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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 최선 박사의 창문칼럼(40)독립운동의 선구자 윤동주와 송몽규
  • 최 선 박사(Ph.D., Th.D.)
  • 승인 2020.11.26 13:12
  • 호수 499
  • 댓글 0
시인 윤동주, 출처: 위키백과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이 없기를,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나는 괴로워했다. 별을 노래하는 마음으로 모든 죽어가는 것을 사랑해야지, 그리고 나한테 주어진 길을 걸어가야겠다. 오늘 밤에도 별이 바람에 스치운다."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

섬나라 일본제국이 대륙을 점령하고자 한반도와 간도 지역에서의 만행들은 100년이 훨씬 지난 지금도 그 고통은 여전히 존재하고 있다. 아직도 청산하지 못한 일제 잔재들이 우리나라에 산재해 있다. 올해가 일본제국에서 해방 된 지 75주년이 되는 해이다. 이를 생각하며 영화 ‘동주’의 주인공들인 저항 시인 윤동주와 청년 문사 송몽규를 기억하고 그들의 삶의 여정을 되새겨 보고자 한다.

윤동주와 송몽규는 1917년 동년에 지금의 중국 연변자치구 용정시 명동촌에서 태어났다. 1925년 4월, 8살이 되는 해에 윤동주, 고종사촌 송몽규, 외사촌 김정우, 문익환 등과 함께 명동소학교에 입하였다. 그들은 총명하고 학업에 남다른 재능을 보이면서 범사에 적극적인 활동을 하여 동학 중에서 나란히 리더들이 될 정도였다.

송몽규와 윤동주는 소학교에서 조선의 역사와 민족주의 및 독립사상교육을 받았다. 특히 그들은 학교 행사가 있을 때는 태극기를 걸고 애국가를 불러 애국정신을 높였다. 매우 탁월한 성적으로 명동소학교를 졸업한 그들은 용정시 명동촌에서 십리 이상 떨어진 화룡시에 있는 화룡현립 제1소학교 6학년에 편입하였다.

은진중학교 3학년 때 독립사상과 민족의식을 깨우쳐 주시던 민족주의자 명의조(名義朝) 선생님의 가르침을 받았던 송몽규는 민족독립운동에 투신하는 결단을 하게 된다. 그는 4학년에 진급하지 않고 은진중학교를 중퇴하고 남경에 있는 중앙군관학교 낙양분교의 한인 반에 입학하였다.

이 한인반은 중국 국민당 정부 장개석 주석의 지원하에 한국 임시정부의 요인으로 활약하던 김구 선생님이 반일민족독립 전쟁의 군사 간부를 양성하기 위해 운영되었던 학교로 송몽규는 군사기능을 열심히 훈련하여 학생들을 인도, 조직하고 문화 활동을 적극적으로 펼쳤다.

1938년 대성중학교를 졸업한 송몽규는 광명중학교를 졸업한 윤동주와 함께 서울에 있는 연희전문학교(현, 연세대학교) 문과에 입학하였다. 그곳에서 그들은 민족정신을 키우고 민족문화를 익혀나가는 열매를 얻게 되었다. 1942년 윤동주와 송몽규는 26세에 일본으로 건너가 송몽규는 교또재국대학 서양사학과에 윤동주는 도쿄입교대학 영문과에 입학하였다.

그는 일본제국의 조선민족과 문화말살정책을 비난하여 1943년 7월에 ‘도쿄조선인학생 민족주의 집단사건’의 주동자로 체포당했다. 그해 일제에 의해 징병제가 공포되고 일괄적으로 징용령장이 발부되었다.

1943년 7월 첫 학기를 마친 윤동주는 도쿄대학에서 재학 중이던 송몽규와 함께 사상범으로 일본 경찰에게 체포되어(7월 14일) 도쿄카모가와경찰서에 구금되었다. 윤동주의 죄명은 <독립운동>으로 2년 언도를 받고 규슈후까 교도소에 수감되었고 그곳에 같은 죄목으로 송몽규도 2년 언도를 받았다. 윤동주는 고향 집에서 보내준 ‘신약성경’을 옥중에서 읽었다.

방부제 주사를 매일 맞았던 그들은 일제의 생체실험 대상(시체 해부를 위한 주사)으로 시달리다가 꿈에도 그리던 민족의 광복을 눈으로 보지 못하고 1945년 2월 16일에는 윤동주 사망하였고, 3월 10일에는 송몽규가 옥사하였다.

윤동주와 송몽규는 민족에 대한 충정과 민족문화를 수호하겠다는 의지를 지니고 분투하였으나 청년문사 송몽규와 저항시인 윤동주는 일제 당국의 무단적인 폭압에 비참하게 희생되었다. 한 줌의 재가 된 윤동주와 송몽규는 고향의 품인 간도 용정시 묘소 서쪽에 묻혔다.

지금까지 윤동주와 송몽규의 삶을 조명해 보았다. 생애 자체가 처절한 일제 강점기의 중심에서 그들의 나라 사랑과 가슴 아픈 최후를 기억한다. 윤동주와 송몽규가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 없이 짧은 생애를 살았던 고귀한 발자취를 반추하며 추모한다.

21세기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는 오늘날 그들을 잊지 말고 각자의 생활 속에서 국가를 사랑하자. 아울러 두 분의 삶을 교훈 삼아 작금에 처해 있는 나라와 민족을 위한 것이 무엇인지를 생각하며 어두운 이 땅에 빛과 소금의 사명을 다하며 살아가자.

최 선 박사(Ph.D., Th.D.)

한국열린사이버대학교 상담복지대학 사회복지학과 겸임교수

서울극동방송국(FM106.9MHZ) 매주 수요일 오후 4시 30분 ‘5분 칼럼’ 진행자

※ 시인 최 선 박사의 창문 칼럼 39는 인터넷 신문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

최 선 박사(Ph.D., Th.D.)  smse21@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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