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 나치적 성향의 신 루터주의 비판

틸리케는 자신의 신학이 16세기의 종교개혁자들에게 많은 부분 빚지고 있음을 말한다. 따라서 틸리케 신학의 근저에 있는 신학적 전통의 문제를 상세히 살필 필요가 있다. 이를 위해 우리는 그가 한편으로는 대단히 빚지고 있으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예리하게 비판하는 두 신학의 거장을 선택하게 되는데 바로 알트하우스(Paul Althaus)와 바르트(Karl Barth)이다.

1. 알트하우스: 신-루터주의 신학에 대한 틸리케의 관계

젊은 틸리케는 에어랑엔에서 알트하우스(1888 - 1966)의 지도 하에 박사논문을 완성하였다. 제2의 “에어랑엔 신학 부흥기”의 대표자로서 알트하우스는 20세기의 가장 중요한 루터주의 신학자 가운데 하나로 손꼽힌다. 알트하우스에 대한 틸리케의 관계는 바르트와 마찬가지로 이중적이었다.

한편으로 그는 알트하우스에게서 루터를 깊이 연구하였고, 율법과 복음의 구분, 칭의론, 질서론(Ordnungsgedanke) 같은 중요한 루터 신학사상을 자신의 신학의 기초로 삼았다. 그리하여 그의 신학의 전체적인 구조와 방향은 루터교적이다. 그러나 다른 한편 틸리케는 자신의 스승의 강력한 비판자가 될 수밖에 없었다. 그는 무엇보다 그의 스승들이 주창하던 ‘창조질서의 신학’에 철저하게 반대함으로써 친-나치적 성향을 보였던 신-루터주의를 비판하였다.

  “알트하우스는 1934년 내가 처음 그를 찾아갔을 때 자신의 최고의 해를 보내고 있었다. 나외에 많은 학생들이 그에게서 공부하기 위해 에어랑엔대학으로 모여들고 있었다” 틸리케는 자신의 스승과의 첫 만남을 이렇게 기억한다. 그러나 학문적으로 이 둘의 성향은 처음부터 삐걱거리기 시작했다.

  아이러니컬하게 틸리케는 신-루터주의 신학의 중심에서 이 신학과 투쟁을 벌여야만 했다.

무엇보다도 틸리케의 박사학위논문 <역사와 실존>은 그의 지도교수의 중심사상을 비판하는 신학적 착상이었다. 스승의 신학적 입장을 공격하는 논문을 쓰는 학생이나 이 학생의 비판을 학문적으로 인정하고 통과시켜 준 스승이나 “군사부일체(君師父一體)”라는 전통사상이 아직도 지배적인 우리들의 사고구조로는 도저히 납득이 안 되는 일일 것이다.

  앞 장에서 밝힌 대로 이 시기는 히틀러의 나치당이 정권을 잡고 ‘게르만종족의 우월성’이라는 신화적 이데올로기를 한참 선전하고 교회는 이러한 나치의 선전을 하나님의 소위 ‘창조질서’라고 정당화하던 때였다. 이러한 시대적 정황 속에서 틸리케는 자신의 박사학위논문의 근본착상이 시대비판적일 수밖에 없었다고 말한다. 

  이를 통해 틸리케는 에어랑엔 신학 혹은 신-루터주의 신학이 아닌, 개혁신학, 다시 말해 종교개혁자들의 근본사상 위에 서있고자 한다는 사실이 분명해 진다. 그의 이러한 개혁주의적 성향은 그의 교의학 제1권의 서두에서 표본적으로 보여 진다. “그러므로 루터는 실패한 인간과 구원하는 하나님 사이의 상관관계를 신학의 주제로서 표시한다.

  칼뱅 역시 완전히 이러한 의미에서 신학의 대요(大要, Summa)를 하나님에 대한 인식과 우리 자신에 대한 인식으로 말한다.” 이러한 시각에서 신-루터주의의 신학의 무시간적인 창조질서는 따라서 개혁신학의 노선으로부터의 일탈과 별반 다르지 않다.

  이 신학의 본질적인 문제는 그것이 하나의 특정한 자연신학을 주창하며 그 결과 ‘시간과 영원의 질적인 차이’(qualitativer Unterschied zwischen Zeit und Ewigkeit)는 긍정적인 세계관(Weltanschauung) 가운데서 해소되지 않을 수 없다. 이와 같은 나이브하고 자연신학적인 창조이해에 반대해 창조는 단지 창조주에 대한 인격적 신앙을 통해서만 해명될 수 있다는 점을 틸리케는 분명히 한다.

  “어떤 경우라도 나는 창조에 대해 미적으로 떨어져서(aesthetisch-distanziert) 혹은 그저 이론적(theoretisch)으로만 서있지 않고 ‘너’라는 창조주에 의해 요구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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