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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 선 박사의 창문 칼럼(47)오직 기도와 말씀, 성령충만으로 목회한 성수교회 김창욱 목사
  • 최 선 박사(Ph.D., Th.D.)
  • 승인 2021.02.17 16:16
  • 호수 506
  • 댓글 0

1968년 1월 21일 북한의 무장공비가 박정희 대통령을 암살하라는 지령을 받고 청와대 뒤 인왕산까지 내려왔던 사태로 인해 대한민국은 군을 비롯한 사회 전체가 발칵 뒤집힌 사건이 있었다. 그렇게 군사적 위기로 군 기강이 시퍼렇게 달궈진 무렵에 군 생활을 했던 목회자 한 분이 계신다.

넉넉하지 못한 지역민과 환자, 학생들에게 정기적으로 장학금을 전달하고 쌀과 생활에 필요한 것들로 돌보며, 꾸준히 지역 어르신들을 섬기고 복음을 전하였으며 절망에서 꽃피우는 사랑과 소통의 실천을 하는 생명의 전화로 언제나 지역사회와 손잡고 달려온 40년 목회, 그리고 아프리카, 동말레이시아, 네팔, 라오스, 페루, 필리핀, 중국 등에 선교의 등불을 밝히며 사명을 감당하고 있는 주인공은 부천성수교회 김창욱 목사이다.

그는 개척교회 시절 물난리를 겪었던 월세살이부터 지금의 교회로 성장해 왔던 모든 과정을 “은혜의 샘이 강을 이루었다”고 고백한다. 하나님께서 주신 은혜의 강, 그의 지금까지의 삶과 역경의 세월을 더듬어 회고하며 하나님께서 역사하셨던 은혜의 순간들을 떠올리며 목회사역을 조명하면서 교훈을 나누고자 한다.

김창욱 목사는 경상북도 봉화의 산골 시골마을에서 태어나 자랐다. 비록 환경적인 면은 가난했지만, 두뇌가 명석하여 공부를 잘하였다. 1960년대 당시에는 초, 중, 고등학교 교사가 되어 7년 동안 교편생활을 하면 군 면제를 받을 수 있다는 국방부의 말에 김 목사는 미래의 삶을 생각하니 “월급만 받고 더 의미 있는 삶이 없을까?”라는 또 다른 생각에 깊이 고민을 하였다. 그는 교직이 자신의 열정과 삶의 의미를 가져다주지 못하겠다는 판단에 1969년 36개월을 채우는 군 복무를 하게 되었다. 그것도 파주 자유의 다리를 넘어 있는 최전방에서 수색대원으로 근무하였다. 김신조 무장공비 기습사건으로 사병들의 휴가는 취소되고 무려 1년 만에 휴가를 나오게 된 그는 어머니의 강력한 권고로 부흥회에 참석하게 되었고 성령에 감동되어 뜨겁게 방언으로 기도하며 몇 시간 동안 눈물과 콧물을 흘리는 참회의 시간을 가졌다. 그 후 휴가를 마치고 귀대를 하였는데, 그동안 갖고 있었던 주초의 습관도 하나님의 은혜로 해결되었다. 변화된 그의 생활에 부대 안에서는 ‘목사’라고 불릴 정도였고 기도와 말씀생활 가운데 병장으로만 18개월을 사단 행정 서기로 복무하다 만기 제대를 하였다.

김 목사는 제대 후 경북 김천에서 첫 직장생활을 하였다. 안정적이며 남들이 부러워할 정도로 급여도 대단하였다. 하지만 그는 영혼 구원의 뜨거운 열정을 불태울 수 있는 사명의 길을 찾고 있었다. 세상없이 좋은 직장이라도 싫은 것은 어쩔 수 없었다. 하나님께서 예비해 주신 자매와 결혼하고 미래를 위한 삶을 고민하다 퇴직하고 무작정 서울로 올라와 신학교에 입학하여 사역의 길로 들어섰다.

그는 서울에서 전도사로 6년간 훈련을 받고 목사 안수를 받았다. 집안에 신앙의 어른이 없으니 오로지 기도하며 개척해야 하는 상황에서 동료 목사의 소개로 집도 몇 채 안 되는 서울 외곽 부천 시골 마을에 가옥 50만 원에 100평짜리를 쓰라고 했으나 그것도 여의치 않아 소사동 39번지 2층 한 층을 250만 원에 빌려 1981년에 기도처로 시작하였다. 더는 뒤로 물러설 수 없는 상황에서 십자가를 세우고 기도 중에 요한복음 4:14절 말씀을 받고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샘물’인 성수교회라는 교회명을 달고 복음을 전해야 한다는 일념으로 목회하였다.

개척 초기에는 양식이 없으니 굶기를 밥 먹듯이 했다. 김 목사는 주중에는 기도원에 올라가 금식하며 기도했고 사모는 철로 주변에 난 쑥을 캐서 아이들에게 쑥죽을 끓여 주는 고난의 세월이었다. 특히 첫째와 둘째 아이가 몸이 아팠을 때도 치료비가 없어 고생했으나 우리 형편을 아시는 주님이 생각만 품어도 이루어주셨기에 힘은 들었지만 가장 기쁜 시절이었다고 회고한다.

김 목사는 영혼 구원을 위해 영력을 갖추고 말씀 준비를 위해 갈멜산과 삼각산 기도원에 입산하여 나무뿌리를 잡고 밤새워 기도하고 설교 말씀을 준비하고 주말에 내려와 주일예배를 인도하면서 목회에 최선을 다하고자 노력하였다.

교회가 성장하면서 물새는 지하교회에서의 눈물겨운 목회를 지나, 현재 교회의 대지 구입과 성전건축을 하였다. 그는 온갖 시련을 겪으며 지금까지 걸어온 것은 전적인 하나님의 은혜였음을 고백한다.

하나님이 김 목사를 만나 주시고 사명을 주시어 시작한 목회의 고비 고비를 넘어온 40년의 세월과 교회 건축 중 송사에 휘말려 고초를 당하면서도 사람이 할 수 없는 것을 하나님이 개입하셔서 모든 어려움과 문제들을 깔끔하게 해결해 주었다.

또한 그가 모진 질고의 목회의 현장에서 느낀 것 중에 후배와 동역자들에게 권면하고 싶은 것은 “야망의 목회가 아니라, 목양의 목회가 되게 하라”이다. 히브리서 3:1 말씀같이 예수님의 정신, 삶, 철학, 인생관을 본받아 욕망관리와 자기관리를 잘할 것과 “겸손 해야 한다”고 말한다. 목회자나 교회의 직분자들은 하나님 앞에 겸손한 자세로 복음을 전하는 청지기의 자세로 남은 사명을 감당하기 위해 영혼을 구원하고 관리하는 거룩한 사역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고 조언한다.

돌이켜 보면 40년의 긴 세월 동안 성수교회를 인도하신 하나님은 김창욱 목사가 가장 아끼는 빌립보서 4:12 말씀처럼 사랑하는 독자들도 위기의 삶과 앞이 보이지 않는 고통의 순간에도 인간적인 마음으로 낙심과 좌절을 하지 말고 오직 기도와 말씀을 붙잡고 성령 충만한 가운데 예수 십자가를 바라보며 천국에서 주실 생명의 면류관, 상급을 기대하며 주님의 이름으로 승리하시길 기대한다.

한국열린사이버대학교 상담복지대학 사회복지학과 겸임교수

서울극동방송국(FM106.9MHZ) 매주 수요일 오후 4시 30분 ‘5분 칼럼’

최 선 박사(Ph.D., Th.D.)  smse21@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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