가 옳고 또 어떤게 틀린 것일까? 엄마, 어머니, 죽었다, 돌아가셨다…… , 이게 다 무엇인가? 오히려 또 다른 벽에 부닥친 느낌이다.

            다양한 신앙의 표현을 인정하며 하나님 뜻을 향해 달려가기를
 

새로운 번역을 내놓는 사람들도 다른 번역본에 대해서 너무 비방하는 태도를 가지지 말았으면 좋겠다. 김화영 교수의 ‘이방인’과 이휘영 교수의 ‘이방인’ 그리고 이정서의 ‘이방인’도 물론 다르다. 셋 중에 어떤 걸 ‘엉터리’라고 말하고 싶지는 않다. 결국 나는 번역의 질이나 문장의 옳고 그름보다는 그 문장의 느낌이 좋은 것이다. 단기 4290년에 퍼낸 이휘영 교수 번역의 ‘이방인’을 다시 읽으면서 이런 생각을 한다. 내가 1950년대로 타임머신을 타고 날아간다 해도 이보다 더 잘 쓸 자신은 없다고, 대신 나는 여전히 독자로 남아 동숭동 어딘가를 거닐다가 ‘학림다방’같은 카페에 들어가 대학생들에 둘러싸여 손바닥만 한 책을 꺼내 조용히 읽고 싶을 뿐이다.

신앙인들은 설교나 성경을 통해 주님의 뜻을 발견하며 삶의 지혜를 얻는다. 그러나 이런 반추가 다른 사람을 평가하거나 성경의 내용을 획일화 해버리는 경향으로 나타나기도 한다. 원문 TEXT는 변함이 없다. 그러나 상황 CONTEXT는 변화하기 마련이다. 그리고 그 해석은 참으로 다양했다. 그래서 주님 앞에 있는 그 어떤 신앙 표현도 존중되어야 한다. 그것이 이단적인 것이 아닌 성숙과 미성숙의 문제라면 더더욱 그럴 것이다. 더 성숙한 신앙이란 각자에게 더 성숙한 것이어야 한다. 마치 'mamma'를 “엄마”로 아니면 “어머니”로 해석 할지와 같은 방식이다. 또한 주님께서 우리와 교통할 때 한 성령님이시지만 각각에게 다른 은혜였다. 그래서 자신의 신앙경험이나 성경해석을 모든 사람에게 동일하게 적용하려는 시도는 항상 오류를 동반했다. 그러므로 다양한 신앙의 표현을 인정하며 하나님 뜻을 향해 달려가려고 하는 각자의 노력에 박수를 보내며 위로가 되는 것이 더 옳은 일일 것이다. 이런 점에서 부족한 신앙이란 있을 수 없다. 다만 자신의 형편과 처지에서 발현될 수 있는 것이 나의 기준과 다를 뿐이다. 완벽한 신앙표현이란 애초에 없는 것일 수 있다. 우리 모두는 귀한 그리스도의 지체이다. 표면상으로는 작아도 내용상으로는 귀한 것들을 발견하는 신앙의 사람이기를 바랄 뿐이다. 그래서 옆에 있는 성도가 나보다 더 낫다고 말할 수 있기를 바래본다. 내가 다른 성도의 삶을 산다고 해도 그보다 더 잘 살수는 없을 것이라고 말할 수 있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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