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8년 어느 날 아직도 혈기충천하기만 하던 남편이 느닷없이 병이 나서 자리에 눕게 되었다. 간경화의 시초 시기라 하였다. 몸은 급속도로 깡 말라가고 얼굴은 새까맣게 변했다. 강성(强性)한 성격의 남편은 병으로의 패인(敗因)을 수치스럽게 여겼다. 그는 속히 쾌차할 희망으로 초조해진 나머지 아내를 앞장세워 서울로 올라가서는 이 병원 저 병원을 다투듯이 돌아다녔다.

그럴수록 병은 나아지지 않고 더욱 위중해지기만 했다. 생활은 쪼들려지고 삶의 질서도 헝클어지고 모든 게 뒤죽박죽 엉망이 되어졌다. 그녀가 바느질하고 돼지 키우고 하면서 알뜰히 모아둔 돈들은 금방 바닥이 났고, 병원비는 눈덩이처럼 불어났다. 서울대학병원에 남편을 입원시키고 병시중을 들면서, 어쩌다 틈이 생기면 부리나케 기차를 타고 아이들을 건사하러 제천으로 내려갔다와야 하는 숨 가쁜 생활이 이어졌다.

그러는 과정에서 얼마간 마련해놓았었던 땅도 팔아야 했고, 결국은 집까지 팔게 되었다. 간암으로 병이 악화된 상태였지만 남편은 어떻든지 간에 자기가 살아야만 아내와 아이를 책임질 수 있을 거라는 생각에 사후(死後)를 염려할 겨를이 없었다. 그녀는 마지막 한 푼까지도 탈탈 털어서 최선을 다해 그를 도왔다. 그러나 그가 회복되지 못할 것을 그녀는 알았다. 하나님은 그의 생명을 원하고 계심이 분명했다.

더 이상 병원에서 손을 쓸 수가 없게 되어 집으로 돌아온 연후에야 그녀는 죽음을 두려워하며 절치부심하는 남편에게 조용히 말했다. “하나님의 계획을 사람이 변경할 수 없어요. 사람이 할 수 있는 일은 단지 그분의 뜻에 순종하는 것뿐입니다. 이제 무엇을 우리 힘으로 더할 수 있겠어요?

모든 것은 주님이 하실 일이니 당신은 주의 권세를 인정하고 삶도 죽음도 그분께 내어맡기세요. 믿음으로만 구원됩니다. 당신이 구원되어야만 나도 평안할 수 있어요.” 남편의 눈에는 눈물이 가득 괴었다. “하나님이 나를 용서해주실까?.....” 그녀는 감격해서 가슴이 컥 막히는 것 같았다. 이제 된 것이다! 다 늦은 시간에, 멈칫대고 주춤대며 가까스로 잡은 구원의 문고리라 할지라도 그 문  아직 닫기지 않았으니 남편은 이제 부끄럽게나마 구원의 문 안으로 들어갈 수 있을 것이다. 영벌의 어둠 속에 내던져져 이를 갈며 분해하는 일 없으리라. 하나님의 섭리는 얼마나 오묘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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