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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 최 선 박사의 창문 칼럼(37)장사상륙작전과 구국 의지 학도병
  • 최 선 박사(Ph.D., Th.D.)
  • 승인 2020.11.05 15:16
  • 호수 4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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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해안의 깊고 푸른 바다를 끼고 울진을 지나 국도를 따라가다 보면 경북 영덕이 나온다. 남정면에 있는 장사 해수욕장 한 쪽에 커다란 회색 배 한 척이 보인다.

이 상륙함은 장사상륙작전을 기억하는 기념관으로 입구에는 “아! 청춘의 불꽃이여, 충절의 영웅이여, 이 땅에 자유 평화 번영 영원하리라”라는 글과 함께 학도군의 모자 조형물이 나란히 자리하고 있어 찾는 이들의 마음을 숙연하게 한다.

이곳은 1980년부터 장사상륙작전 전몰용사의 위령탑이 건립되어 있던 자리로 그들의 구국충정을 가슴에 새기고 학도병들의 충혼이 후세에 널리 기려지도록 새로운 추모공간을 조성하여 2014년 6월 새로 단장하여 이전하게 되었다.

한국전쟁의 전세를 역전시킨 인천상륙작전 뒤에는 학도병으로 이루어진 어린 영웅들의 커다란 희생이 뒤따랐다. 장사상륙작전은 구조함인 LST조치원호에 미처 승선하지 못하고 적지에 잔류한 39명을 비롯하여 전사자와 부상자가 속출하는 큰 희생을 치렀으나 기억 속에서 점점 잊혀 역사의 뒤편에 묻혀 갔었다.

그러나 장사상륙작전의 의미와 가치를 알리려는 참전용사들의 끊임없는 노력과 1997년 장사갯벌에서 발견한 상륙작전 시 이용된 상륙함인 LST문산호의 실체를 통하여 장사상륙작전은 국민에게 더 이상 잊어버린 작전이 아니라 후손들이 기억해야 하는 자랑스러운 작전으로 재조명되고 있다.

6.25 전쟁 기간에는 중·고생들의 지원 활동이 가장 활발하였던 시기에 학도병들을 주축으로 ‘육본직할 독립 제1유격대대(일명 명부대)’가 대구에서 결성되었고 학도병들이 주축이 되었다는 점에서 다른 학도의용군들과 크게 다를 바 없었으나 그 규모가 다른 어느 학도의용군 조직보다 규모가 컸다.

전쟁 당시 북한군의 침공을 막고자 학생들은 구국 의지를 불태우며 전선으로 나아갔다. 학도병들은 대부분 16~19세의 입대 적정 연령에 미치지 못한 어린 나이로 체계적인 군사훈련을 제대로 받지 못하고 전투 경험이 거의 없었음에도 나의 조국을 위해 몸 바쳐 싸웠다.

1950년 6월 25일 미명을 기하여 북한군의 불법 기습 공격 남침으로 국군과 유엔군은 낙동강을 최후 방어선으로 두고 적과 치열한 공방전을 계속하고 있었다. 그즈음에 장사상륙작전은 인천상륙작전에 대한 기만으로 적군을 분산시키기 위해 동해안 장사에서 양동작전으로 시작되었다.

UN군 총사령관 맥아더 장군은 반격전을 위한 인천상륙작전을 결심하고 동해안 장사리를 비롯한 여러 후방에서 적진 상륙작전 전투명령을 하달하였다.

육군본부 직할독립 제1유격대대(대대장 이명흠)는 대원 772명, 지원요원 56명과 함께 L.S.T 문산호(2,700톤급)로 부산항을 9월 13일 15시경 출항하고 다음 날 새벽 5시경 장사동 해안 상륙지점에 도달하였다.

하지만 캐지아호 태풍으로 (파고 3-4M)배는 좌초되고, 적의 포화 속에 대원들은 구국일념의 투혼으로 악전고투 끝에 상륙에 성공하였다. 적의 후방 교란, 보급로 차단, 퇴각로를 봉쇄하고, 적의 진의를 상실케 하여 인천상륙작전을 성공시키는데 크게 기여하였다.

그러나 이 상륙작전에서 아군은 학도병 대원 등 전사 139명, 부상 92명을 포함하여 수십 명의 행불자를 발생시켰다. 그 후 육군본부에서는 이 전투에 참전한 유격대원들에게 우국청년(의사)이라고 호칭하였다.

학생들은 학업 대신 조국을 지키기 위해 학도의용군을 조직하고 조국을 수호하는 데 앞장섰다. 학생의 신분으로 조직된 학도의용군은 전쟁 초기부터 국가의 위기 극복에 기여했으며 전쟁 중에는 현역으로 국군의 중추적인 역할을 담당하였다.

국군과 유엔군이 낙동강 전선의 교두보에서 반격으로 전환하였을 당시 독립 제1유격대대가 장사동 해안에서 수행한 작전은 역사적으로 상당한 의미를 지닌다.

인천상륙작전이 성공할 수 있었다고 재평가되는 것은 하루 먼저 장사상륙작전이 있었기에 가능하였다.

국민은 자유민주주의를 위해 전투에 참여한 722명에 대한 희생을 결코 잊지 않고 그 헌신을 반드시 기억해야 할 것이다.

청춘의 불꽃인 그들은 조국을 지키기 위해 학업을 뒤로하고 피로 얼룩진 전선에서 생명을 과감히 던졌다. 어린 그들은 무슨 이유로 학도병으로 자원하여 이 나라를 지켜야 했는가? 학도병들은 사랑하는 조국, 자유대한민국을 위해 고귀한 생명을 돌보지 않았다. 그들의 헌신이 있었기에 이 나라가 존재하는 것이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은 아직까지 한국전쟁은 미국 제국주의 침략에 맞선 전쟁으로 규정했다. 이런 주장에 논란이 불거지고 있는 시점에 분명한 것은 소련과 중국, 북한의 최고 지도자들이 전쟁을 결정한 상황에서 북괴군이 남침하였다는 것이다. 이에 맞서 국군은 미국과 UN연합국이 힘을 합쳐 북한의 침략에 맞서 함께 자유대한민국을 지키기 위하여 싸웠다는 사실이다.

우리 후손들은 장사상륙작전에 희생된 학도병들의 애국정신을 본받아 다시는 전쟁의 소용돌이가 되풀이되지 않도록 확고한 자유민주주의 이념과 높은 경제력으로 한미동맹 강화로 공유된 기본적 가치를 더 확산해야 할 것이다. 세계 평화를 위하여 태평양 지역 국가들의 희망과 안보를 책임지는 차원에서 우리나라는 더욱 국방의 안보를 튼튼히 지켜가야 할 것이다.

최 선 박사: 서울극동방송국(FM106.9MHZ) 매주 수요일 오후 4시 30분 ‘5분 칼럼’ 진행자

최 선 박사(Ph.D., Th.D.)  smse21@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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