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PDATE : 2020.7.2 목 19:49
상단여백
HOME 독자기고 특별기고
특집 6.25한국전쟁 70주기(1)6.25 한국전쟁이 성결교회에 미친 영향과 제언
  • 기독교헤럴드
  • 승인 2020.06.10 18:22
  • 호수 484
  • 댓글 0
정상운 교수(성결대학교, 대학총장포럼 회장, 한국신학회 회장)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6·25 한국전쟁'은 무엇인가? 이 질문이 2000년 김대중 대통령의 방북을 통한 '6·15 남북성명서'가 채택되고 2018년 4월 27일 3차 남북정상회담이 열린 현 시점에서도 중요한 까닭은 지금으로부터 70년 전에 발발한 한국전쟁의 충격이 아직도 이 시대를 살아가는 남·북한 7천만이 넘는 동포들의 삶에 근본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기 때문이다. 돌이켜 보건대, 한국전쟁은 우리 민족사에 있어서 참으로 불행한 사건이었으며, 국내외적으로 엄청난 영향을 미치는 결과를 초래하였다.
 
 1. 6·25 한국전쟁 발발과 납북

 1950년 6월 25일 북한의 기습공격으로 인해 전쟁이 발발되고, 낙동강까지 파죽지세로 밀려가다가 맥아더 장군의 인천상륙작전 성공으로 인해 9월 28일 수도 서울이 탈환되었다. 서울수복이 되기까지 3개월간 남한 내 서울에서 성결교회는 큰 수난을 받게 되었는데, 그것은 당시 지도자급인 성결교 수뇌부 인사들이 강제 납북된 사건이었다.
 주지하는 바와 같이 북한교회의 압박과 피해는 해방 직후부터 시작되었다. 6·25 한국전쟁을 전후로 하여서 이미 모든 교회가 폐쇄, 접수되고 공산주의자로 전환하거나, 협조하지 않은 모든 성직자들이 체포되어 순교하거나, 행방불명이 되는 상황이 연출되었다. 북한교회의 잔혹한 시련은 6·25전쟁과 함께 남한교회에 연장선으로 나타났고, 남한교회의 피해는 교회 지도력 상실에서 크게 나타났다.
 
2. 성결교회의 피해와 재건

① 성결교회의 피해
 6. 25 한국전쟁으로 인한 인명손실은 남한에서만 사망 및 실종이 962,000명(군인 210,707명, 민간인 704,263명)이었고, 전쟁 초기 곧 제 1차 남하 때 이미 광공업을 비롯한 주요 산업시설은 큰 피해를 입었다.
 남한교회의 저명한 교역자들과 신학자들이 북한으로 납북되어 순교하거나, 납치당한 교역자의 수는 민경배 교수에 의하면, 장로교 177명, 감리교 44명, 성결교 11명, 성공회 6명등 238여명에 이르렀다. 성결교회는 납북자로 박현명, 박형규, 이건, 김유연, 유세근, 최석모 목사 6명과 6·25 동란 전후에 체포되어 행방불명된 자로 박태주, 함석진, 서두성, 김상운, 김성달, 오계식, 정운학 목사와 최애주, 김영태 전도사 9명등 총 15명을 들고 있다. 또한 파손, 손실된 교회의 수는 남한에서만 장로교 541교회, 감리교 239교회, 구세군 4영문이었는데, 성결교는 106교회로 그 피해가 막심하였다.
 또한, 6·25 한국전쟁 당시 인민군에 의해 순교당한 성결교 교인들은 교역자들을 포함하여 지금까지 사료에 의해 숫자로 나타난 바 총 154명 이상에 달한다.
 
② 성결교회 재건
 전쟁의 위기 속에서 교회는 신앙부흥의 일환으로 교회재건과 전도활동에 나섰다. 인명의 손실과 교회당이 파괴되고, 기독교 기관이 폭격과 화재로 소실되는 등 그 피해의 정도는 대단히 컸다. 1951년 9월 8일 동양선교회는 주한 선교부를 재발족하여 부산으로 피란 간 교역자들과 피란총회, 피란신학교를 돕는 재정적 도움을 주며, 선교사 4명을 파송하는 등 한국성결교회와의 관계를 재개하며, 아낌없는 원조를 하였다. 한국성결교회는 전쟁 발발 후 1952년에 이어 1953년에 동양선교회에로부터 재정적 큰 후원을 받았다.
 한국성결교회는 한국전쟁 3년 기간 동안 힘든 피란생활 가운데서도 전도와 신개척에 힘쓰다가 1954년 4월 환도총회를 계기로 교단재흥에 총력을 기울였다. WRC(세계구호 위원회)와 WCS(기독교 세계 봉사회)가 도왔고, UN군 부대도 건축자재를 지원하였고, 환도 후 IBRD자금도 도움을 주어 충무로교회를 비롯하여 130여 교회를 재건하였다. 월드비젼(선명회)도 동양선교회를 통해 성결교회 재건에 참여하여 자선과 구호사업을 통한 선교활동에 큰 기여를 했다. 교회재건이 활발하게 일어나는 중에 신개척 교회도 크게 증가하였다. 1956년 8월까지 새로 설립된 교회 수가 250교회에 달하였다. 1955년 교단 교세통계표를 보면, 교회 수는 353개소, 1956년에는 383교회로 나타난다.

기독교헤럴드  chd6235@naver.com

<저작권자 © 기독교헤럴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좋아요 0

기독교헤럴드의 다른기사 보기
icon인기기사
기사 댓글 0
전체보기
첫번째 댓글을 남겨주세요.
여백
여백
여백
Back to Top